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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나 Dec 21. 2021

겨울, 얼어붙은 손과 마음을 녹여준 작은 아들내미

절대 차별 안 하고 키우겠다 자신했는데, 현실은 늘 작은 아들은 찬밥이었

요즘 날씨가 부쩍 추워지고 해가 빨리 져서 초등학교 2학년 작은 아들이 피아노를 마치면 데리러 가기 시작했다. 조금 일찍 혼자 등하교를 하고 아파트 단지 안에 피아노 학원도 혼자 곧잘 다니던 똘똘한 작은 아이는 엄마가 데리러 온다고 하니 당황한 듯 갸우뚱했다.

갑자기 왜? 나 혼자 집에 잘 가는데?

"응 알지, 해가 빨리 져서 혹시라도 아파트 안에 차들이 우리 아들 못 볼까 봐 그렇지~"

어느덧 한 달 정도? 나와 함께 거의 매일 피아노 수업을 마치고 집에 함께 가고 있다. 둘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집이다. 어제는 갑자기 자꾸만 자기 주머니를 가리키며 여기에 손을 좀 달라는 것이다.

"~ 엄마 추워 엄마 잠바 주머니에  넣을 거야~"

" 엄마 추우니까  잠바 주머니에  넣으라고~ 여기가 정말 따뜻해서 그래~"

울컥 감동의 도가니였다. 언제 컸나 싶고 이런 날이 얼마나 더 있을까 싶었다. 대부분 아들내미와의 대화는 집에 가는 길에 달님을 보고 별님도 보고 학교일도 이야기하고 피아노 학원에서 연주하는 곡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이제는 먼저 엄마를 챙겨주고 아껴주는 모습이 얼마나 기특한지, 고마워서 눈물이 핑 돌았다.

바쁘다고 잘 챙겨주지도 못하고 둘째라고 막 키운 것 같은데, 넌 왜 이렇게 나를 생각해 주는 거니? 미안함과 고마움과 감동이 밀려왔다.

지난 양육의 시간을 되돌아보면,
나는 언제나 늘 큰 아이가 우선이었다.

나는 집안의 장손인 오빠 하나를 두고 둘째 딸로 태어나서 살면서 서러움이 참 많았다. 그래서 작은 아이를 낳을 때 결심한 것이 절대 차별 안 하고 키울 거라고 큰소리 뻥뻥 쳤다. 하지만 아이 둘을 키우다 보니 어느새 비교적 순하고 손이 덜 가는 작은 아이는 늘 뒷전이었다.

말이 늦고 발달과정이 전반적으로 늦된 큰 아이에게 온 관심을 갖었다. 말 한마디를 떼도 그렇게 기뻐했고 뭐하나 그림을 그려오고 알 수 없는 속된 말로 '예쁜 쓰레기'를 만들어와도 세상 그렇게 훌륭할 수가 없었다. 당연히 큰 아이에게는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을 해줬다.

반면에, 대부분 둘째의 특성상 이것저것 눈치껏 잘하고 뭐든 빠른 둘째 아이에게는 뭘 해도 큰 감흥이 없었다.  이야기를 잘 들어준 적도 없었고 되려 조잘조잘하는 아이에게 말이 많다고 타박을 줬었다.

성격이 닮아서 잘 맞는다고 여겼던 작은 아이와 관계가 어느 날부터 틀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 초등학교 입학쯤이었다. 자유로운 분위기의 유치원을 다녔던 아이들은 유치원 생활중에는 특별히 칭찬받거나 혼날 일이 없었는데 학교 생활이 시작되면서는 비슷한 시기에 시험을 보고 큰아이가 봤던 시험을 같이 보고, 함께 피아노와 영어 학원을 다니다 보니 서로 비교와 경쟁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칭찬받고 싶은 작은 아이와 이제는 동생에게도 뒤쳐지는 것 같아서 속상하다는 큰 아이....

둘 사이에서 나는 가장 최악의 엄마가 되고 있었다. 칭찬받고 싶은 아이에겐 핀잔을 주고 뒤쳐져서 속상하다던 큰 아이에겐 타박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엔 중립이었으나, 자꾸만 작아지는 큰 아이를 채근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더 열심히 해야지! 하며 채찍질을 하게 되었다. 칭찬이 고픈 작은 아이에게는 눈치 없이 형 앞에서 자랑하지 말라고 혼을 냈다. 돌아보니 지난 2년의 생활이 후회가 밀려온다. 모두가 내 탓인 것만 같다.


순했던 작은 아이의 반격은 시작됐다.


어느 날은 수학에 90점 맞았다고 신나서 오는 아이에게 가시 돋친 말을 해댔다.

"넌 왜 100점 맞을 수 있는걸 꼭 한 두 개씩 틀리니?"

"100점 맞을 수 없는 거니까 그렇지! 내가 뭐 일부러 틀렸겠어? 형은 80점 맞아도 잘했다더니?"

꼭 맞받아쳐야 속이 시원한 둘째 아이는 눈을 흘기며 쏘아댔다. 지켜보던 남편이 나섰다. 잘했다면서 한두 개는 사람이니까 실수하는 거라며 시험 잘 봤으니 맛있는 걸 사주겠다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거실 한편에서 그걸 물 그럼 히 바라보는 큰 아들의 모습이 속상했다.

"유빈이 좋겠다. 나는 80점이 제일 잘한 건데...."

"온유야! 괜찮아 너는 대기만성형이야~ 80점도 엄청 잘했지~ 작년에는 20~30점인데, 그리고 시험 잘 본다고 다 잘한 거 아니다. 걱정 마 괜찮아"

위로 아닌 위로를 해주며 가슴이 큰 아이가 짠했다.


 "유빈아! 이제 점수로 자랑하지 ! "
"알겠어! 이제 엄마 앞에서 점수 얘기 절대  
 거야 됐지!?"

씩씩 거리며 소리치고는 방으로 들어가 버린 작은 아이를 뒤로 하고는  아들을  안아주었다. 그때는  작은 아이의 마음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그냥 아이의 순수한 마음이었다.  아이를 의식해서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작은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주지 못한  같아 가슴이 아프다.

나 또한, 어린날에 비슷한 일들이 있었다. 그때 당시 나는 엄마에게 칭찬받으려고 부단히도 노력했다. 매일 일하고 돌아오는 엄마를 위해 청소도 해놓고 설거지도 해 놓았다. 하지만 칭찬보다는 핀잔을 많이 들었다. 반면에 오빠는 한때 부모님 속을 많이 썩여서인지 학교만 잘 다녀도 그저 착하다는 말을 들었다. 그때 느꼈던 허탈감과 억울함, 그것이 지금 나의 작은 아이가 느낄 마음이 아니었을까?

요 며칠 내내 작은 아이를 생각하며, 요즘 나의 잘못된 행동 하나 하나를 다시금 곱씹어본다. 후회되는 일들이 어쩜 이리도 많은지 나의 부족함을 다시 깨닫게 된다. 하지만 절대 좌절 금지. 아직도 나는 양육 중이고 아직도 아이들을 키우며 몸소 배우는 중이다. 앞으로 기회가 더 있다. 사실 지금도 육아 10년 차임에도 매일이 후회와 실패의 연속이다. 언젠가 듣고는 무릎을 탁 쳤던 한마디가 있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야


예전에 나였다면 좌절하고 또 그 화가 되려 마음에 쌓여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활화산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젠 나를 인정하고 받아 주려한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야, 다 잘할 수 없어 이해해줘. 하지만 어제보단 나은 오늘의 엄마가 되도록 노력할게 하며 말이다.

양육하며 가장 큰 바람은 작은 아이는 작은 아이대로 큰 아이는 큰 아이대로 아이들 또한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고 아껴주며 성장시켜주고 싶다. 이 다짐을 지키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일은, '상처'주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이다. '화'내지 않는 엄마가 되고자 다짐한 것도 이 이유였다. 그런데 화를 내지 않고 지내려다 보니 점점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어가고 있다. 점점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보게 된다. 화가 나는 것은 항상 가장 중요한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보지 않을때 나타났다. 아이의 마음보다는 내 의견이 중요했고, 겉으로 다정한 척해도 어디까지나 내 기분이 좋을 때만 아이에게 예쁜말과 행동으로 대했다.  


내가 일명 無화 엄마가 되겠다고 다짐한 후로 아이들이 많이 변했다. 위에서 언급한 작은 아이의 예쁜 말도 한 달간의 노력 후에 나타났다. 내가 화내지 않겠다고 다짐한 후로 아이들은 반신 반의 했다. 왜냐하면 매해 그 약속을 했고 지킨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6주가 지나고 7주차에 접어든 오늘, 아이들은 나보다 더 많이 변해 있었다. 감사하게도 정말 긍정적으로 변했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양육서 쓰시는 분들이다. 집에 양육 관련 책이 가장 많은데 나는 읽기만 할 뿐 그것을 지켜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한 없이 부족한 내가 아이들을 키우는 글을 남기는 이유는 오로지 나를 위함이기도 하고 아이들에게 주는 반성문이기도 하며, 조금 더 나아가 다른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공감과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마음에서다. 양육서에 나온 훌륭한 엄마는 아니지만,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한, 내 그릇 안에서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더 나아지고자 노력하며 살고 있다. 앞으로도 현재 진행형이다. 꾸준히 글을 남기며 나아지는 엄마로써의 나를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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