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사람을 품다

엄마의 집

by 꿈부

안성에는 90년대 중반 즈음 지어진 아파트 단지들이 있다.

지금은 꽤 낡은 축에 속하지만,
그 시절엔 새 아파트였다.

그 아파트들이 들어설 무렵,
엄마는 그 근처 식품공장에 다니셨다.
하루 10시간 넘게 서서 일하던 엄마.


그 공장에서 나온 수당과 월급은
다섯 아이의 밥이 되고, 학용품이 되고,
가끔은 겨울 내복이 되었다.


엄마의 동료들이
그 아파트를 분양받아 이사 갈 때마다
엄마는 부러움과 시기, 질투,
그리고 한숨을 동시에 내뱉으셨다.


능력이 안 되는 아버지를 탓하고,

희망 없이 낳아놓은 5남매에 대한

책임에 한없이 울부짖곤 하셨다.


“나는 왜 이 모양일까.”
“남편을 좀 잘 만났다면...”
“왜 이렇게 애만 줄줄이 낳았을까?”


방 한칸에서 7 식구가 살던 현실은
엄마를 얼마나 열등감으로 옭아맸을까?


그 시절 엄마에게
‘집 한 칸’은
소유의 욕심이 아니라,
삶의 무게를 덜 수 있는 단 하나의 희망이었다.


그 낡은 아파트는
엄마에게 평생 지워지지 않는 한으로 남았고,
지금도 그 집을 가진 친구들을 부러워하신다.
그 집은 아직도
엄마의 마음 한구석을 아프게 한다.


그 아파트 앞을 지날 때마다

내 마음도 자꾸만 쿡쿡 찔렸다.
투자자들의 집을 보러 평택에 다녀올 때도
자꾸 그 아파트가 눈에 밟혔다.
어쩌면
엄마의 넋두리가,
내 마음속에 오래된 그림자처럼 남아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래서
결국 나는 그 집을 샀다.
부동산 투자로는
전혀 말이 안 되는 선택이었다.
전세가도 낮고, 오를 가능성도 별로 없는,
그냥 ‘낡은 집’ 일뿐인 그곳을.


그런데도
나는 잔금을 치렀고,
배워둔 인테리어 기술로 천천히 수리를 했다.


2020년.

엄마는 그 집으로 이사하셨다.

아니, 몸을 옮기셨다.


인테리어를 마치고 가전, 가구부터

숟가락, 젓가락까지 모든 걸 세팅해 놓고,

엄마를 모셨다.

엄마도, 형제들도 놀라고 울던 날이었다.


나는 바란다.
이 집이
엄마에게
‘가진 친구를 부러워하는 이유’가 아니라
‘내가 가진 집’으로 기억되길.

엄마의 쉼이 되고,
엄마의 낙이 되길.


엄마가 그 집에서
부러움 대신 편안함을 느끼셨으면 좋겠다.


조금 늦었지만,
이 집이
엄마의 가슴 깊은 한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한을 안고 바라보던 집이었다.

이제 엄마의 집이 되었다.


엄마가 이 집에 들어오는 순간,

이 집은 그냥 건물이 아니라,

한 사람의 평생을 위로하는 공간이 되었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