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꾸는나 Jan 06. 2022

화내는 엄마 '無화'로 보낸 8주 '화낸다고 달라져?'

'화'내는 엄마로 살았던 날들에 반성

 이제 화내지 않겠다 결심한 뒤 거의 두 달이 되어간다. 아직까지 크게 화낸 적은 없었다. 울컥 화가 밀려오면 왜 화가 나는지 그것이 진짜 아이들의 잘못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혹시 실수를 한 것이라면 스스로 해결하게끔 말로 설명해 주었다.그러다 보니 어느새 성격도 말투도 편안해졌다.


돌이켜보니 지난 두 달 동안 크게 힘들고 엄청나게 인내했던 것은 아니다. 욱 밀려오면 한 번이라도 머릿속에 '생각의 장치'를 돌렸다. 왜 화가 나는 것일까? 내 감정인가? 정말 화가 날 상황이었나? 잔소리를 하고 싶어질 때도 '생각의 장치'를 돌려 그 말을 들을 아이를 생각했더니 따발총처럼 터져 나왔던 잔소리 폭격기가 멈췄다.

그 후에는 마음이 짠해졌다. 나의 큰 아이는 토끼띠에 토끼 같은 아이다. 마음도 여리고 심성이 고운 아이다. 성격이 아빠 닮아서 조용하고 느긋하다. 내 입장에서는 속 터지고 답답하게 느껴진다. 성격이 느긋한 아이에게 매번 소리 지르고 빨리하라고 채근했다. 아이는 스스로 처리할 수 있는 양이 그 정도가 되지 않았는데 아이가 할 수 없는 양을 주고는 나는 옆에서 빨랑빨랑 안 한다고 속 터진다고 윽박지르고 화를 낸 것이다.

얼마 전 티브이에서 봤던 금쪽이네랑 비슷한 모습이었다. 분노조절이 안 되는 아빠와 조용한 아이가 나왔는데, 정도의 차이가 있었을 뿐 나 또한, 화가나면 아이에게 바로 화를 낸적이 많았다. 내 아이들에게 너무나 죄스러웠다. 내가 마구 입으로 뿜어 내는 그 화를 온몸으로 감당해야 했을 아이는 어땠을까? 어떤 마음으로 그 상황을 견뎠을까?


나의 작은 아이의 경우는 더욱더 심하다. 작은 아이는 나를 닮았다. 작은 일에도 파르르르 곧잘 화를 내고 욱 하면 꼭 그 말을 다 해버려야 했다. 그래서 항상 별일이 아닌데도 한번 일이 터지면 아이는 파르르르하고 나도 폭발하고 보다 못한 아빠가 합세해서 아이를 혼내고 야단치고 나서야 정리됐다. 그러고 나면 어느새 집안 분위기는 정말 싸해졌다. 작은 아이는 방에서 반성하는 척하다가 몇 분 뒤에 나와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헤헤헤' 웃으며 나왔다. 그 당시에는 '아유, 저 속없는 녀석' 했는데 잘 들여다보니 작은 아이는 나름대로 눈치를 보고 있었던 것 같다. 보고 배운 것이 엄마이니 화가 나면 무조건 질러댔을 것이다. 그러다가 혼나고 집안 분위기가 안 좋아 지자, 본인이 그냥 넘겨보겠다고 억지도 웃고 다른 사람들 기분을 맞춰주려고 애쓴 것이다.


둘 다 각자의 방법으로 엄마의 ''를 감내한 것이다. 그것을 '나'만 모르고 있었다. 엄마니까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다. ' '엄마니까 너네를 혼내주는 것이고, 엄마니까 걱정돼서 해주는 말이라고 엄마니까 이렇게까지 정신 차리라고 혼내는 것이다' 라며 어린아이들을 화로 다스리는 나를 자기 합리화했다.


사실 이렇게 글을 남기는 이 순간도 나에게는 큰 용기가 필요했다. 한 자 한 자 글을 쓰며 내 모든 육아 기간의 나를 반성해야 했고 나를 돌아보고 인정하기 싫었던 나와 마주해야 했다.


또 어떤 순간에는 '화'를 내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그간 내가 아이를 위해 쏟아온 정성과 사랑을 부정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름대로 열심히 아이들을 키우려고 노력했다. 처음 나의 '화'에 반기를 든 남편의 말도 그러했다. 화내지 말고 말하라고 처음으로 나에게 말한 남편에게 나는 악다구니를 쓰고 울었다.


"내가 그동안 아이들한테 해준 게 얼마나 많은데! 네가 그걸 짚 밟는 거야! 당신은 뭘 해줬는데!"


"아이들 위해 하고 있는 것 많지, 나도 알아.
분명히 잘하고 있고 노력하고 있어.
그런데 그런 것들이랑 '화'내고 소리 지르는 일은 다른 거야. 좋은 말로 이야기해주라는거야."

"아니, 내가 몇 번이나 소리 지르고 몇 번이나 주의 줬어!"

"그러니까 애들이지, 애들이 한번 말해서 들으면 애야?"


뭐 이따위 무책임한 말이 다 있나 싶어서 방에서 펑펑 울었다. 속으로 부글부글해서 며칠을 속앓이를 했다. 그런데  자꾸만 그 말이 목구멍에 가시처럼 박혀서는 계속 생각이 났다. 그래, 내가 아이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노력하는 일이랑 '화'내는 것은 다르다. 아무리 맛있는 사탕을 주더라도 아이들이 먹기 전에는 그게 사탕인지 모를 수도 있고 먹어라 먹어라 백번 말하고 소리 지르고 혼내면 먹더라도 그게 즐겁고 행복할까? 사탕을 먹더라도 불행하다면 내가 사탕을 준 걸까? 독약을 준 걸까? 그날 후로 여러 번 고민 끝에 장난반 진담 반으로 선언했다.


"엄마 이제 '無화'엄마야!이제 절대 화 안 낼 거야"

당당하게 선언하고 벌써 8주, 아니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은 9주 차에 들어가고 있다. 이제 화를 내지 않는 내가 나도 신기해지고 있다. 사실 정말 열 받을 일이 그간 꽤 있었다. 이번 주의 위기 상황은.....


1 ) 작은 아이가 고가의 롱 패딩 점퍼의 팔부분을 찢어먹고 왔다.

->실수한 것이니 뭐 그냥 알겠다고 하고 대신 같이 수선 맡기러 가자고 했다. 아이는 긴장해서 집에 오다가 엄마의 쿨한 반응에 웃으며 말했다.

"배운 점은 있어!!! "

"그래~ 이제 앞으로는 벽에 옷 긁으며 다니면 안 되겠지?"

"아니! 내 잠바가 진짜 오리털이었어!!! 오리털이 엄청 나왔어!!!"

"그거 거"

"아, 그래? 거위도 털이 그렇구나, 하하하하 하항"


2) 큰 아이가 햄스터 봇의 카메라는 샀는데 계속 뭐가 안된다고 징징 대며 나에게 해달라고 따라다녔다.

-> 기계 샀을 때 잘 안되면 얼마나 성질이 나는지 나 또한 잘 알고 있기에 백번 참고 계속 말해줬다.

"엄마도 뭐 샀을 때 작동 안 하면 그렇게 열 받더라~ 열 받는 마음은 아는데 설명서 잘 읽어보고 해결해보자. 그럼 너는 그만큼 배우는 거야"

곧이어 아이는 작동되게 했다며 신나 했다.


3) 작은 아이가 형아가 만들어온 연필꽂이 작품을 깨트렸다. 평소라면 조심성 없다고 잔소리 폭격기가 날아갔을 테지만 떨어져서 깨진 건 뭐 작은 일이니까. 대신 치우는 것은 함께 치우자고 했다 형에게도 작품 망가뜨려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시켰다. 아이는 사고를 치고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눈을 하다가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자 이내 밝아졌다.

"엄마! 나 형한테 사과했어! 내가 같이 치울게!!"


사실 이제 기억하려해도 기억조차 안 난다. 그래, 사실 대부분은 기억조차 안 날 소소한 일들로 아이들을 쥐 잡듯이 잡았을 것이다. 이제 남은 육아(?) 생활은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최대한 아이 입장에서 생각해주고 말로 상처 주지 않을 것이다.


부끄러움을 알면서도 이렇게 글로써 남긴 이유는 앞서서 말했듯이 우선, 아이들과 나의 역사를 최대한 솔직하게 기록하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혹시라도 나와 같은 사람이 있다면 나와 함께 조금씩 더 나아지는 모습을 만들어 가자는 의미에서였다. 그런데 요즘은 글을 쓰는 의미가 달라져가고 있다. 글을 써서 변한 것인지 글을 쓰니까 변하고자 한 것인지 정말 신기하게도 변하고 있다. 그 변화가 즐겁고 행복하다. 과거의 나를 끄집어내는 데는 아직도 큰 용기가 필요하고 아직도 부끄럽고 창피하다. 하지만 나는 더 나은 엄마가 되고 싶기에 매주 글로써 아이들과 나의 소소한 삶을 기록해 나가고 더 나은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


덧, 큰 아이가 몰래 써둔 일기장에서 발견한 글이다. 그간 왜 몰랐을까? 이렇게 마음이 예쁜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것을.... , 그저 먼 미래의 앞일에만 눈이 멀어 다른 아이와 비교하고 혼내기만 했다. 이제는 내가 아이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싶다. 화내기 전에 아이의 마음을 먼저 생각해주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초등학교 2학년 아들의 시, 제목 : 불가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