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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나 Dec 27. 2021

'화'내는 엄마 '無화'로 보낸 7주일 '강릉여행’

'화'는 '화'를 부른다. '화'를 멈추니 평온함과 감사함이 온다.

 세 달 전부터 예약해놓은 강릉 여행인데, 가기 전에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 심각해진 코로나도 그렇고 영동지역 폭설 예보에 내가 사는 지역은 영하 18도까지 간다는 기사가 연이어 나왔기 때문이다. 아파트 1층에 살고 있어서 매해 베란다가 역류하기에 이럴 때일수록 집콕하며 계속 집 상태를 확인해야 했다. 하지만 남편은 완고했다. 오랜만에 아이들이랑 겨울 바다 보고 호텔에만 있다가 금방 집에 오면 된다고 했다.

정말 내키지 않았지만 이런저런 걱정을 끌어안고 우선, 떠나기로 했다. 아이들과 강릉 한 달 살기 이후로 매일 강릉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에게 차마 크리스마스 여행이 취소되었다며 실망을 시킬 수 없었다. 걱정 한가득 안고 떠났지만, 막상 떠나고 보니 여행은 늘 그렇듯 가슴 설레고 매 순간이 행복했다.

도착하자마자 우리 가족의 아지트와도 같았던 강문해변에 달려갔다. 아이들은 오랜만에 바다 구경에 신이 났다. 3시간을 넘게 쉬지 않고 달려온 덕분에 아침에 도착한 우리는 아이들을 바닷가에 풀어놓고 한참 조용히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때였다.

“엄마~~~~~~ 어떡해 신발에 바닷물 들어갔어.”

역시 조용하게 지나가면 입안에 가시가 돋치는 작은 아이였다. 신발과 양말이 흠뻑 젖어서는 비 맞은 강아지 마냥 요리조리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자기 깐에는 혼날까 봐 이 말 저 말을 보태며 춥지 않다는 둥, 말리면 된다는 둥 핑곗거리를 찾고 있었다. 순간 여름에 한 달 살기를 할 때 매번 바다에서 같은 상황이 반복됐던 일이 떠올랐다. 그때는 참 많이도 혼을 냈다. 그러길래 왜 꼭 위험하게 거기 가냐, 엄마가 몇 번이나 주의를 줬는데 매번 이러느냐 속사포처럼 잔소리가 줄줄 나왔었다. 이번에는 불과 두 달 전의 나와는 다르게 대처했다.


“어쩔 수 없지, 일어난 일에 대한 건 어쩔 수 없잖아, 앞으로 해결할 일만 생각하자. 그냥 엄마 방한 부츠 신어볼래?

양말 두껍게 신으면 될 것 같은데…”

“엄마, 엄마가 이상해. 착해졌어”

“그래? 이거 칭찬이야?”

그 말에 아이는 안심한 듯 함박웃음을 짓고 쫄랑쫄랑 주차장으로 따라온다. 신발이 엄마 부츠라서 불편해서 어쩌냐는 질문에 원래 이런 부츠 신어보고 싶었다며 정말 편하다고 껑충껑충 뛰어 보인다. 그래, 별일이 아니었다. 매번 화내고 잔소리하고 짜증 내봐야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그저 귀찮은 일이 늘어난 것에 대한 훈육을 가장한 화풀이 었다. 따지고 보면 파도를 예상하지 못한 것은 잘못도 아닐 것이다. 실수도 잘못도 아니다. 그냥? 자연재해? 아이가 그러니까 아이지. 너그럽게 받아줄 수 있는 문제였다.


저 멀리서 보니 바닷가에 나온 다른 어른들도 신발이 젖어서 동동거리는 모습이 보인다. 그동안의 나의 잔소리가 그냥 우스워졌다. 그래, 잔소리 듣는다고 고쳐질 일도 아니고 바다의 파도는 피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천성이 모범적이고 조심성이 많은 큰아이처럼 저 뒤에서 멀직하게 서서 파도를 구경했다면 파도에 신발이 젖을 일이 없겠지만 큰아이는 나의 가르침이나 잔소리를 들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정말 타고나길 조심성이 많은 아이였다.  반면에 작은 아이는 어떤 상황에서도 물 만난 망아지처럼 뛰어다니고 천성이 어디서든 거리낌 없이 달려든다. 그런 아이가 파도를 만났으니 얼마나 신나게 뛰어 다녔겠는가, 물론 돌아오는 차 안에서 걱정 어린 말을 해주었다.


“파도는 항상 조심해야 돼 언제 덮칠지 몰라, 오늘 봤지? 바닷가에서는 특히 파도가 높을 때 절대 구명조끼없이 수영하러 가면 안 돼 오늘 배운 거야 알겠지?”

그래 어른의 가르침이라면 이런 것이겠지. 어떤 짜증과 분노가 섞이지 않은 말 그대로 앞으로 더 나은 삶을 위한 충고였다. 화를 내지 않는다고 해서 뭐든 받아주고 매번 사랑과 애정으로 내 마음을 꾹꾹 누르며 해야 할 말도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었다. 해야 할 말은 꼭 해주고 일방적인 지적이나 잔소리가 아닌 정말 마음을 다해 전해주는 말은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바다 구경을 실컷하고 호텔로 돌아와 요깃꺼리를 즐기고 있었다. 기상청의 예보는 어찌 된 일인지? 매우 정확했다. 정말 태풍 같은 바람을 동반한 대폭설이었다. 밤새 휘몰아친 폭설에 잠을 설칠 정도로 무서웠지만 아침에 나가보니 겨울왕국이었다. 아이들은 전날 봤던 영화 ’크리스마스라 불리는 소년’의 한 장면 같다며 신나 했다. 발이 푹푹 빠지는 강릉의 소나무 숲길을 신나게 뛰어다녔다. 바지 젖으면 안 된다며 열심히 따라다녔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냥 몇 번 말하다가 놔두어버렸다. 이런 날 발도 좀 빠져보고 눈으로 온몸으로 굴러봐라. 이때 아니면 언제 해볼까? 다 커서는 하래도 못할 일들일 테니까. 아이들은 신나게 눈밭을 뒹굴고 눈과 물아일체 돼서 아이들도 눈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러는 중에 장갑도 잃어버리고 얼굴과 손은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추울까 봐 걱정돼서 다시 양말과 신발을 갈아 신겨줬다. 젖어서 어떡하냐며 걱정하는 아이들에게 쿨하게 말해줬다.

“좀 더럽더라도 어제 입었던 옷 있으니까 괜찮아~ 신발은 불편하여도 엄마 꺼 트렁크에 있던 거 신어보자~”

아이들은 엄마의 낯선? 반응에 걱정하던 마음을 버리고 창밖에 눈 구경을 하느라 바쁘다. 우리 가족의 강릉여행의 루틴은 꼭 오죽헌을 가는 것이기에 마지막으로 들른 오죽헌에서 아이들은 또다시 신이 났다. 이제 말릴 생각도 안 했다. 그래, 신나게 놀고 어제 입었던 조금 꼬질꼬질한 옷 주워 입고 가자.

문득 아이들의 뒷모습에서 어릴 적 내 모습이 떠오른다. 꽁꽁 얼어버린 손으로 눈사람 만들고 쓰던 장갑과 모자는 눈사람에게 양보하고, 입김 호호 불어가며 오빠랑 신나게 눈싸움하던 어린 시절…. 늘 마지막은 너무 무자비하게 눈덩이를 던지는 오빠에게 화가 나서 팽 돌아서서는 먼저 집으로 가버렸다. 집에 들어갈 때는 물에 빠진 생쥐꼴을 엄마한테 틀킬까봐 조마조마해서는 몰래 후다닥 방으로 들어가 아무렇게나 옷 벗어던지고 아랫목에 등 지지며 귤 까먹고 티브이 보면 얼마나 뜨끈하고 행복한지….

지금 생각하면 별것도 아닌 평범한 날이었다. 왜 그런 흔하디 흔한 평범한 어릴 적의 일상이 지금은 생각만 해도 살포시 웃음 지어지는 날이 된 걸까?

나에겐 낭만의 날이 엄마에겐 얼마나 화나는 날이었을까? 다 젖은 옷가지들에 수십 번 사줘도 잃어버린 장갑들…. 땡땡 얼어버린 손과 일명 촌병이라는 볼때기가 벌겋게 달아올랐던 내 모습은 엄마가 얼마나 화나게 했을까? 다행히 엄마에게 안 걸려서 행복한 날로 기억되었을 것이다. 걸렸다면? 슬픈 날로 기억됐으려나?


아이들도 나중에 어른이 되고, 바로 오늘이 기억 저 멀리에 있는 가장 순수하고 즐거운 순간으로 기억되길 바란다.

나에게도 아무 생각 없이 망아지처럼 뛰어놀던 어린날의 행복한 추억이 있기에 어른이 돼서도 눈이 오는 날의 낭만을 느낄 수 있었다. 몸으로 그런 날을 겪어봤기에 추운 날뛰는 아이들을 봐도 이해할 수 있었다. 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는데, 내가 더 신이 난다. 남편도 어느새 동심으로 돌아가 아이들과 눈싸움을 시작했다. 나는 못 이기는 척 몇 번 함께 동참해주고는 다시 엄마의 자리로 돌아와 분주하게 아이들의 젖은 옷을 갈아입히고 양말과 신발을 챙겨 주었다.  젖은 옷가지들을 갈아입혀주고 나니 이제야 가슴한켠에 걱정스러웠던 마음이 편안하다.

추위에 오래 있었을 아이들이 걱정되어 조용하고 한적한 카페에 자리 잡고 아이들에게는 찐한 코코아 한잔을 주고, 남편과 나는 따뜻한 라테를 시키고 책을 몇 장 읽었다. 아이들은 미리 챙겨 온 과학 잡지를 언제 그리 뛰어다녔냐는 듯이 얌전하게 열심히 읽고 있다. 이 풍경이 갑자기 눈물 나게 행복했다. 창밖은 아직도 새하얀 눈이고 나는 가족과 따뜻하고 넓은 카페 소파에 앉아, 캐럴송을 들으며 남은 크리스마스를 여유롭게 보내는 중이었다. 늘 있던 일상이고 평범한 하루인데, 지켜 보는 내내 마음이 평온하고 행복했다.


수시로 걸려오는 친정아빠의 걱정 어린 전화가 나를 방해했지만, 그것도 사랑이었으리라. 나의 부모님은 내가 친정 부모님께 배운 대로 걱정하고 잔소리하고 계속 챙겨주는 방식으로 사랑을 하고 계신다. 나는 그 방법을 내 아이들 양육에서는 피하기로 했으나, 친정 부모님은 여전히 우리 가족을 친정 부모님의 방식대로 찐하게 사랑하고 계시다. 이제는 그 마음을 알 나이가 되니 이 마저도 감사하다. 다만, 나는 친정부모님의 방식대로 아이를 양육하지 않으리라 생각해본다.


더이상 근심하고 걱정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아이를 믿어주고, 내 걱정과 근심이 지나쳐 터져 나오는 잔소리와 분노를 표출하지 말자. 오늘도 다짐해본다.

나에게는 지난 7주간 그저 ‘화’가 줄었을 뿐인데, 왜 나 자신에게 마음의 평온함과 깊은 감사함이 더해졌는지 모르겠다. 오늘 하루만 봐도 화내고 파르르 분노하고 성질 낼 상황이 많았다. 그런데, 놓아버리고 포기할 일은 포기하고 내 선에서 할 수 있는 일만 하고 나니 내 마음이 편안하다. 내가 편안하니 가족 모두 편안하다. 지금 이순간이 감사하고 또 감사하게 된다.

만약 바닷가에 젖은 신발로 하루 종일 화를 냈다면? 눈싸움하는 아이들에게 옷 젖는다고 감기 걸리다고 화를 냈다면? 얼음판 위를 마구 뛰어다니는 아이에게 매번 주의 주며 나까지 스트레스받았다면? 장갑을 잃어버렸다고 징징대는 아이에게 또 잃어버렸다고 화를 냈다면? 아이는 아이대로 기껏 놀러온 여행에서 속상함이 쌓였을테고 나는 나대로 또다시 밀려오는 미안함과 자괴감이 빠져있었을 것이다. '화'는 '화'를 부른다. 지난 7주의 교훈이다.

매주마다 나의 변화를 적어보고 싶다. 사람은 한번이 변하지 않기에, 이렇게 메모로 나를 돌아보고 더욱 나은 모습으로 나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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