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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나 Apr 02. 2022

저는 20년째 원형탈모증 여성 환자입니다.(1)

윌 스미스 덕분에 알게 된 원형탈모증의 정보들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20년 넘게 원형 탈모증에 시달렸으면서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 후에야 내가 원형탈모증이라는 사실을 새삼 다시 깨달았다. 한편으로는 놀랐다.

아, 외국에도 원형탈모증 걸린 사람이 있구나? 이런 마음이랄까?

이번 기회에 많은 기사들로 인해 원형 탈모증은 면역체계가 건강한 모낭을 공격하는 자가면역질환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고등학교 입학 직전, 무슨 스트레스가 그렇게 많았던 것인지 어느 날인가 머리카락 중에서 뒷목 쪽에 한 뭉텅이가 빠져있었다. 머리 감을 때마다 많이 빠진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보니 거의 오백 원짜리 동전만큼 빠져있었다. ( 흔히 원형탈모 환자들은 환부를 동전 크기에 비교해 말하곤 한다.) 처음 원형탈모를 발견한 엄마는 기절할 듯 놀라셨다. 바로 피부과에 달려가서 치료를 받았다. 아직도 그 경험이 생생하다. 주사로 원형탈모가 생긴 부위에 거짓말 하나도 안 하고 100번은 주사를 놓으셨다. 하나의 주사기로 나눠서 군데군데 도포해서 주사하신 것 같았다. 소리 지를뻔했지만 고등학생이니까? 잘 참았다. 치료받고 나서 의사 선생님의 말씀도 기억난다.


"원형탈모 생길 정도로 학교 생활이 힘들었어? 스트레스 없어야 낫는 거야"


아이고, 고등학교 입학한다고 걱정해서 탈모가 생긴 내가 심지어 고등학교에 입학까지 하면 스트레스가 줄진 않을 것 같은데, 스트레스가 없어야 낫는다니...... 학교 때까지는 못나을 것인가? 했다.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다르게 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을 하고 아줌마가 되어도 낫지 않았다. 어느덧 원형탈모증은 20년이 되었다. 20주년 축하 파티라도 해야 하나? 재작년쯤에 하나도 없는 것 같아서 엄청 기뻐했다. 그런데......, 내 면역이 장난질을 하는 것인지 20주년 기념을 빵! 오백 원짜리 동전보다 크게 뻥~ 뚫어놨다. 귀 옆쪽이라 티는 잘 안 나지만 미용실을 갈 때나 누군가가 우연히 보면 화들짝 놀라곤 한다. 머리에 뭐가 붙어 있는 줄 알았다고 하거나, 말을 잇지 못한다. 더듬더듬 어어엉? 하고 놀란다. 뭐 20년이니 어떤 반응이든 아주아주 익숙하다. 그냥 웃어넘길 정도다. 이번에 윌 스미스의 기사를 읽고 알게 된 점이 참 많다.  특히 이 기사에서는 재밌기도 하고 웃기기도 해서 캡처해 놓았다.


[ 뚜렷한 치료방법이 없고 개선되지 않으면 자존감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응? 자존감? 머리카락 원형으로 빠져있다고 자존감이? 내가 그랬나? 물론 자신 있게 다니지 않는다. 가끔 앞쪽에 생길 때는 가리느라 애먹는다. 하지만 자존감이랑 연관 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서 매우 의아했다. 받아들이기 마련이지만 나는 외모에 관심이 없어서인지 특별히 인지하지 않았던 것 같다. 사람마다 다르니까 단정 지어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나 또한 탈모 관련 이야기를 들을 때는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한 예로, 남편과 연애할 때 정말 진지하게 탈모 이야기를 했는데 신랑은 웃으면서 말했다.

"500원짜리 동전만 하다고?? 그럼 동전을 붙이고 다님 되겠네?


어이없고 화가 나는 말이었는데, 미쳐서 콩깍지가 씐 건지 그때 그 말이 그냥 웃겼다. 누구도 그렇게 단순하고 편하게 말한 적이 없다. 너무나 진지하고 당황스러우리만치 걱정해줬으며 심각하게 놀라곤 했다. 그런데, 저 이는 그저 웃는 것이다. 괜찮다면서 머리카락 또 나는 건데 뭐~ 이러면서 아무렇지 않게 대했다. 분명히 콩깍지 때문일 것이다. 저런 무례한 행동이 그때는 좋았다니, 어이없어서 웃음이 나왔다고 할까?


탈모 관련 농담으로 코미디언 크리스 록의 뺨을 때린 윌 스미스는 자신에 행동에 책임을 지고자 아카데미 회원도 사퇴했다. 그는 그 나름대로의 아내를 지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으리라 생각한다.

함께 운동하는 언니들에게 저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내가 원형탈모증이지만 누가 나 놀렸다고 남편이 다른 사람 때렸으면 너무 당황했을 것 같다고하자, 반응이 재밌었다.

"걱정 마세요~ 남편분 절대 누구 패실 분 아니시잖아요."


그래, 쓸데없는 걱정이다. 누구 때리고 올 위인도 못된다.마누라 지킨다고 나설 사람도 아닐 것이다. 차라리 내가 나서야지. 어이없게도 난 그런 점이 좋았다. 누군가의 말에 일일이 흥분하고 나서서 해결하는 사람이 아니다. 연애 때부터 지금까지 늘~별명이 공자님이시다. 나는 다혈질이지만 남편은 쉽게 흥분하는 편이 아니다. 그러다 진짜 나서야 할 때는 만발의 준비를 하고 법조문까지 따지면서 소름 끼치게 한마디 한마디를 따져댄다. 일전에 집주인 분과 계약 문제로 분쟁이 생기자 나서서 조목조목 따지던 사람이다.


어떤 상황이든 폭력을 행사하면 그 순간의 분이 풀릴지 몰라도 이후에는 더 큰 화가 돌아온다. 아내를 지키기 위해 폭력을 쓴 것이라고 면죄부를 주는 사람도 있는 것 같지만 같은 질병을 겪고 있는 나로서는 뒷수습을 생각하면 머리가 아플것 같아서 되도록 피하고 싶은 방법이다. 현재 윌 스미스의 행동은 일파만파 커져 더 큰 화를 불러왔다. 그가 생각하는 아내를 지키는 방법일 테니 맞다, 아니다라는 말을 하고 싶진 않다. 그저 나와는 다른 사고방식이라고 느낄 뿐이다.


물론, 탈모로 인한 놀림은 정말 정말 정말 괴롭다. 내 친정오빠는 지금도 농담 아닌 농담을 하곤 한다. "성질이 더러우니까 열 받으면 바로 빠지는 거야~"


머리 빠지는 것도 속상한데, 성질 더럽다는 소리까지 덤으로 듣게 된다. 이 말을 꽤나 오래오래 가족 모두에게 들어왔다. 원형 탈모 환자들이 하는 말이 스트레스받으면 탈모가 심해진다는데 탈모가 될까 봐 스트레스를 받는데 어쩌라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어쩌라고요~~~!!!!


스트레스 안 받고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런데, 딱 보이는 곳 하필이면 머리카락이 부분적으로 아예 없다. 치료가 돼서 자랄 때도 문제가 된다. 나는 고등학교 때는 탈모된 부분이 보일까 봐 내내 머리를 묶고 다녔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커트머리를 했다. 이유는? 머리가 듬성듬성 자라서 길이가 맞지 않았다. 예쁜 대학생이 되고 싶었는데, 머리카락이 치료를 받고 새로 자라는 부분과 예전 머리카락이 길이 맞지 않아서 파마도 생머리도 힘들었다. 길이에 맞춰서 최대한 가릴 수 있는 부분을 가려가면서 잘랐다. 혹시나 보일까 싶어서 모자를 쓰고 다니기도 했다. 글로 쓰다 보니, 이 정도면 진짜 자존감에 문제 생겼으려나? 하하하하 너무 고질적이고 만성적이라 20년 차 원형탈모증 환자는 이제 일일이 수고로움과 속상함 따위는 잊었나 보다.


글로 쓰다 보니 너무나 많은 스토리들이 떠오른다. 일단 마무리하고 다음에 다시 곱씹어봐야겠다. 늘 건강하다고 자신했던 나는 20년 차 원형탈모증 환자다.

무심하고 털털한 성격이라고 자부했던 나는 사실 극 소심하고 여리다.

성격 탓인지 스트레스 탓인지 면역 탓인지 나는 현재도 원형탈모가 진행 중이다.


완치는 없다고 알고 있었는데, 한 2년 없을 때는 정말 완치된 줄 알고 기뻤다. 그런데 조금 신경 쓰이는 일들이 생기자 어김없이 머리가 뻥 뚫렸다. 나 자신은 몰라도 몸은 먼저 느끼고 먼저 반응하고 먼저 머리를 감을 때 뭉텅이로 우수수 빠진다. 그래서 잊고 지내다가도 이제는 머리가 빠지면 '나 뭐가 많이 힘든가?' 이렇게 생각할 정도의 수준이 되었다. 머리카락 숱으로 내 마음을 알 정도가 되었다.


혹시 당신도 원형탈모증 환자이신가요?

혹시 검색해서 오신다면 함께 나눠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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