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의파랑 Nov 10. 2020

사랑이 사랑으로 잊힐 수 없을 때

코로나가 원망스러운 수만 가지 이유 중 하나

그런 말 흔히들 하지 않나. 사랑은 또 다른 사랑으로 잊힌다고. 헤어질 때는 그 사람 없이 죽고 못 살 것 같아도 얼마가 지나면 또 새로운 사람이 오고 그렇게 전에 사랑했던 사람은 빛바랜 추억으로 남게 될 거라고. 그래서 이별을 겪었을 때 우리가 가장 흔하게 듣는 말은 더 괜찮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말이다. 하지만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없다면? 새로운 사람은커녕 알던 사람도 만나기 힘든 이런 시기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건데?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다. 원래 인생이 이렇게 지루하고 시시한 거라고 생각하면 더할 나위 없이 잘 지내고 있다. 반짝이는 일상에 대한 기대도 없지만 그렇다고 크게 절망하지도 않은 채로. 무엇이든 깊이 생각하려 하지 않고 그냥 될 수 있는 대로 흘려보내면서 산다. 작은 것에도 크게 기뻐하고 또 크게 절망하기도 하는 사람이 나지만, 최대한 일희일비하지 않으려 애쓰며 또 그 밋밋함을 슬퍼하며 산다. 이렇게 절절한 정신승리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날 힘든 게 하는 건 사랑의 부재, 사랑할 수 있는 것들의 결핍. 새로운 관계도 없고, 발전시킬 수 있는 관계도 없고, 모든 관계는 기존에 있던 것들에만 머물 수밖에 없다는 사실. 타지에서 혼자인 나는, 그래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한참 멀어져 버린 나는 그게 가끔 버겁다.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맴맴 돌다가 감당할 수 없는 그리움의 파도가 밀려올 때, 미처 중심을 잡지 못한 나는 결국에 휘청하고 만다. 언제쯤 단단해질 수 있을까. 언제쯤, 잊게 될까.

인생에서 꼭 해보고 싶었던 건 웬만큼 후회 없이 다 해봤다. 패션 잡지의 에디터 생활도, 동경하던 연예인의 화보 촬영과 인터뷰도, 프랑스 유학도, 20대 내내 오랜 시간 간직해왔던 꿈들을 하나하나 이루면서 세상에 열심히 부딪혀왔고 모든 걸 다 할 만큼 해왔기에 어떤 것 하나 미련 남는 게 없다. 이건 내가 스스로 정말 높이 평가하는 부분 중 하나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자꾸 하루하루 행복하고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삶을 꿈꾸게 됐다. 어떤 큰 목표를 이루기보다 사랑하는 사람과 그냥 소소하고 즐겁게 알콩달콩 살아가고 싶다(나로선 이게 배로 어렵게 느껴지긴 하지만). 이런 판데믹 시기를 겪고 나니 점차 확신이 드는 건 성공, 야망 같은 거 다 필요 없고 사랑만이 정답이라는 것. 그래, 내 꿈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거야. 인간은 다 뻔해. 나도 뻔하고.

매거진의 이전글 쓰는 사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