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집이 있어서, 버틸 수 있었다
병원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
40 초반의 그녀가 사무실에 잠시 들렀다.
문을 열고 들어온 얼굴엔
말로 못할 걱정이 묻어 있었다.
"대표님, 건강하게 오랫동안 거기 계셔주세요."
조용하고 신중한 목소리로 말하던 그녀였다.
그런 그녀가 상담을 예약했다.
집을 산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무슨 일인가 싶었다.
툭, 말을 꺼낸다.
“병이 왔어요.”
친정엄마께도 말 못 한 이야기.
남편에게만 겨우 털어놓은 이야기를 나에게 한다.
그녀에겐 걱정이 더 많다.
7살 아들이 있고,
팔이 부러져 수술한 친정엄마가 있고,
이사도 해야 하고,
회사 다니며 남편이 아이를 잘 챙길 수 있을지,
출근은 잘할지 걱정거리가 끝이 없다.
그런 걱정들을 하느라
그녀의 얼굴엔 잠 못 잔 흔적이 가득했다.
나는 말했다.
"밥 먹으러 가자."
다행히 일정을 여유 있게 빼두었다.
그녀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사주었다.
"괜찮을 거야.
그동안 애썼잖아.
이제 잠깐, 쉬어가자."
그렁그렁한 눈을 한 그녀를
가만히 안아주었다.
나는 안다.
그녀가 얼마나 애쓰며 살아왔는지를.
지방에서 올라온 그녀는
외벌이 남편의 월급을 알뜰히 모았다.
첫 집을 사고,
더 모아서 서울에 집 한 채로 갈아탔다.
아껴 쓰고, 공부하고, 버티며 자산을 불려 왔다.
그녀에게 집은 단순한 부동산이 아니었다.
희망이었다.
'나아진다는 믿음'이었다.
그 희망을 잘 키워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다시 일을 시작해야지,
계획하고 있었다.
그녀는 안다.
지방에서의 가난,
그 뿌리는 '내 집 없음'이었다는 걸.
그래서 집을 간절히 원했고,
그 집을 버팀목 삼아 여기까지 왔다.
하지만 오늘은,
그 희망을 지킬 수 있을지
그녀는 두려워하고 있다.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그 집이 있어서,
너는 치료에만 집중해도 되는 거야."
그 집은 단지 자산이 아니라
그녀가 달려온 시간의 증거다.
그리고 이제,
그 집은 또 다른 희망을 지킬 울타리가 된다.
그녀는 병원에 가기 전,
내 씩씩한 얼굴을 보고 기운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런 의미의 사람으로 봐준다는 게, 참 고마웠다.
내가 전한 것이 조금의 위로라도 되었기를.
그녀가 두려움을 이겨내는 그 시간에,
그 집이, 그 마음이,
그녀를 끝까지 품어주기를 기도했다.
“집은 꿈의 목적지가 아니라,
지친 삶을 다시 품어주는 출발점이다.”
— 꿈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