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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나 Apr 02. 2022

초등학교 고학년 아들 둘 엄마의 성장기

스스로 왕따가 된 엄마와 셋이 과학관에 떠나버린 아들들과 남편

토요일, 여유롭게 새벽에 일어나 필사를 하고 있던 나에게 신랑은 뜬금없이 과천과학관을 가자고 했다. 분명히 어제는 호수공원 한 바퀴 돌자고 해서 새벽 산책도 걸렀건만....

알겠다고 하며 바쁘게 움직이며 준비를 했다. 남편은 옷 다 입고 기다리며 재촉을 하고 나는 동시에 두 아이의 옷을 준비하고 내 옷을 챙겨 입기에  순간 정신없이 바빴다. 큰 아이는 한번 말하면 바로 하는 FM성격이라면 작은 아이는 여러 번 말을 해야 한다. 서너 번쯤 말을 해도 장난치는 작은아이에게 울컥 짜증이 났다. 아침에 학교 갈 때도 늘 있던 일인데, 마음은 급해지고 다섯 번째 재촉할 땐 언성이 조금 높아졌다

"빨리 옷 입어. 아까부터 기다리잖아"

"어어어 어어어~ 알았다고!!!! 입는다고!!!

작은 아이는 되려 화를 냈다. 그러더니, 갑자기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다.

"엄마 우리 셋이 갈게. 오지 마"


기분 상한 마음에 냉큼 알겠다고 대답해버렸다. 사실 과학관에 굳이 가고 싶은 것도 아니었지만 작은 아이의 말에 나도 모르게 울컥 나쁜 심보가 나왔다. 작은 아이도 지지 않고 바득바득 말대답을 해나갔다.

"그래, 엄마 안 가면 더 좋아. 셋이 가~ 그럼 되겠네."

"잘 됐네~ 나 학교 숙제 감정일기 쓰기에 이거 써야겠다.

"과학관 간 거?

"아니~ 엄마 빼고 셋이 과학관 다녀온 거~"


중간에서 신랑은 중재해보려고 이 말 저말 해봤지만 이미 단단히 마음이 상한 나와, 셋이 가는 게 훨씬 낫다는 작은 아이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그러더니 셋이 주차장으로 갔다. 나는 전화로 신랑에게 뭘 챙겨주면 되냐는 말을 했다. 신랑은 몇 번 설득하더니 생수 한 병을 달라고 하기에 전해주러 나갔다. 이때까지도 내 마음도 반반이었다. 그냥 못 이기는 척 갈까? 그러다가도 자기들 좋으라고 가라는 건데 엄마 쏙 빼고 가겠다는 말을 한 작은 녀석이 너무나 얄미웠다. 남편 차로 가서 가방을 던져주는데 신랑은 별말이 없다. 작은 아이는 승용차 뒷자리에 앉아 있다가 창문으로 빼꼼 나를 쳐다보더니 말했다

"진짜 안가?"

"어. 니가 오지 말라며 셋이 다녀온다며? 엄마도 안 가도 상관없거든?"

"어 알겠어~ 안녕"


쌩 하고 차는 출발해 버렸다. 마음이 왜 이리 허탈하고 서운한 것인지. 처음 질러버릴 때는 나도 친구 만나고 신나게 놀 거다! 했는데, 막상 카톡을 다 돌려봐도 주말에 이렇게 바로 만나주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시간이 있으면 뭘 하겠나, 누군 만날 수도 없고 난 차도 없는걸........ 울컥 외롭다는 생각이 든다. 다행히 멀리 사는 친구가 내 신세한탄을 전화 통화로 다 들어주었다.  그러더니 신신당부했다.

"오늘 같은 날! 꼭 나가서 맛있는 거 먹고 카페도 가!알지?"


그 말이 목구멍에 가시처럼 걸려서 집에 멍하니 앉아있자니 계속 속이 껄끄러웠다. 고민하다가 밖으로 나왔다. 날씨는 왜 이리도 좋은 것인지, 꽃은 어쩜 이리도 활짝 들 피었는지... 혼자 터덜터덜 카페도 기웃거리고 식당들도 기웃거렸다. 그런데 선뜻 발걸음이 가지지 않는 것이다. 혼자 왔다고 이상하게 생각하면 어쩌지? 애들 친구 가족을 만나면 어쩌지?


평소에는 혼자 잘만 다녔지만 토요일이라는 시간이 뭔가 동네에서 어슬렁거리기 불편했다. 누가 날 보면 어떡하지? 별 쓸데없이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했다. 걷다 보니

동네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번화가까지 왔다. 마음속으로는 서점 가서 책 잔뜩 사야지. 필기류 잔뜩 사서 카페에서 놀아야지 했다. 평소에도 가족들과 자주 오던 서점이었다. 그런데 왜일까? 뭘 해도 기운 없고 재밌지가 않았다. 책을 골라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자꾸만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이와 중에도 애들이 걱정됐기 때문이다. 신랑이 밥은 먹였을까? 차에서 얌전히 갔으려나? 또 생각이 생각에 꼬리를 문다. 아이들 걱정으로 가득 찬다. 신랑에게 문자를 보내본다.

< 도착했어? 애들 밥은 먹었지? 난 갈 데도 없고 작은 녀석에게 서운하고 그렇네 셋째를 낳을까?>


마음에도 없는 소릴 보내고는 답문 없나 살펴본다. 이럴 때 위로해주는 남편이면 얼마나 좋을까? 역시나 답문은 없다. 깜깜무소식이다. 연락 기다리기 포기하고 혼자서 사람이 제일 없어 보이는 마라탕 집에 가서 마라탕을 먹었다. 사람이 없는 곳은 이유가 있구나. 혼자 보란 듯이 맛있는 점심 먹고 싶었는데 그건 일단 실패한 것 같다. 마라탕 집에서 나와 카페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혼자 가도 이상하지 않은 곳이 어디 있을까? 카페가 보이면 은근슬쩍 스캔 하 보며 지나갔다. 그러다가 저번 달에 가족들과 함께 왔던 카페가 보인다. 그 카페는 사람도 많을 것 같아서 거를려했는데 이게 웬일? 가족들과 있을 때는 몰랐는데 1인석이 엄청 많다. 심지어 카페 손님들이 거의 대부분 1인이다. 공부하는 분도 있고 컴퓨터를 하는 분도 있다. 갑자기 마음이 편안해진다. 창가에 자리 잡고 앉았다.


내가 브런치에 작가가 되고 정말 가장 행복한 것은,

혼자 신나게 수다 떨 곳이 생겼다는 것.

우울한 일도 속상한 일도 풀어낼 곳이 생겼다. 특별할 것도 없고 지극히 평범한 내 삶을 누군가에게 미주알고주알 속삭일 곳이 생겼다. 다른 작가님들의 글 중, 에세이를 읽으며 함께 공감하고 또 같이 웃고 울기도 한다. 나는 아직 다른 작가님들에 비하면 보잘것없지만, 나도 내 삶에 특별한 일들이 생길 때면 마음껏 글로 수다 떨 곳이 생긴 것이다. 매일 좋은 일만 가득하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누구나의 삶이 그렇듯 어떤 날을 맑고 어떤 날은 흐리고, 또 어떤 날은 비가 주룩주룩 흐른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오늘은 어떤 날일까?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 카페에 흘러나오던 음악이 버퍼링 렉에 걸려서 이상한 소리가 난다. 아. 아. 으. 으읏. 이. 이. 하며 음악이 중간중간 끊긴다. 직원분들은 바쁘신지 신경 쓰지 않고 우리 1인족들만 고개를 빼꼼히 들어 신경을 쓴다. 수다를 떨고 있는 다른 손님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데, 왠지 1인족 동지가 생긴 것 같아서 기쁘다.

문득 나 어릴 적에... 그렇다. 그 유명한 라테는....., 카페의 정의가 달랐다. 카페라 하면 연인이나 친구들이 가는 으른들의 장소였다. 카페가 그리 흔하지도 않았고 고등학교 때는 캔모아라는 빙수집은 몇 번 가봤을지언정 카페는 가본 적이 없다. 요즘은 카페만큼 흔한 곳이 없다. 쉴 때도 집이 아닌 카페에서 쉰다. 왠지 묘하다.

 

옛날 일에 꼬리를 물며 아이들 어릴 적이 떠오른다. 그때는 모든 것이 사치였다. 아이들을 두고 나가는 것도 사치고 병원에 가는 것도 사치고 하다못해 화장실에 가는 것도 사치였다. 그런 아이들이 어느새 자라고 자라서 내가 없어도 밥도 잘 먹고 잘 지내고 있다. 왠지 시원 섭섭하다. 아빠를 좋아하는 것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왜 그리 오늘은 서글퍼지는 걸까.


아무 말 대잔치는 하고 있는 지금, 글을 쓰는 이 순간이 정말 위로가 된다. 글을 쓰다 보니 내 마음을 알 것 같다. 아까 작은 아이의 말이 왜 그리 발끈했는가에 답을 찾은 느낌이다. 엄마 없이도 다 할 수 있어. 엄마 없이도 잘 다녀올 수 있어. 엄마가 없으면 더 편해. 엄마는 집에 있어. 자꾸만 생각나는 비수 같은 말들이 울컥울컥 눈물 나게 한다. 하아... 이 시간에 카페 오는 것도 두려워했으면서 울기까지 하면 진짜 이건 최고 진상이다. 참자. 릴랙스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말자. 아이들은 자랐고 점점 내 손에서 떠날 것이다. 지금보다 더 자라면 점점 더 그렇게 될 것이다. 아까 서점에서 둘러보다 우연히 읽은 책의 제목이 떠오른다. 기대, 기대를 하면 사람은 실망을 하고 실망하면 속상해진다. 기대하지 말자.

자랐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인데, 아직도 내 품 안에 자식으로 여긴 나의  '기대'가 나에게 비수를 꽂은 것이다.

내가 유치했다. 나는 지금 유아 티를 벗고 어린이로 가는 아이에게 아기 때의 마음을 기대하고 있었다. 아기 때처럼 나를 찾아주길 바라고,  엄마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아기이길 바랬었나 보다. 불쑥 늦되게 자라는 큰 아이에게 감사하다. 아직도 아침에 눈 뜨면 엄마부터 찾고 꼭 안아주고 아이처럼 안겨서는 엄마 냄새 좋다고 속삭여주는 큰 아이.

매일 다 큰 녀석이 아기처럼 왜 그래~ 하면서도 그 순간이 좋아서 매일 아침 안아준다.


점점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달려가는 아이들에게 나는 무엇을 기대한 것인가?


일을 한 것도 점점 내 삶을 찾고 싶어서였는데, 일과는 별개로 나는 마음에서 점차 성장시킬 마음의 준비가 안되어있었나 보다. 이제 지난 과거에 매달려 아기이길 기대하지 말자. 점점 성장해서 어엿한

사회인으로 자랄 아이들을 기대하자. 유럽에서 아이 양육의 목표는 자립이라고 했다.

나 또한, 늘 그렇게 말해왔다. 자립이 목표니까 대학교 가면 다 나가라고 하면서도 내 품에서 멀어지는 아이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쑥 크길 바라면서 너무 빨리 자란 것 같아 서운했다.


시간은 잡을 수 없고 나는 받아들여야 한다. 아이들 동화책 중에 <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 > 책에 보면 아기였던 아이가 자라고 자라서 성인이 된다. 점점 엄마가 이해할 수 없는 아이가 되었다가 나중에는 엄마를 보살피는 아이가 되고 집으로 돌아가서 자신의 아이에게 엄마와 같이 노래 불러주며 재우는 장면으로 마지막 장이 완성된다.

나 또한, 그렇게 아이들을 성장시키고 자립시키고 마지막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나도 엄마는 처음이니까, 이런 일 저런 일 겪어내고 난 후에야 진짜 엄마가 되어가는 걸 거야 너그럽게 생각한다. 처음 느껴 본 감정들이기에 글로 써 내려갔다. 그러다가 오늘도 글 쓰며 내 안에 답을 찾았다. 서운한 이유를 알고 나니 그럴 일도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저녁에 집에 돌아가서는 세 남자를 반갑게 맞아줘야겠다. 맛있는 빵과 간식을 사들고 가서 저녁에 영화도 재미나게 봐줘야겠다. 액션 영화 싫다며 혼자 방구석에서 드라마 보면서 스스로를 왕따라 했던 나를 반성한다. 가능한 오래 지금 이 순간 즐길 수 있는 것들을 누리고 즐겨야겠다. 같이 할 수 있는 것들을 미련 남지 않게 열심히 하고 아이들이 놀아주는 것은 내가 아니라 아이들이 나를 놀아주는 것이다. 놀아줄 때 껴서 열심히 놀고 아이들이 자라서 떠날 때는 나도 손뼉 치며 사회로 떠나보내 줄 것이다. 가족에게 왕따 안 당하게 오늘도 액션 영화 신나게 봐주고, 몇 십년 전에 영화 스타워즈도 즐겁게 봐야겠다. 오늘의 이 마음들도 잊지 않게 브런치도 자주 들여다보며, 내 마음을 잘 들여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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