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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의파랑 Jul 27. 2020

쓰는 사람

자꾸만 글을 쓰고 싶고, 쓰게 되는 이유에 대하여 

    한국에 오자마자 종이책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고자 온라인 서점에서 책을 주문했다. 프랑스에서 출간 소식을 듣자마자 당장 읽고 싶었던(당시에는 ebook도 출간되기 전이었다) 정세랑 작가의 <시선으로부터>를 몇 장 읽어 내려가자마자 눈에 띄는 문장이 있었다. "너처럼 많이 읽는 애는 언젠가 쓰게 된다.(p23)"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장래희망 칸에 '작가'를 쓰기 시작했다. 그보다 몇 년 전에는 시인이었는데, 그 어린 나이에도 시인이 되는 건 쉽지 않다는 걸 알았는지 어느 순간 시인이 사라진 자리에 작가만이 남았다. 중학교,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다른 사람들처럼 장래희망이 구체화된 직업의 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했고 잡지 에디터나 방송국 PD 같은, 맥락이 크게 다르진 않으면서 묘하게 현실감이 있는 직업을 꿈꿨다. 그러다 n년 후에 결국 패션잡지의 막내 피처 에디터가 되었고, 운이 좋게도 글 쓰는 일이 직업의 일부가 되었다. 직업적인 본질만 놓고 보자면 첫 직장은 꽤나 만족스러웠다. 고통스럽긴 했지만 매달 일정량의 글을 써야 했고 그걸 읽고 고쳐줄 사수가 있다는 것, 같은 회사에서 자신의 책을 낸 선배를 찾아보는 게 어렵지 않았다는 것, 그래서 언젠가는 나도 내 책을 쓸 수 있겠다는 동기부여가 되었다는 것. 매달 반복적으로 해야 했던 일이 궁극적으로 좋은 글을 쓰기 위한 빌드업의 과정 같았고 스스로를 발전시킬 수 있는 건설적인 일을 한다는 것은 나에게 큰 의미를 지녔기 때문이다. 반면에 애정이 큰 일을 직업으로 삼는 데는 어마어마한 함정이 있는데, 스스로 너무 욕심을 내다보니 알게 모르게 그 욕심이 자기 스스로를 좀먹고,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너무 지쳐버린 후라 되돌리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에디터이자 작가로 사는 삶은 접게 되었다.

    그 일을 놓고 떠나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했지만 어쩔 수 없던 결정이었다는 걸 이제야 덤덤히 받아들이게 됐다. 꼭 그 일이 아니더라도 나는 무언가를 계속 써나갈 거라는 확신이 생겼기 때문이다. 나에게 글 쓰는 일이란 건, 평생을 함께 할 파트너 같은 존재다. 가장 나를 나답게 만드는, 내 인생을 구성하는 필요조건에 가까운 것.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이 글을 쓰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방과 연간 500파운드의 돈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니 내가 열심히 사는 이유는 먹고 살 걱정 없이 즐기면서 살기 위한 500파운드의 돈을 위해서고, 기본값만 유지가 된다면 욕심을 내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보다 그저 삶을 유영하며 마음 편하게 글을 쓰고 싶다. 그렇게 목표를 잡은 이후로, 좋아하는 일과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일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었고, 생업이 좋아하는 일이 되었을 때의 혼란과 고통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질 수 있게 됐다. 무엇보다 좋아하는 일을 더 좋아할 수 있는 행운이 주어졌다. 

    글 쓰는 플랫폼이 이렇게나 많아진 시대에 작가가 되기 위한 조건 같은 게 따로 있다는 생각이 들진 않는다. 나는 쓰고, 누군가는 읽는다면 그걸로 됐다. 다만,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줄 만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심은 여전하다. 유학을 결정한 배경에는 그런 욕심이 반쯤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렇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글을 쓰며 지낼 거다. 지금처럼 언제나 꺼낼 수 있는 작은 노란색 노트와 펜 한 자루를 가방 속에 지니고 다니며 조각조각 흩어져 있는 순간을 모으면서, 궁극적으로는 그것을 하나의 글로 싹 틔우면서 말이다. 예전에는 글을 써서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는데 요즘에는 글 쓰는 행위 자체가 즐겁다. 머릿속에 갇혀 떠돌던 생각들을 글을 통해 밖으로 내보내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기도 하고, 어느 순간에 스마트폰 메모장이나 일기 어플, 몇 개의 서로 다른 블로그와 일기장 등 여기저기 남겨둔 기록들을 마주하게 되면 그때 당시의 생각이나 감정이 생생히 전달돼 뭉클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에는 마음에 파도를 일으키는 어떤 장면을 보았거나 내면에서 무언가가 휘몰아치는 순간에 놓여있을 때, 자연스럽게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따라오기 때문에, 아마도 그것만이 무언가를 자꾸 쓰게 만드는 이유이지 않을까 싶다. 소설 <시선으로부터>의 한 문장이 이 글을 써내려가게 만든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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