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첫 집, 그리고 나의 첫 집
꽃샘추위가 제법 매섭다.
찬바람에 옷깃을 여미는 날이다.
이런 날이면 이상하게도,
사람들의 ‘처음’이 더 짙게 다가온다.
50대 중후반의 어머니가
20대 후반의 아들과 함께 사무실에 들어왔다.
처음엔 당연히 아들의 집을 구하러 온 줄 알았다.
그런데, 어머니가 조심스럽게 말씀하신다.
“제가 살 집을 좀 보려고요.”
매번 집값이 무섭게 느껴져
전세로 눌러앉기를 반복하셨다는 어머니는
이제야 알았단다.
자신이 낸 전세자금 대출 이자가
집주인의 자산을 키워줬다는 걸.
그 말을 하시곤 천천히 한숨을 쉬셨다.
그리고 이번엔, 기필코 집을 사겠다고 결심하셨다며 말씀하신다.
“더는 이사 다니기가 버겁네요.”
그날, 어머니는 자신의 이름으로 처음 계약서를 썼다.
설레는 눈빛으로 이름을 확인하고 또 확인하시며,
작은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고맙습니다.”
22평의 낡은 아파트지만,
그날 어머니는 누구보다 큰 집을 갖게 되었다.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대학교 후배다.
가정형편이 좋지 않아
결혼 후에도 어려운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아내는 일찍 세상을 떠났고,
아이 둘과 아버지를 모시며
연구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다.
그런 후배가 최근 국립대 정교수가 되었다.
그리고 이번에, 생애 첫 집을 계약했다.
대출을 풀로 받아야 했고,
2억이 넘으면 안 되는 조건이었지만
후배는 ‘아파트’라는 삶의 형태를 처음 가지게 되었다.
“복도식, 계단식… 그런 게 있는 줄 몰랐어요.”
낡은 빌라에만 살아봤던 후배는
집 사진을 보고 말했다.
“너무 좋아서… 부담되는 거 말고는 다 좋아요.”
교수가 된 것보다 집을 산 게 더 좋다는 후배의 말이 오래 남았다.
그 말이 내 마음 어딘가를 치더라.
그리고 문득, 나의 첫 집이 떠올랐다.
2015년 9월.
드디어 내 집을 샀다.
24평 전셋집에서 다섯 식구가 손을 뻗으면
서로 필요한 걸 건네주던 그 작은 집을 떠나
33평짜리 구축 아파트를 샀다.
방 세 개.
모두 넓었다.
거실을 확장하니 시야가 트였다.
고등학교 기숙사에 있던 큰딸,
중학생인 둘째의 방,
유치원생 막내아들과 함께 쓸 안방까지
하나하나 머릿속에 그려보며 나는 신이 났다.
새 가구, 새 가전.
아이들 책상과 블라인드, 조명까지.
“이 방은 큰딸 거.
저 방은 둘째 딸.
아들 방은 아직 없지만, 곧 만들어줄게.”
그렇게 말하며 큰소리로 입주하던 날,
나는 그냥 붕 떠 있었다.
대출을 끼긴 했지만 내가 중개업을 시작하고
3년 만에 만든 내 집이었다.
참 오래 걸렸다.
결혼하고 몇 년 만인가?...
남의 집을 사주며 부럽기만 했던
그 오랜 시간 끝에 드디어
계약서에 남편 이름을 쓰게 했다.
등기에 남편 이름이 찍히던 날,
나는 마음속으로
“살아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사는 생각보다 고됐다.
짐 정리를 미리 못 했다.
바빴다.
못 버린 물건들이 너무 많았다.
결국 이삿짐센터가 거실 한가운데
짐 바구니를 산처럼 쌓아놓고 갔다.
그 산을 치우는 데 열흘이 걸렸다.
삼 남매의 물건,
버리지 못한 감정들,
그 속에서 나는 매일 작아졌다가,
다시 다잡았다.
그렇게 많은 짐을 거실에 두고,
그 밤 침대에 누웠다.
그때서야, 벅참이 몰려왔다.
그 집은 새 아파트도 아니었고,
누구나 부러워할 집도 아니었다.
하지만 처음으로 내가 마련한
우리 가족의 지붕이었다.
내가 지킨, 또 하나의 시작이었다.
그날, 정말 편안한 잠을 잤다.
집이 그랬다.
그렇게 만들어주었다.
매번 이사 때마다 하던
2년 뒤의 걱정을 멈추게 해 주었다.
이 집은 그동안 내가 이룬 가장 큰 자유였다.
새 아파트든, 오래된 구축이든,
넓든, 조금 비좁든,
처음 내 이름으로 갖는 집이라는 건
누구에게나 가슴 한복판을 두드리는 시작이다.
그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오래 꿈꿔온 마음들이
조용히 자리를 잡는다.
세간을 들이기 전부터
설렘이 먼저 깃들고,
비워진 방마다
따뜻함이 퍼지고,
언젠가 이 집 안에서
웃을 날들을 떠올리면,
희망은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자라난다.
집은 결국,
삶을 견디게 해주는 마지막 울타리이자,
지켜내고 싶은 모든 것의 시작점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이 집이 우리의 이름을 품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자유로워진다.
그래서 그들의 첫 집도,
나의 첫 집도,
마침내 자유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