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꾸는나 Oct 09. 2021

살아가는 이야기 <초등학생 아들 둘 맘의 한달살기>

아들 둘과 한달살기 두 번을 떠나며 느낀 점.

몇 년 전 언론에 한참 버킷리스트가 유행할 무렵 내가 적어놓은 버켓 리스트에 제일 첫 번째 목록에 ‘외국에서 한달살기’를 보던 신랑은 툭 한마디 던졌다.

‘아이들이랑 매해마다 한달살기하면 정말 좋겠네. 올해부터 가 봐’

‘나중에 애들 크면 가야지~ ’

하고 웃어넘겼는데 어머 낫, 이 남자가 정말 예약해버렸다. 비행기가 취소 가능하니 걱정 말라며 예약하고 숙소도 취소 가능하다며 예약을 해버리고는 정말 몇 달 뒤에 베트남 호찌민으로 떠나게 되었다. 남편 없이 여행하기는 제주도 일주일이 다인데 심지어 외국이라니? 얼렁뚱땅 예약하고는 애 낳고 씩씩하고 아들 둘 맘은 대책 없이 몸이 이끄는 대로 떠나버렸다.


가자마자 숙소에는 도둑이 들고, 돌아오는 주에는 코로나가 시작되었다. 지나고 나니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죽을 맛이었다. 한국형 외국 한달살기는 아이들을 한달이라도 어학원에 가는 것이 정석이지만 나는 용감하게도 셋이 열심히 동네 구석구석 돌아다녀 보기로 했다. 아이들이 잘 따라와 준 덕분에 호찌민에서 한 달을 지내면서 1주일간은 나트랑도 다녀오고 2일은 무이네에 다녀올 수 있었다.

이 경험을 바탕 삼아 올해 여름에는 강릉에서 한 달을 잘 지내다 왔다. 지금도 아이들과 한 번씩 추억에 잠긴다. 호찌민의 야경, 강릉의 매일 다른 모습의 바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우리 셋만의 추억이다.


한달살기를 마치면 우리 집인 일산에서 다시 평소에 살던 우리의 일상을 다시 시작한다.

그러다 종종 다투는 날이 생긴다. 그럴 땐, 최고의 약이 있다.

‘우리 한달살기 할 때 진짜 행복했는데..........’하며 이야기를 시작해본다. 분명 여행 당시에 지지고 볶던 일들은 다 잊어버리고 좋은 추억들을 줄줄줄 읖어가기 시작한다. 폭염에 길바닥에서 네가 맞네 내가 맞네 싸울 때는 언제고 이제와서는 좋은 일만 있던 것처럼 가득 포장되었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지만, 결과적으로는 늘 그때가 좋았어......... 라며 여행 이야기를 마무리하곤 한다.

아이들과의 좋은 추억거리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대화할 거리가 많다는 것이다. 가끔 일상 속에서 아이들과 소소한 다툼과 마찰에 집안 분위기가 냉랭할 때는 슬쩍 여행할 때 좋아했던 음식 사진이나 여행 사진을 보여 주곤 한다. ‘이때 좋았지~?’하며 물꼬를 틀면 아이들이 서로 신이 나서 그때 ‘뭐가 맛있었네, 어디가 좋았네’ 하며 싸웠던 것도 잊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열심히 이야기를 한다.


이 맛에 여행을 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함께 고생하고 지나고 나면 함께 미화시킨다. 평범한 일상 중에도 한 번씩 추억을 함께 꺼내 본다. 함께 공유할 수 있는 행복한 추억이 많아진다는 것, 그것이 내가 한 달 살기를 계속하고자 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두번의 한달살기를 하며 또 다른 한달살기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한걸음 서서 쉬며 아이들과 나에게 온전히 집중하며 성장하는 아이들과 나를 바라보게 된 것이다.

아이들이 언제 이렇게 컸나? 싶은 땐 한달살기 여행 때의 기억을 떠올려본다.

베트남에서는 수영장 한번 가려면 하나하나 다 챙겨주던 손이 가던 아이들이었는데....

강릉에서는 바닷가를 갈 때 아이들이 스스로 수영복도 찾아 입고 선크림도 바른다.

심지어 먼저 나가서 엄마를 기다린다.

'엄마~ 빨리 나와~'

밖에 서서 엄마를 기다리는 두 아들을 보니 절로 입가에 웃음이 지어진다. 욘석들 언제 이렇게 컸나 싶었다.

혼자서 준비하느라 지쳐서 막상 수영장에 가면 썬배드에서 잠들어버렸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올라온다. 해마다 한달살기를 하며 가장 크게 느껴지는 것은 아이들의 성장이다.

평소에는 내 일도 바쁘고 아이들 학교와 학원을 챙겨주느라 정신없어서 어떻게 자라는지 생각할 틈도 없다. 하지만 한달살기 동안에는 온전히 아이들만 바라보게 된다. 그누구와도 만나지 못하는 고립? 상태이니 아이들과 온전히 집중하고 함께 시간을 나누게 된다.

아이들과 함께 하루 종일 보내려면 나만의 시간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강릉에서는 새벽에 꼭 기상해서 조용히 나에게 집중했다. 그 덕분에 나 자신의 좋은 변화도 한달살기를 통해 느끼게 되었다.

베트남에서는 혼자만의 시간이 그리워 늘 늦게 잠들고 늦게 일어났다. 하지만 새벽 기상을 실천했던 나는 강릉에서는 새벽에 기상해서 조용히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마시며 새벽시간을 즐겼다. 달라진 나의 모습과 긍정적 변화를 몸소 체험하면서 내 삶에 좋은 습관을 갖게 되었다.


한달살기를 통해 이뤄낸 것도 많고 해낸 것도 많다. 물론 실패의 경험도 많다. 하지만 그럴 때는 생각한다. 내년에 갈 때는 그 계획도 성공해보자~! 쿨하게 생각한다.

모든 것은 한 번에 이뤄낼 수 없기에 다 같이 도전하는 마음으로 다음 해에 갈 곳과 기간을 정하곤 한다. 아직 어디로 떠날지 미정이지만 어디를 갈까 정하는 그 순간도, 정하고 기다리며 설레는 순간도, 한달살기의 기간을 즐기는 순간도, 지나고 나서 추억하는 순간도 모두 소중하고 행복하다.


한달살기를 하며 글을 적고 싶었던 이유가 있다. 지나고 나면 잊혀지기에 글로 남겨서 그때의 마음으로 더욱 생생히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도시를 갈지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아이들과 나의 한달살기는 언제나 '도전' 그 자체라는 것이다. 이 도전을 통해 행복하고 성장할 수 있음을 알기에 앞으로도 매해 용기 있게 떠날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가죽공예 수업 이야기<카드지갑 목걸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