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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나 Oct 13. 2021

시어머니와 대화 <바가지 택시 사건>

추석에 인천 나들이를 찐하게 하신 어머님

명절에 우리 집에 가끔 올라오시는 어머님은 내려가실 때는 꼭 이모님 댁에 들르신다. 하나뿐인 여동생이 걱정되셔서 얼굴 보고 가셔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사실 가실 때마다 고생하시는 어머님 걱정에 매번 탐탁지 않지만 우리 어머님의 성품을 알기에 명절 끝에 모셔다 드리고 온다. 올해 추석도 마찬가지였다. 코로나로 오랜 기간 인천 이모님 댁에 가지 않으셨던 어머님은 올 추석에는 꼭 들렀다 가신다고 하셨다. 흔쾌히 답하고 올 추석은 인천에 모셔 드리고 왔다. 며칠 묵으시고 무사히 마산 시댁에 잘 귀가하실 줄 알았던 어머님의 일정은 단단히 틀어졌다. 

인천에서 마산까지 거의 9시간 동안 고생하시고 나서야 겨우 집에 가셨다는 것이다.

"네?? 9시간이요?? 그 정도면 어머님, 배 타고 가셔도 제주도를 가셨겠는데요??"

"그렇제? 나도 깜짝 놀랐다.  이모가 일한다고 해서 내 혼자 택시 타고 인천터미널에 갔다가 그리됐다~" 


어머님께 대충의 이야기를 들어본 바로는 이렇다. 초행길에 신도시 한복판에서 택시를 기다려도 오지 않아서 시내버스를 아무거나 타고 택시를 타셨는데, 마산역에 가려고 한다고 버스터미널에 데려다 달라고 하니까 택시기사님께서 인천공항버스터미널에 데려다주셨다는 것이다. 당연히 코로나 여파로 공항에는 버스가 없었다. 밖에 나가보니 같은 택시 기사님이 기다리고 계셨고, 다시 인천 버스터미널까지 가고 나니 택시비만 거의 2만 5천 원이 넘게 나왔다고 하셨다. 부랴부랴 버스를 타러 가셨지만 조금 전에 버스가 떠난 후라 터미널에서 2시간 넘게 기다리셨고, 버스를 타니 꽉 막힌 도로에서 5시간을 넘게 타셨다. 집에 와서 보니, 아침 9시부터 6시까지 부지런히 도 다니셨다고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사투리도 쓰고 마이~ 어수룩해 보였는가 보다 ㅎㅎㅎ"

"어머님! 이렇게 고생하시고 웃음이 나오세요~? 저는 듣기만 해도 열 받아요!!!!"

"요즘 코로나 때문에 힘든가 보다~ 난 덕분에 오랜만에 공항도 가고 인천도 보고 시내 구경 잘했다~"

"어머님 얼마나 힘드셨어요! 이건 진짜 신고해야 되는 거예요!"

"괜찮아~ 안 그래도 이모가 5천 원이면 가는데 바가지 씌웠다고 난리 치는 걸 어차피 지난 일이라꼬 내가 추석이라꼬~ 새 돈으로 딱 드렸다 아이가~ 돈으로 내서 기록도 없으니까 내버려 두라고 했다~"

"아 정말 이건 아니에요~~ 저희 동네에서 KTX 타시면 3시간 30분이면 가는데 얼마나 힘드셨어요"

"괘안타~ 내 살다 살다 70살 넘어가 택시비 바가지 도 당해보고 진짜 우스웠다 아이가~ 다 지난 일을 후회해서 뭐할 거가? 또 이렇게 배우는 거지 이제 꼭 인천종합버스터비널이라고 말해야긋다~"


어머님이 천진난만하게 웃으시면서 말씀하시는데 내가 어찌하랴 그냥 같이 웃어버렸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웃을 수 있을까? 우리 어머님이라 가능한 것 같다. 그래, 다시 생각해보면 정말 어차피 돌이킬 수 없는 지난 일이다. 앞으로 그렇지 않으면 된다. 이 단순하고도 어려운 진리가 왜 그리 실천은 힘든 것인지... 

얼마 전 읽은 '데일 카네기의 자기 관리론'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지난 간 일에 후회한다고 달라지는 것이 있을까? 위의 글처럼 침몰한 전함은 인양할 수 없다. 침몰했다고 안타까워서 후회하기보다는 이제 어떤 일을 해야 더 빨리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앞으로 그렇게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과거의 문제들이 나를 사로잡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나 자신도 괴롭고 제대로 진행되는 일도 없을 것이다. 우리 어머님은 이 단순하고도 놀라운 진리를 몸소 실천하고 살고 계신다. 나는 이 진리를 글로 읽고 내용을 알고도 실천하지 못하는 바보인 것이다. 

나에게 같은 상황이 왔다면 나는 하루 종일 화를 내고 택시 기사님을 찾겠다고 난리를 치고, 생각할 때마다 화딱지가 나서 그날의 다른 일들도 엉망으로 보냈을 것이다. 내가 택시 기사님을 찾아서 돈을 돌려받는다고 내 화가 풀렸을까? 오히려 내가 잘못 말한 것이라고 되려 싸움이 되면 지난 일로 더 큰 화를 불러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차라리 그 시간에 다 받아들이고 지난 일은 잊고 앞으로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하는 일이 훨씬 현명하다. 어머님의 삶의 방식을 통해 나는 또 배운다. 과거의 일에 메여 현재를 잃지 말자, 과거에게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오직 그것을 경험 삼아 더 잘 살고자 하는 다짐과 계획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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