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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나 Oct 13. 2021

가죽공예 이야기 <가죽 지퍼형 손지갑>

처음 도안을 만들어서 완성한 작품! 작지만 소듕한 가죽지퍼손지갑

 가죽공예에서 가장 첫 작업은 도안을 짜는 것이다. 가죽은 소재 자체가 비싸기 때문에 재단에서 실수하면 그만큼 손실이 크다. 그 때문에 꼭 도안을 만들어서 가죽 위에 놓고 재단을 한다. 가죽공예용 도안은 크게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우리가 다 아는 그 모눈종이가 도화지보다 두꺼운 종이 위에 그려진 모양이나, 도화지처럼 도톰하고 매끈한 종이인 것이 있다. 둘 중 편한 도안용 종이로 원하는 도안을 그려서 칼로 오려낸 후, 가죽 위에 올려놓고 문진으로 눌러서 도안이 움직이지 않게 고정해 놓은 후, 가죽용 칼로 가죽을 재단한다. 이렇게 해야 가죽을 손실(로스) 없이 가죽을 재단할 수 있다.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이면 가죽의 부위별 특징을 고려하면서 도안을 올려놓고 최대한 가죽에 손실이 없이 재단할 수 있는 경지에 오른다.




 나는 수학을 끔찍이도 싫어하던 학생이었던지라 모눈종이는 보기만 해도 어지러웠는데, 가죽공예를 시작하면서 거의 25년? 만에 모눈종이를 다시 만났다. 처음에는 눈금 하나하나 정밀하게 그리고 재단하는 일이 너무나 벅찼다. 일일이 센티를 계산해서 자르고 실수하며 다시 하는 반복적인 작업이 가장 힘들었다. 특히, 길이를 생각하고 계산해서 도안을 짤 때마다 머리에서 쥐가 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있는 도안으로 작업했는데, 어느 날부터 손지갑이 크기가 너무나 애매한 것이 마음에 쏙 드는 도안이 없었다. 결국 열심히 머리를 쥐어짜서 내가 원하는 모양으로 도안을 만들었다. 작고 보잘것없는 손지갑이었지만 내가 스스로 만들었다는 만족감이 내 가슴을 다시금 뛰게 했다. 지폐를 딱 반 접어 넣으면 넉넉하니 사용하기 좋았고, 나는 카드를 많이 안 넣는 편이라서 두장 넣는 카드 칸도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가죽 색도, 바느질한 실도, 지퍼의 색도 모두 내가 원하는 색으로 만들었다.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만의 지퍼 손지갑이 완성된 것이다.

가끔 명품을 '아기', '내 새끼'에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도 딱 그 기분이다. 내 작품을 만들고 나면 나 아기 같고 내 새끼 같다. 물론, 삶이 곤궁하며 플리마켓에 사진조차 못 찍어 주고 떠나보낸 내 새끼도 많지만, 모든 작품이 나에겐 의미 있고 가치 있고 소중하다.


물건이 그냥 물건에 지나지 않는 이 느낌, 내 손으로 하나하나 완성했다는 만족감


가죽공예를 하면서 이 만족감은 정말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하나하나 해나가면서 힘든 과정도 있고 잘 안돼서 혼자 방구석에서 성질을 부릴 때도 있었다. 하지만 딱 완성하고 났을 때의 그 만족감은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다.

다른 이 에게는 그냥 흔하디 흔한 손지갑 하나가 나에겐 세상을 가진 만족감을 준 작품이었다. 칭찬받을 때는 하늘을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지난 10여 년 아이들의 엄마로 살아가면서 칭찬받고 인정받을 일이 많지 않았다. 늘상 하던 집안일에 아이들 케어하고 남편 챙기다 보면 하루가 흘렀다. 하루를 곱씹어봐도 나를 위한 시간이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나 자신에게 어떤 만족도 칭찬도 없었다.

나는 가죽공예를 하면서 나를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잃어버린 나 자신, 내가 좋아하던 것, 내가 좋아하던 색깔......   그 첫 시작이 이 지퍼 가죽 손지갑이었다.

지금까지 2년 넘게 나의 돈과 카드를 지켜주고 있는 고마운 지갑, 언젠가 내 이름으로 만든 패키지를 만든다면 처음 도안도 짜 보고 실행해본 이 아이를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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