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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나 Oct 25. 2021

살아가는 이야기 <시어머니의 따뜻한 위로>

아들래미 학습 상담으로 시어머니와 대화하며 마음을 위로받은 대화

매해 나에게는 두려운 시간이 있다. 태어날 때부터 이때까지 나의 가장 아픈 손가락이자, 걱정과 염려 속에 애간장 녹이며 키우는 나의 큰아들의 학교 상담 시간이다.

올해 초등학교 4학년 된 아들내미의 담임 선생님과의 상담에서 보충학습에 대한 말씀이 없으셔서 안도했는데 역시나 또 올해도 편하게 지나가긴 그른 것 같다. 상담 후 며칠 뒤에 담임선생님께서 우리 큰 아이가 학습이 부진하다고 학교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전화가 온 것이다.


매해 받는 연락이지만 매해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특히 올해는 집에서 예전보다 공부도 많이 하고 노력한다고 했는데 연락이 오니 마음이 더욱 아파왔다. 살면서 올해 가장 열심히 수학을 했다던 아이에겐 뭐라고 답해야 할까? 여러 가지 생각에 마음이 착잡했다.


우리 큰 아이는 다른 친구들보다 늦되고 이해가 빠르지 못한 편이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고 받아들였는데. 선생님과 통화하며 울컥 속상함에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통화 밖으로 들려오는 담임 선생님은 참 좋은 분이셨다. 정말 아이를 걱정하고 생각해주시는 마음에 연락해주심이 느껴졌다.

"어머니, 늦게 이해하고 늦게 깨닫는다고 나쁜 게 아니잖아요? 아이들마다 각자 속도가 다른 거예요. 어머니께서 속도에 맞게 잘 배려해주고 계신데, 아무래도 수학 사칙연산은 다시 짚고 넘어가야 5학년 때 고생을 안 할 것 같아요. "


선생님께서는 아이들이 각자의 학습 속도가 빠르고 느림이 결코 잘하고 못하고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해 주셨다. 자기 속도대로 이해하면서 좀 느리면 더 공부해서 보충해나가면 된다고 말씀해 주셨다. 괜시레 죄책감이 들어서 잘 가르쳐서 보내지 못해 죄송하다고, 학원을 보내기엔 다른 아이들과 맞지 않아서 그럴 생각을 못했다고 덧붙였다. 그러자 선생님께서는 따뜻하게 위로해주셨다.


"어머니, 선생님들도 자기 아이들은 집에서 못 가르쳐요. 온유의 속도에 맞춰서 학교에서 잘 보충해서 학습하겠습니다. 염려 마세요"

선생님의 위로에 또다시 울컥 눈시울이 붉어졌다. 큰 아이는 자라면서 여러 가지 일들로 나의 마음을 아프게 했지만 그래도 특별히 건강에 문제가 없으니까 괜찮다고 스스로 위로하며 마음을 달래 보았는데, 이런 문제 앞에선 늘 다시 무너지고 만다. 선생님과 통화 후에 한동안 우울했고 한동안 마음이 아팠다. 모두가 내 탓 같아서......,

심란한 마음에 친정엄마께 전화를 했다. 엄마께선 유난히 우리 큰 아이를 많이 아끼시기에 속상한 마음에 여러 가지 푸념을 하셨다.

"그러니까 네가 미리 공부를 시켰어야지. 애가 힘들다고 자꾸 학원도 안 보내고 집에서만 하려니까 그러지!"

"올해는 온유도 많이 노력했어. 알겠어~ 암튼 애들 집에 올 시간이야 다음에 전화할게"

갑자기 나도 모르게 큰 목소리를 내고 서둘러 친정엄마의 전화를 끊어버렸다. 걱정되는 마음에 하신 말씀인걸 알지만 오늘따라 그 말이 가슴속에 가시처럼 박혀버렸다.


저녁시간까지 하루 종일 자책감으로 우울하게 보냈다. 그러고는 시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한참 큰 아이 이야기를 들으시던 어머님이 말씀하셨다.

"이것 보라~ 우리 온유가 복이 많다 아이가~ 이런 좋은 선생님도 만나고 또 공짜로 공부할 기회도 얻고.....,

딱 제때제때 맞춰서 하나님이 주신다 아이가~"

크리스천이신 어머님다운 답이었다. 하지만 그 말에 왜 그리 안도가 되는지......., 하루 종일 시끌시끌했던 마음이 점차 안정되어간다.


그러고 나서는 낮에 친정 엄마와 통화한 이야기를 쏟아냈다. 친정엄마의 말에 또 한 번 속상했다며 투정을 부리자 어머님께서 또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다 걱정되시니까 하는 말씀이시제 을메나 속상하시겠나~ 그런데, 미안하지만 메느리야, 느그 남편도 마이~

늦었데이~ 하하하하하 와 그런걸 닮았노?"

"진짜요? "

"하모~ 마이 느렸다. 내가 우리 온유를 보면, 항상 우리 아들 어릴 때가 생각난다. 다 잘 클 거야. 나도 우리 아들이 공부를 못해가, 지금처럼 될지 몰랐어~"


공부를 많이 못했다던 남편은 공대를 졸업하고 지금 로봇연구원으로 살고 있다. 아빠와 같은 꿈을 꾸는 아이는 때가 되면 아빠처럼 공부를 잘할 거라고 믿고 있는데, 나는 점점 그 믿음이 깨지고 있었다. 그냥 잘 자라기만 해도 좋겠다. 공부까지 바라면 사치다. 해왔는데 어머님은 자꾸 확신하신다.

"우리 온유는 분명히 자기가 할 때가 되면 잘 될 거야. 꼭 공부가 아니라도 온유는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잘 살 거야 너무 걱정 말그레이~ 그냥 마음으로 기도해주는 것밖에 없데이~ 내도 다 내려놓고 기도하니까 어느 날 믿는 만큼 잘 자라주었다 아이가~ "


'엄마가 믿는 만큼 크는 아이'

몇 년 전에 서점에서 제목만 보고 충동적으로 구매했던 기시미 이치로의 책 제목이었다. 책장 어딘가에서 꾸역꾸역 찾아서 다시 읽었다.


부모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아이는 고난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고 지켜보는 용기를 갖자.


어머님 말씀을 듣고 다시 잊었던 책도 꺼내 읽고 다시 일기를 꺼내 들어 적었다.


그래, 어머님 말씀처럼 믿어보자. 다시 믿어보자. 내 아이는 분명히 잘 자랄 것이다.
나의 근심과 걱정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이 시기만 이겨내면 또 새롭게 성장하고 배워 나갈 것이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나는 자라는 것을 지원할 수 있을 뿐이다.


우리 어머님이 신랑을 키운 지 30여 년도 넘었는데 아이들 표현에 의하면 딱 한 명 키웠을 뿐인데.....,

어쩜 이렇게 늘 필요한 말씀만 해주시는지 모르겠다.

내 마음에 태풍이 휩쓸고 지난 자리에 다시 희망이 채워졌다. 아침 일찍 일어난 아이에게 꽉 끌어안고 말해주었다.


"내 사랑 온유야, 할머니가 말씀해 주셨는데 아빠도 이해가 늦었대. 온유도 빨리 이해하기 힘든 일 너무 많지? 얼마나 속상하고 힘들었니? 그래도 빨리 이해하면 빨리 까먹고 천천히 이해하면 오래오래 기억하는거라고 한말 기억하지? 올 해도 잘해보자. 엄마는 널 믿어. 분명히 우리 온유는 또 이번 수업을 기회로 잘 성장할 거야.

엄마는 온유가 첫 아이라서 모든 것이 부족해. 엄마가 잘 모르고 너무 닥달하고 빨리하라고해서 미안해.

온유는 너의 속도대로 잘 가고 있어. 잘 자라줘서 고마워.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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