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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나 Oct 09. 2021

살아가는 이야기 <시어머니의 따뜻한 말들>

어쩌면 가깝고, 어쩌면 먼 시어머니와 대화

   ‘로또같이 하나도 안 맞는 내 남편과 맞는 것은 딱 하나, 시어머니를 사랑하는 것’

전생에 나라를 세웠을까? 나는 시댁 복이 있다. 특별히 재산을 물려주시나 육아나 생활에 도움을 주신 것은 아니었다. 결혼하고 나서 13년 동안 한결같이 해주시는 따뜻한 말씀과 마음속 깊이 공감하고 아껴주시는 마음이었다. 이것만으로도 난 세상에서 제일 좋은 시댁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연애할 때 신랑이 ‘우리 엄마는 진짜 착해’ 이러길래 자기 엄마 안 착하다는 사람도 있어? 하니까 ‘진짜야 우리 엄마는 모든 사람이랑 잘 지내고 착해’ 하는 것이었다. 그땐 코웃음을 쳤다. 이제 결혼 생활 어느덧 13년 차, 정말 시어머니는 착한 사람이었다. 물론, 착한 사람이라면 대부분 드라마나 영화에서 그렇듯 큰 재산이 있으시거나 세상에 욕심이 많으시거나 하지 않다. 늘 손해 보시면서 웃으신다.


‘내가 조금 덜 먹을게~ 내가 조금 덜 받아도 돼~’

처음엔 그게 답답했는데 이젠 같이 웃게 된다. 마음에 여유 없이 욕심으로 살던 내가 이제 시어머님과 같이 웃을 수 있게 되었다. 하루의 일과 중 저녁 준비를 하며 시어머니께 전화드리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 마음에 위로를 받고 공감을 받는 이 시간이 나에게 가장 힐링의 시간이고 안식의 시간이다.

어머님은 항상 전화 마지막에 이 말씀을 하신다.

'아이들 때문에 하고 싶은 일도 마음껏 못하고 많이 힘들제? 그래도 아이들 키우는게 나중에 지나고 나면 제일 행복한 일이데이~ 고생하는 메느리 고맙고 사랑한데이'


경상도 사투리는 투박하다는데 우리 시어머니의 사투리는 어쩜 이리도 다정하고 따뜻한지 모르겠다. 늘 생각한다. 아들만 둘인 내가 언젠가 아이들이 결혼을 하고 나도 시어머니가 된다면 어머님처럼 좋은 시어머니가 될 수 있을까? 아마 어렵지 않을까 싶다. 정말 이 세상에 없을 만한 좋은 시어머니를 만났다. 내가 속상할 땐 마음 깊이 위로해 주시고 같이 울어도 주시고 같이 기뻐해 주신다.      

얼마 전에 큰아이 일로 울며 통화를 한 적이 있다. 아이가 태어날 때도 고생했고 크면서는 늦되서 학교 생활하면서 여러 힘든 일이 많았다. 큰아이는 나에게는 항상 아픈 손가락이다. 이런 사정을 다 아시는 어머님은 그 누구보다 손자를 아끼시고 사랑하시기에 늘 가장 큰 위로해주신다. 최근에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시간 좀 지나보레이~ 더 큰 고민생긴데이 그땐 지금 고민이 작아보일거야‘

‘네!? 위로예요 어머님!?’ 하니까

'자식 걱정은 끝이 없데이~ 내봐라 다 큰 아들 지금도 걱정한데이~ 다 그런 거야 괜찮아 지나고 나면 아, 그랬네? 할 거야~ 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쑥 커 있을 테니 걱정 마~ 내는 마음 아파했을 메느리가 더 걱정이데이~’

하루 종일 큰 아이 걱정에 울고 마음 아팠던 시간이 어느새 눈 녹듯이 사라진다. 남편은 내 이야기를 들어도 건성건성 ‘괜찮아~ 애들 다 그래~’ 하고 말았을 것이다. 나 혼자 전전긍긍하며 속상해하던 시간이 어머님의 말씀 한마디에 치유되는 느낌이 든다. 다시 툴툴 털고 일어설 힘이 생긴다.  


다른 사람들은 어머님과 일주일에 거의 매일 통화한다고 하면 다들 좋은 며느리라는데 사실 많이 찔린다. 통화의 대부분이 소소한 일상들을 미주알고주알 수다 떨고 가끔 신랑 욕도 하고 매일 어머님께 위로받고 칭찬받다가 마지막엔 항상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끊기 때문이다. 특히 신랑 욕을 할 때마다 하시는 말씀이 있다.

‘내가 잘 못 키웠나 봐~ 아부지 닮아서 그래~ 미안하데이~ 그래도 그거 알제? 아들은 장가가면 반품 불가, A/S도 불가능 하데이~ 메느리가 잘 고쳐서 써야한데이~’

화난 일에도 이 말씀 한마디면 화가 풀린다. 장난으로 A/S라도 해달라고 도저히 안 되겠다고 징징대면 하시는 말씀은 더 가관이다.

‘신씨 고집 장난 아니데이~ 내도 느그 아부지 고쳐볼라고 40년을 애썼는데~ 결국 못 고치고 가셨데이~ 메느리는 아직 기회가 있으니까 살살 고쳐 써 봐~ ’

이렇게 귀엽게 말씀하시는데 어찌 화를 더 낼 수 있을까?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에게 ‘어머님은 40년을 고쳐도 안됐다는데, 난 30년 안에 꼭 고쳐야지 어이구!’ 하고 한마디 쏘아붙이면 그날로 어떤 일이든 싸움이 끝이 난다.


매일 평범한 일상들인데도 어머님과 통화하다 보면 어쩜 이렇게도 할 말도 많고 에피소드들도 쌓이는지 의문이다. 이번에 브런치 작가를 꿈꾸며 나의 생활에 글감 소재가 없나 알아보는데 갑자기 시어머니의 따뜻한 말들이 떠올랐다. 나에게도 위로가 된다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분명 위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산전수전 다 겪으신 70대의 시어머니는 오랜 세월만큼 그때마다 힘든 일을 이기는 방법을 고스란히 알려주신다. 어떤 일도 같이 크게 공감해주신다. 요즘같이 마음의 위로가 필요한 시대에 나는 정말 든든한 지원군이 생겼다.

과거에는 연배가 있는 분들은 지혜의 상징이라고 했다. 나는 어머님을 통해 그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오랜 세월만큼 쌓여있는 지혜와 조언, 깊이 있는 위로......

나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시어머님의 위로와 지혜를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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