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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나 Oct 20. 2021

가죽공예 이야기 <가죽 노트 커버>

노트 쟁이의 가죽 노트 만들기!

처음부터 가죽으로 제작할 생각은 아니었다. 때마침 노트를 자주 쓸 일이 생겼고,

내 것 만들면서 아이들도 만들어주면 좋겠다 하는 생각에 만들게 되었다.

처음에는 사이즈를 못 맞춰서 노트의 앞장을 잘라서 꾸역꾸역 집어넣는 대 참사가 일어났다.

그 후에 만든 커버는 조금 여유를 두고 만들었더니 다행히 어지간한 B5노트에 잘 맞게 만들어졌다.

한번 만들고 나니 노트를 좋아하는 몇몇 지인들이 떠올랐다.

 

신랑에게 혹시 필요하냐고 하니 역시, 필요 없다고 했다. (흥칫뽕)

가장 먼저 나에게 선물하고, 그다음은 나의 25년이 넘은 친구에게 선물했다.

그 뒤로 나의 아이들과 일산에 이사 와서 많은 도움을 주신 교회의 지인에게 선물했다.

정말 다들 노트를 잘 쓰는 분들에게 선물하게 돼서 마음이 흐뭇했다.


첫 번째로 선물한 나의 오랜 친구는 선물 받는 길로 나와 함께 문구점에 달려가서 여러 권의 노트를 샀다.

커버가 흔한 노트 사이즈로 제작해서 어지간한 노트는 다 들어갈 수 있게 되어있었다.

죽을 때 관 속에도 노트 같이 넣어 달라고 말하는 나의 친구는 진짜 그럴 사람이었다.

뭘 사든 기본인 10년을 사용하는 사람이다. 뭘 줘도 아깝지 않다.

볼펜도 샤프도 이 친구 필통에 들어가면 본인의 수명을 다 할 때까지 나오지 못한다.

볼펜이야 수명이 짧지만 샤프는 샤프심을 넣는 대로 사용을 하니 지금

한 20년 정도를 같은 샤프를 쓰는 것 같았다. 나로선 정말 불가능할 일을 해내는 친구다.

뭘 선물해도 아깝지 않은 친구에게 나의 작은 재주로 선물을 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우리 아들들은 열심히 만들어 줬더니 책장 어디론가 내팽개쳤다가 지금은 그림 그리는 노트로

만들어서 열심히 쓰고 있다.


나 또한 여전히 안에 노트만 바꿔서 열심히 사용 중이다. 3권의 노트가 바뀌어지는 동안 나와 함께

동거 동락한 노트 커버는 이제 손때가 묻어가고 역사가 깊어져 가면서 더 이상 물건이 아닌

내 책상 위의 동반자가 되어가고 있다.  


 

가죽공예 작품들은 이런 점이 정말 좋다. 나와 함께 오랜 세월 늙어 갈 수 있다는 것!

물론 쓰기 나름이겠지만 질려서 못쓰는 일은 생겨도 찢어질 일은 거의 없다.


물건이 너무 흔해져 버린 요즘, 물건에 치여 사는 지금, 예쁜 것이 만연한 오늘,

나만의 것이 이렇게나 좋구나 새롭게 깨달아간다. 

자꾸만 작품에 의미 부여하게 되는데 정말 하나하나 재단해서 한 땀 한 땀 

만들어가다 보면 무엇하나 쉬운 과정이 없는 가죽공예에서 하나의 물건들은 

그 이상의 가치가 실현되어 작품이 되어간다.


오래오래 쓰고 싶고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내꺼라는 마음이 강하게 든다. 

내가 그간 선물도 하고 만들어서 팔았던 모든 작품들이 나에게 소중하고 특별하다.

잘 입양돼서 그 누군가의 손에서 오래오래 잘 쓰이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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