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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나 Jan 11. 2022

백만 년 만에 지하철을 타고 외출! "엄마, 늦게 와~

내 삶의 중심이 아이들이 아닌 나 자신이  되어가고 있다.

 정말 언제 나가봤는지 모를 혼자만의 주말 외출이었다. 잠시 가죽 시장도 가보고 친구도 만날 겸 해서 며칠 전 완성한 가방을 둘러메고 나갈 준비를 했다.

아이들은 전날부터 신이 났다. 아빠랑 라면 먹고 하루 종일 뒹굴거리면서 블록 만들고 만화책도 읽을 거라고 자랑을 한다. 어렸을 적엔 한번 외출하려면 신랑에게 이것저것 주의 주고 먹을 것들 준비하고 이래저래 분주했는데, 이제는 딱 나만 준비하고 나가면 된다. 어찌 된 일인지 어느 순간부터는 신나 보인다. 이 쉬운 척이라도 좀 하라니깐 작은 아이가 우는 척을 해 보인다.

"흑흑 엄마 늦게 와~~~~!!!!!"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품 안에 자식이라고 이제 제법 크고 나니 엄마 손이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시원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아니, 사실은 시원한 마음이 더 컸다. 더 이상 아이들 핑계로 못 할 일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가죽공예를 시작하고 가장 좋은 점은 아이들에게 일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엄마도 실수하면서 계속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보여 줄 수 있어서였다. 같이 성장하자고 말하며 같은 테이블에서 나는 작업을 하고 아이들은 숙제를 하는 모습은 정말 내가 가장 바랬던 꿈에 그린 모습이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가장 좋은 점이 또 하나 생겼다.


내 삶의 중심이 아이들이 아닌 나 자신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이제 "엄마 방에서 작업 좀 할게!" 하면 알아서 자기들 할 일을 한다. 처음에는 내 작업방에 들락날락 정신이 없었지만, 지금은 각자 할 일에 바빠서 조용하다. 더 이상 아이들 핑계로 못 할 일은 없어진 것이다. 내 삶의 중심이 아이들에게서 나 자신이 되어가고 있음을 종종 깨닫는다. 이 기분은 뭐랄까, 끊임없이 계속 찾고 있던 물건을 마침내 찾아낸 기분이랄까?

취미든 일이든 아이들을 키우며 자기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주 소소한 취미라도 오직 나 자신을 위한 일들은 정말 필요하다. 나는 그걸 잃고 살아왔다. 누가 나에게 말해 준 적도 없었고 당연히 엄마가 되면 아이들을 위해서만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잃어버리고 살았던 날들에 외로움을 잘 안다.




 나의 독박 육아의 시작은 남편이 이직이었다. 남편이 이직하면서 새로운 지역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친정과는 멀어졌고 시댁은 지방이라 어떤 것도 기대할  없었다. 모든 시간을 아이들과 함께 하며 독박 육아를 6-7 했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잠드는 순간까지 모든 시간연년생 들과 함께했다. 개인 시간은 당연히? 없었다. 밥도 편히 먹을  없었다.  유일한 탈출구는 아이들이 잔든 시간에 먹는 야식과 맥주였다. 덕분에 몸은 둘째 만삭일 때보다도 늘어났다. 여러 사정으로 어린이집을 중단했고 아이들은 오직 나만 바라보고 나에게 기대며 지냈다. 그때 남편은 남편대로 이직으로 인해 새로운 일에 적응하느라 힘든 시기였다. 서로 누군가를 배려하기에는 벅찬 시간들이었다.


보이지 않는 터널 속을 언제 끝날지 모를 길을 울며 걷고 또 걷는 기분이었다. 하루하루가 고되고 외로운 시간이었다. 내가 할 일은 오직 아이들을 잘 키우는 것뿐이라며 혼자 온갖 육아 서적을 섭렵했다. 엉망진창인 나를 위해주는 내용이 없었다. 아이에겐 언제나 친절해야 하고 엄마가 우울하면 아이에게도 영향을 미치니 우울해서 안되고 혼낼 때도 내 감정을 절제해야 하고 아이의 마음을 잘 다독여야 한다. 등등 나의 현실과는 맞지 않았다. 사실상 그때는 아이가 아닌 나를 먼저 돌봐야 하는 시간이었는데 나 자신도 돌보지 않으면서 누굴 돌보겠다는 것인지, 지금 생각하면 정말 나 자신이 안타깝고 답답하게 느껴졌다.

나는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잠드는 순간까지 아이들 뒤치다꺼리를  해야 했다. 서투른 살림 솜씨로 집안일도 힘들었고 갑작스러운 이사로 인해 늘어난 대출 이자에 금전적으로도 허덕였다.


그러고 보니 난 비교적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되었다. 24살에 남편과 함께 유학길에 오르고 싶은 마음에 급히 결혼을 하고 모든 것이 좌절된 채 한국으로 돌아와 26살에 엄마가 되었다. 주위에서 임신과 출산을 경험해 본 사람을 만난 적이 없었기에 궁금한 것들을 혼자서 책에서 정보를 얻으며 해결했다.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 이런 것일까?

 그러다 보니 책에서 나온 엄마들 같지 않은 내가, 언제나 나쁜 엄마가 된 것 같은 죄책감에 매일 아침이면 무엇인가 해보려고 노력하다가 역효과가 나기 일쑤였다. 어린아이들과 하루 종일 씨름해가며 낮동안에 키즈카페니 수족관이니 공원이니 열심히도 돌아다녔고 저녁이면 기진맥진해서 짜증이 폭발하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저녁이면 잠든 아이들을 보며 부족한 엄마라는 생각에 끊임없이 자책하며 눈물로 밤을 보냈다. 그 당시에 썼던 눈물로 얼룩진 일기장을 보면 지금도 가슴 한편이 아려온다.




 매일 같은 날들의 연속일 것 같았던 나날들이 흘러가고 어느덧 아이들은 초등학생이 되었다. 아이들은 점점 내 손이 필요한 날들이 지나갔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늘어났다. 영원히 엄마만 따라다닐 것 같았던 내 아이들이 점점 성장하고 있던 것이다. 돌이켜보니 내가 가죽공예를 시작할 때가 큰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때쯤이었던 것 같다.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하면서 정말 내 인생에 모든 포커스는 아이에게 맞춰져 있었다. 중간중간 갖았던 짧은 취미들도 모두 정리하고 아이에게만 집중했다. 그러던 중에 나도 아이도 지쳐갔다. 그때 때마침 가죽공예에 발을 들였다. 한참 공방에 다니며 정신없이 배울 때라 아이와 어느새 각자의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지금은 어느덧 햇수로 4년의 기간이 다돼가고 있다.

나를 점점 찾아가면서 아이들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됐다. 이제 모두가 한 개인이다. 아이들 또한 하루 종일 엄마와 함께할 때와는 다를 것이다. 일일이 지시하지  않아도 스스로 자신들의 일을 잘하고 있다.

어쩌면 '' 대한 생각이 변한 것도 아이들을  소유물이 아닌  개인으로 바라보게 됐기 때문이 아닐까?




이제 화내지 않겠다 다짐하고  달이 넘어간다. 이제는 화가  때도  아이들의 입장에서 생각할  있는 여유가 생겼다. 내가 나를 보살피고 나를 위한 시간을 갖다 보니 이제야 아이들의 마음까지 보살필수 있는 시간이  것이다.


지금까지 이 글을 쓰며 나의 양육시간을 되돌아봤다. 아직도 여전히 나는 부족한 엄마고 이따금씩 아이들이 내 것 이양 굴때도 많을 것이다. 그때마다 노력해야겠다. 글을 쓰며 마음을 다져야겠다. 또 나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만큼 아이들도 소중하기에 아이들의 생각과 의사를 존중해주어야겠다. 내가 하는 일과 나 자신에게도 우쭈쭈 해주기로 했으니까 양육의 시간도 잘한다 잘한다 해주고 싶다. 자책하고 비난해봐야 나만 상처받음을 잘 알기에 잘해왔다고 칭찬해주되 지금처럼 나쁜 점을 고쳐나가고 싶다.

2022년도 엄마로! 가죽공예가로!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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