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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세윤 May 03. 2020

13. 두 얼굴의 헐크

코드2. 신화는 영웅의 자각으로부터 시작된다

2008년 아이언맨의 성공 이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두번째 영화가 개봉했다. 에드워드 노튼 주연의 ‘인크레더블 헐크’였다. 헐크라는 캐릭터와 에드워드 노튼이란 조합은 그 자체만으로 주목받을 법 했다. 헐크는 마블 캐릭터 중 가장 다면적이고 복합적인 심리를 가졌다. 핵물리학자 브루스 배너는 실험도중 감마선에 노출되고, 이에 흥분을 하면 이성을 잃고 녹색괴수 헐크로 변한다. 괴력으로 무장한 헐크는 짐승 같은 본능에 휘말려 눈에 보이는 건 닥치는 대로 부수는 통제불능의 괴물이다. 브루스는 헐크의 존재를 어렴풋이 알고 있다. 그를 경계하고 증오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모습에 무력함을 느끼며 두려움에 떨고 있다. 두려워하는 건 헐크도 마찬가지다. 어느 날 문득 이 세상에 던져졌을 뿐인데 세상은 그를 향해 돌팔매질을 해대고 심지어 자신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브루스마저 그를 없애려 한다. 헐크는 브루스의 두려움 속에 태어나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두려움이 커질수록 분노도 커지고 헐크의 폭력성도 증폭된다. 분노의 화신 헐크와 나약한 인간 브루스는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이중 인격체지만 두려움을 비틀어 만든 ‘뫼비우스의 띠’같은 모순적 존재다.


스탠리는 헐크를 만들 때 ‘프랑켄슈타인’과 ‘지킬박사와 하이드씨’를 참고했다고 한다. ‘프랑켄슈타인’은 영국의 여류작가 메리 셸리가 1818년 출판한 작품으로 현대판 프로메테우스란 부제를 달고 세상에 등장했다. 프랑켄슈타인은 일부 할리우드 영화 덕분에 얼굴에 커다란 볼트넛을 박은 괴물로 오인받곤 하지만 원작에선 괴물을 만들어낸 과학자의 이름이다.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준 프로메테우스처럼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당시 사회적 관심을 끌던 갈바니즘과 오컬트 현상에 기반해 인간을 창조하려 한다. 신의 영역에 도전한 것이다. 빅터는 시체를 이어 붙이고 전기로 생명을 넣어 8피트가 넘는 피조물을 만들어내지만 자신의 창조물을 철저히 외면한다. 

늘어지는 살 때문에 뭉그러진 얼굴, 제각기 길이가 다른 팔다리, 근육과 핏줄이 훤히 보이는 반투명한 피부로 혐오스럽기만한 괴물의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버림받은 괴물은 세상에 홀로 남겨진다. 괴물은 이름이 없다. 아는 것도 없다. 넝마를 걸친 체 허름한 헛간에 숨어 지내며 세상을 조금씩 배워가는 괴물은 점점 두려움과 분노에 휩싸인다. 흉측한 자신의 모습과 그런 모습에 경악하는 사람들의 반응이 두렵다. 그런 자신을 버리고 간 빅터에 분노한다. 신이 되려한 인간의 오만과 무책임함 때문에 태어난 괴물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방황하지만 그 방황 끝에 찾는 것은 실망과 슬픔 뿐이다. 그리고 마침내 빅터를 만난 괴물은 그에게 말한다. “난 당신의 아담이어야 하는데 현실은 타락천사에 불과하네요.” 버림받은 피조물의 슬픔과 분노가 바로 헐크의 비애다. 

비극적인 건 조물주인 브루스 배너도 마찬가지다. 브루스 배너의 심리는 로버트 스티븐슨이 쓴 소설 ‘지킬박사와 하이드씨’에 잘 나타난다. ‘지킬박사와 하이드씨’는 프로이드가 한창 히스테리와 최면연구를 하며 무의식의 세계에 빠져있던 1886년 출판됐다. 명망있는 의학 박사이자 법학자인 헨리 지킬박사는 정신분석 연구에 몰두한다. 그는 자신의 내부에 있는 선과 악을 분리해 온전한 선만 남기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이를 위해 지킬박사가 만든 약은 정반대를 결과를 초래한다. 약을 복용하면 무의식에 존재하는 악은 분리되지만 그 악이 의식을 장악해 하이드라는 또다른 자아를 만들어 버린다. 작고 빈약해보이지만 엄청난 활동력을 갖고, 소름끼치는 외모를 한 괴물로 변하는 것이다. 지킬박사는 하이드가 두렵다. 그가 하이드를 두려워 하는 건 단순히 그가 악이기 때문이 아니다. 악의 화신인 하이드가 하는 악랄한 행동에서 쾌락을 맛보고 길들여지는 자신이 두려운 것이다. 


지옥의 분노는 즉각 나를 깨웠다. 나는 더없는 쾌락에 휩싸인 채 저항하지 않는 노신사를 무차별 난타하고 한 대 한 대마다 쾌감을 맛보았다. 그리고 나자 발작적 황홀경 속에 갑자기 피로감이 이어지더니 공포의 전율이 심장을 관통했다…나는 환희와 전율에 온몸을 떨었다. 악에 대한 갈망은 충족되어 사라졌고 삶에 대한 애착도 최고조에 달했다. <지킬박사와 하이드씨>


어둠 속에서 우연히 엿보게 된 하이드의 모습은 사실 지킬박사의 내면 속에 숨겨진 자신의 욕망이자 또다른 자아였다. 

브루스 배너도 같은 딜레마를 가지고 있다. 헐크는 감마선이 만들어낸 돌연변이에 불과한 걸까, 아니면 감마선은 증폭제에 불과하고 실상은 브루스의 무의식에 잠재된 분노, 즉 자신의 일부일까? 자신의 본래 모습은 브루스일까 헐크일까? 브루스는 헐크에 장악 당하지 않으면서 공존할 수 있을 까? 게다가 배너는 헐크를 증오하고 없애려 하지만 그가 슈퍼히어로로서 정체성을 획득하는 건 괴력을 소유한 헐크일 때 뿐이다. 이 모든 질문들이 브루스가 헐크와 함께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필요한 고민이다. 

브루스와 헐크는 서로를 다른 방식으로 두려워하며 그 두려움을 원동력으로 만들어진 매력적인 이중인격의 캐릭터다. 이 흥미로운 캐릭터를 이중인격연기의 전매특허자인 에드워드 노튼이 연기한다니 관심이 갈 수 밖에 없다. 에드워드 노튼은 1996년 20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프라이멀 피어’란 작품으로 데뷔했다. 프로이멀 피어엔 말더듬이 에론과 가학적인 로이가 등장한다. 로이는 어릴때부터 자신을 학대하고 성희롱을 일삼은 러쉬만 대주교를 잔혹하게 살해한다. 살인현장에 있던 에론은 유력 용의자로 체포된다. 에론은 살인현장에 제 3의 인물 로이가 있었다며 자신의 무죄를 주장한다. 한편 대중적 관심사가 높은 케이스를 좋아하는 마틴 베일은 에런의 무료변론을 자처한다. 에런에게 살인동기가 없다는 점에 주목한 마틴은 이를 기반으로 에런을 변론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어느 날 마틴은 주교의 거실에서 주교가 에런과 그의 친구 린다 그리고 알렉스에게 성행위를 강요하는 테이프를 발견한다. 에런의 살인동기를 찾은 것이다. 에런의 무죄를 믿었던 마틴은 배신감을 느끼며 당장 에런을 찾아가 추궁한다. 순간 에런은 발작을 하며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극심한 스트레스 속에 그 안에 있는 또다른 인격, 로이가 나타난 것이다. 로이는 거들먹거리며 불쌍한 에런을 위해 자신이 주교를 죽였다고 한다. 

텍사스 시골의 순진무고한 소년 에런이 순식간에 살인마 로이로 탈바꿈하는 에드워드 노튼의 연기는 소름 끼칠 정도로 설득력 있다. 최종판결을 앞두고 마틴은 검사 자넷이 에런을 압박해 로이가 튀어 나오도록 유도한다. 재판장 한가운데서 자넷의 목을 조르는 로이의 모습을 본 판사는 그에게 정신이상으로 인한 무죄를 선고한다. 재판이 끝나고 에런이 정신병원으로 호송되기 전 마틴은 에런을 찾는다. 인사를 하고 감방문을 나서는 마틴에게 에런은 자넷의 안부를 묻는다. 에런은 해리성 인격장애로 자신이 로이였을 때 한 일에 대한 기억은 없어야 한다. 모든 건 연기였던 것이다. 마틴이 이중인격이라 믿었던 로이는 실재였고, 그가 실재라 생각했던 에런은 사실 로이가 마틴을 속이기 위해 연기한 상상의 산물에 불과했다.

에드워드 노튼은 프리이멀 피어 이후에도 ‘버드맨’에서 유명배우 마이크를 통해 현실과 스테이지를 오가며 연기가 현실이 되고 현실이 연기가 되는 과정을 기가 막히게 표현해냈다. 압권은 프리뷰 씬에서다. 평소 발기부전인 마이크는 스테이지 위에서 배드씬을 연기하며 성적으로 흥분한다. 한편으론 캐릭터에 몰입하며 성적으로 흥분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한 명의 남자가 되어 성욕에 휩싸인다. 연기가 생리학적 반응으로 이어진 순간 연기와 실제의 경계는 무너진다. 에드워드 노튼은 연기와 실제라는 몇 겹의 차원을 엮어내며 현실과 공상의 세계를 오가는 버드맨 못지 않은 존재감을 드러낸다. 관객을 앞에 두고 연극 무대 위에서 이불을 덮어쓴 체 흥분에 못 이겨 실제 성행위를 하려는 노튼의 모습은 너무도 셰익스피어적이다. 연출론의 대가 스타니스랍스키가 말한 ‘만약에’와 ‘제시된 상황’을 통해 만들어낸 ‘예술적이고 연극적인 실재’의 극치라 할 수 있다. 


그런 에드워드 노튼이 연기하는 헐크라 하니 과연 얼마나 많은 차원의 인격과 자아를 만들어 내며 인간적 고뇌를 풀어낼지 기대할 수 밖에 없었다. 슈퍼히어로 장르란 제약과 마블 스튜디오가 전체 프로덕션을 통제한다는 치명적 단점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실제 그는 단순히 두 개의 분리된 인격체가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알고,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그리고 그 두려움을 통해 드라마를 만들어 내는 과정을 그리려 고분분투 한다. 하지만 에드워드 노튼 주연의 헐크는 ‘인크레더블 헐크’ 한 작품으로 끝났고, 이후 헐크는 마크 러팔로로 교체된다. 게다가 헐크는 더 이상 단독영화로 만들어지지 않았고 어벤져스나 토르같은 다른 영화 속 캐릭터로만 등장한다. 

단독 영화는 없지만 헐크 캐릭터는 영화를 거치며 조금씩 설정이 변하고 진화한다. 에드워드 노튼의 헐크가 두 인격체 간의 갈등을 그려냈다면 마크 러팔로의 헐크는 두 인격체 간의 성장과 조화를 그려낸다. 슈퍼히어로로서 브루스 배너의 역할은 그가 헐크일 때 유의미하다. 배너는 헐크를 증오하고 회피하려하지만 그가 ‘슈퍼히어로’라는 정체성을 찾아가는 건 괴력을 소유한 헐크일 때 뿐이다. 헐크의 괴력은 브루스가 어벤져스의 일원으로 자리잡는데 필수 요소가 된다. 어찌보면 날카롭고 드라마틱한 연기를 보이는 에드워드 노튼이 시작한 헐크 캐릭터를 상대적으로 유하고 부드러운 마크 러팔로가 이어가는게 신의 한수 같아 보이기도 한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엔드게임에 가면 마크 러팔로는 배너와 헐크라는 두 인격체가 통합되어 ‘프로페서 헐크’가 된다. 헐크의 외모지만 배너의 정신을 가진 새로운 캐릭터다. 두려움에 떨며 갈등하던 두 인격체가 서로를 인정하고 조화를 찾아가며 정체성을 회복했다고 할 수 있다. 그 핵심에 있는 건 어벤져스 활동을 통해 다른 슈퍼히어로들과 함께 빌런에 대항한 그의 행동이다. 마블 유니버스란 무대 위에서 한 명의 캐릭터로 능동적으로 행동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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