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코로나 시대의 개강

판데믹이어도 삶은 지속되어야 하니까요.

by 봄의파랑

프랑스어 수업이 개강을 한지 어느덧 일주일이 흘렀다. 정식 개강을 앞둔 프랑스인 학생들이 하나둘 돌아와서인지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캠퍼스에 사람이 늘어난다. 한국과 다르게 프랑스의 학교들은 전부 대면 수업을 진행하며 우리 학교의 경우에는 비자 문제로 오지 못한 외국인 학생들을 위한 온라인 수업을 병행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당연시된 몇 가지가 있는데, 일단 학교에 들어가려면 학생증 체크와 함께 열 측정기 앞에 서서 체온을 측정해야 한다. 수업 역시 교수님과 학생 모두 마스크를 쓴 채 진행되고 캠퍼스 내에서도 모두 마스크를 써야 한다. 그러다 보니 웃지 못할 일들도 일어나는데, 실제로 마스크를 벗은 얼굴을 처음 보게 되었을 때 눈만 보고 막연히 상상했던 얼굴과 실제 얼굴이 너무 다른 경우가 많다는 거다. 누군가의 눈만 안다는 건 그 사람의 반의 반도 모르는 거라는 걸 새삼 느꼈다. 이런 새로운 삶의 방식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하지만, 문득 한 번씩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있는 이 풍경이 너무 생경해 마치 나만 모르는 연극 같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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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기가 시작하니까 하루하루가 너무 빠르게 지나가 버린다. 오전에 일어나서 과제를 하고 오후 한 시 수업을 가고, 네시 반 가까운 시간에 수업이 끝나면 장을 본다. 집에 와서 유튜브 보면서 좀 쉬다가 배고파져서 요리를 해서 저녁을 먹고, 뒷정리를 하고, 씻고 나면 이미 해는 지고 밖은 어두워진 후다. 그렇게 반복되는 일상에 지루해질 즈음 9월이 됐고, 어느새 바뀌어버린 아침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시기 위해 집에서 5분 정도 자전거를 타면 도착하는 숲 속 호수에 다녀왔다. 물론 다녀오고 나니 수업 갈 준비를 하는 시간이 너무 빠듯해서 허둥지둥 대긴 했지만, 잠시라도 숨을 돌릴 틈이 있어 다행이었다. 확실히 계절을 만끽하는 순간은 삶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어제는 프랑스 수업의 첫 번째 퀴즈가 있었고, 한 시간 반 동안 시험을 보느라 영혼까지 털린 반 친구들과 함께 금요일 저녁을 즐기기 위해 파리로 나섰다. 같이 기차를 타고 나가 시내에 도착, 발 닿는 대로 들어간 카페 테라스에 앉아 맥주를 마셨다. 웃고 떠드는 친구들 뒤로 서서히 노을이 가라앉았고, 살랑대는 바람과 온화한 날씨마저 완벽했다. 친구들과 친해지고 싶은 마음과는 달리 어색함의 벽을 허무는 게 어렵게 느껴졌었는데, 같이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하다 보니 금방 분위기가 풀려서 내 걱정보다 더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러고 나서 저녁을 먹기 위해 친구가 예약해뒀던 훠궈 집을 찾았다. 얼마 만에 훠궈인지! 한국에 갔을 때도 따로 먹지 않았는데, 오랜만에 먹으니까 더 맛있었고 사실은 그냥 외식을 한다는 게 좋았다. 세르지 생활 열흘만에 느낀 건데, 파리는 진짜 천국이다. 이방인의 쓸쓸한 영혼을 채워주는 아시안 음식을 어디서나 쉽게 먹을 수 있으니까. 또 저녁을 먹은 후 가로등 불빛 아래 파리의 거리를 걸어 다니는데 건물 하나하나가 새삼스럽게 예뻤다. 1년 반을 살았지만, 정말 파리는 내게 영원한 꿈의 도시다. 잠시 도시를 떠나 있으니까 그 감정이 더 크게 다가온다. 얼른 학업 끝내고, 돌아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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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코로나 확진자수는 여전히 고공행진 중이다. 물론 예전보다 검사를 받기가 쉬워졌고, 그만큼 공격적으로 검사를 하기 때문에 그 수가 늘어나는 게 당연한 부분도 있다. 어찌 됐건 이 나라에 있으면 판데믹 상황에 대해 좀 더 느긋하게 생각할 수 있다는 게 좋다. 개인의 위생을 철저히 관리하는 것과 별개로 너무 과도한 걱정과 병적인 예민함으로 스스로의 정신건강을 해치지 않아도 되니까. 어쨌든 개강도 했고, 수업도 듣고, 새로운 친구들과도 잘 지내고 있으니 겉으로 보기에는 일상이 평범하게 굴러가듯이 보인다는 게(보이기라도 한다는 게) 날 안심시킨다. 이렇게 조심하며 지내다 보면 언젠가 코로나도 지나가겠지 싶은 마음이 드는 걸 보니 이런 비극 속에서도 여전히 삶이 지속된다는 게 아무래도 나에게는 큰 위로가 되지 않나 싶다. 몸도, 마음도 건강해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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