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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세윤 Apr 20. 2020

12. 자비스, 튜링, 전기양 2

코드2. 신화는 영웅의 자각으로부터 시작된다

기계를 통해 자아와 정체성에 대해 심도 있게 다룬 작품이라면 단연 1968년 SF소설의 거장 필립 K. 딕이 쓴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를 꼽을 수 있다. 사이버펑크 고전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원작이기도 한 이 소설은 안드로이드 범죄자들을 추격하는 데커드라는 현금 사냥꾼의 하루를 다룬다. 

핵전쟁으로 몰락한 미래의 지구는 산성비와 낙진으로 가득하다. 상류층은 더 나은 환경을 찾아 다른 행성으로 이주하고, 지구엔 이민 갈 여력이 없는 사람들만 남아 부랑자들이 배회하는 쓸쓸한 도시를 지킨다. 사람들은 외로움을 달래려 ‘감정이입 장치’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 감정을 공유한다. 장치는 가상세계에서 고행의 길을 걷는 머서라는 종교 지도자를 보여주는 일종의 영상기에 불과하다. 애완동물을 키우는 사람도 있지만 진짜 동물은 방사능으로 사라져 안드로이드 동물에 만족하며 살아간다. 


데커드는 전기양을 키우며 값비싼 진짜 동물을 갖길 꿈꾸는 안드로이드 사냥꾼이다. 타행성으로 떠나는 이주민들은 정착을 위해 안드로이드를 고용하는데, 안드로이드는 종종 척박한 개척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식민지를 탈출해 지구로 돌아온다. 데커드 같은 현금 사냥꾼은 탈주 안드로이드를 잡아 폐기시킨다. 인공지능의 발달로 일상생활에서는 안드로이드와 인간을 구분할 수 없다. 인간과 안드로이드를 구분하기 위해선 ‘보이트 캄프’라는 감정이입 테스트를 활용한다. 보이트 캄프 테스트는 사랑이나 죽음과 같이 감정을 자극하는 질문으로 구성된 테스트인데, 안드로이드가 보이트 캄프 테스트를 받으면 심박수나 동공확장, 얼굴 붉힘 등이 인간과는 다른 속도로 반응한다. 프로그램 된 감정이기 때문이다. 현금 사냥꾼들은 ‘보이트 캄프’ 테스트 반응을 분석해 인간과 안드로이드를 구분할 수 있다. 

보이트 캄프 테스트는 여러모로 튜링 테스트를 연상시킨다. 튜링 테스트는 지성의 절대적 정의 대신 지성적 행동에 대한 관찰자의 판단을 기준으로 지적존재를 구분한다. 마찬가지로 보이트 캄프 테스트는 감성적 행동에 대한 관찰자의 판단을 기준으로 상대가 인간인지 구분한다. 튜링 테스트에 ‘불완전성’에 따른 정지문제가 있듯 보이트 캄프 테스트에도 자기 참조에 따른 ‘불완전성’이 존재한다. 만약 관찰자가 관찰대상에 감정이입을 하면 어떻게 될 까? 관찰대상이 감정을 가진 것처럼 느끼지 않을 까? 관찰자가 관찰대상이 느낀다고 생각하는 감정은 관찰자 자신의 것은 아닐까? 만약 관찰자 당사자 안드로이드라면 결과가 어떻게 될 까? 궁극적으로 인간이란 무엇일까? 필립 K. 딕은 데커드의 하루를 다루며 이 문제들에 대해 진지하게 묻는다.


하루의 시작은 데커드가 화성에서 탈출한 넥서스-6라는 신형 안드로이드를 추적해 달라는 부탁을 받으면서 부터다. 그는 우선 넥서스-6 모델에 ‘보이트 캄프’ 테스트가 에러없이 적용되는지 시험하기 위해 안드로이드를 만든 로즌 조합을 찾아간다. 조합의 수장 엘든 로즌은 자신의 조카 레이철을 소개하며 그녀를 먼저 테스트를 해보라 말한다. 테스트로 인간과 안드로이드를 구분할 수 없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다. 로즌의 예상대로 레이철은 인간임에도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다. 법적으론 데커드가 당장 레이철을 안드로이드로 간주하고 퇴역시켜도 문제될 게 없다. 당혹스러워하는 데커드에게 로젠은 레이철이 어린 시절 우주선에서 자라 감정이입 능력이 위축됐다고 설명한다. 그녀의 존재는 보이트 캄프 테스트의 신뢰성과 그 신뢰성에 기반해 행해지는 모든 안드로이드 폐기활동의 당위성을 부정한다. 감수성이 극도로 결여된 인간이라면 안드로이드로 오인받아 살해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건 보이트 캄프 테스트의 신뢰성을 의심케 하려는 엘든 로즌의 함정이었다. 레이철은 실제 안드로이드다. 최신 모델로 인간과 동일한 지성을 갖췄고, 로젠이 묘사한 대로 우주선에서 자란 기억을 이식 받았다. 그래서 자신이 안드로이드란 사실조차 모른다. 데커드는 마지막 순간 기지를 발휘해 레이철이 안드로이드란 사실을 간파해낸다. 그렇지만 레이철의 존재로 데커드는 지금까지 자신이 믿어왔던 인간의 정의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다. 안드로이드가 정말 감정이입을 할 수 없는지, ‘보이트 캄프’ 테스트가 인간과 안드로이드를 구분하는 기준이 될 수 있는지 혼란스러운 것이다. 

데커드의 혼란은 탈주한 넥서스-6 모델 중 한명인 루바 루프트를 만나며 가중된다. 루바 루프트는 오페라 가수로 레이철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인간이라 믿는다. 데커드는 그녀에게 보이트 캄프 테스트를 행하는데 루바는 데커드에게 데커드 스스로가 안드로이드인지 의심해 봤냐고 묻는다.


“당신이 저한테 하고 싶다는 검사 말이에요…당신도 받아본 적이 있나요?”
“네.” 데커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아주 오래전에요. 제가 경찰서에서 처음 일하기 시작했을 때요.”
“어쩌면 그것도 가짜 기억일 수 있어요. 가짜 기억을 갖고 돌아다니는 안드로이드도 있다고 하지 않던가요?”
“제 상관들이 그 검사에 관해 알고 있어요. 그건 의무 사항이니까요.”
“어쩌면 한때 당신처럼 생긴 사람이 실제로 있었는지도 몰라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당신이 그 사람을 죽이고, 그 자리를 차지한 거죠. 당신의 상관들도 그 사실까지는 모르고 있는 거에요.”


데커드는 보이트 캄프 테스트 결과만을 기준으로 인간과 똑같이 행동하는 안드로이드를 아무런 죄책감 없이 죽여왔다. 그만큼 감정이 결여됐단 증거다. 그야 말로 안드로이드에 가까운 것이다. 게다가 그에게 가짜 기억까지 이식됐다면 데커드는 자신이 안드로이드란 걸 알 방법이 없다. 데커드는 루바의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 

루바는 자신이 인간이라 확신하며 진한 감성으로 ‘마술피리’의 아리아를 부르고 관객들의 심금을 울린다. 데커드는 자신이 인간인지 의심하며 무심히 안드로이드를 폐기시키던 자신의 행동을 떠올린다. 데커드의 의심이 깊어갈 때쯤 루바는 갑작스레 데커드의 동료에게 폐기당한다. 아이러닉하게도 데커드는 루바의 죽음을 목격하며 자신이 그녀에게 감정이입을 하고 있고, 그래서 자신이 인간이란 사실을 확신하게 된다. 하지만 이것 또한 보이트 캄프 테스트 결과에 근거한 확신일 뿐이다. 데커드는 현금사냥꾼인 자신보다 루바가 더 인간다웠다는 걸 알고, 그녀 덕분에 자신이 살아있는 감정을 느꼈다는 걸 안다. 자신이 생리학적으로 인간임은 확신하게 됐지만 인간이란 존재와 정체성에 대한 의문은 오히려 커진 것이다.  

(원작 소설에선 데커드가 인간이란 점이 명확하지만 ‘블레이드 러너’ 영화에서는 설정이 모호하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데커드가 안드로이드라 주장하고, 데커드를 연기한 해리슨 포드는 데커드가 인간이라 주장한다. 리들리 스콧 감독이 설정한 스토리 상 데커드는 안드로이드지만 해리슨 포드는 그 안드로이드를 인간이라 해석하고 연기했단 얘기다. 결과적으로 해리슨 포드는 자신이 인간이라 믿는 안드로이드를 연기한 셈이다.)


데커드는 그 누구보다 자신이 인간임을 느끼고 싶다. 그래서 수시로 ‘감정이입 장치’를 사용하고, 대출을 해서라도 전기양을 대체할 진짜 동물을 사려 한다. 반면 루바는 그 어떤 의심없이 자신이 인간이라 믿는 안드로이드다. 인간으로서 오페라 가수의 꿈을 실현해 가며 살고 있다. 데커드가 진짜 동물을 사기 위해선 루바를 퇴역시켜야 한다. 하지만 우연히 루바의 오페라 아리아를 듣게 된 데커드는 영혼의 깊은 울림을 느끼고 루바에게 빠져든다. 그녀에게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혼란스러운 데커드는 ‘인간다움’이 꼭 ‘감정이입 장치’나 ‘진짜 동물’의 소유를 통해서만 이룰 수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하지만 그의 의심이 확신이 되기 전 루바는 죽게 된다. 데커드가 우여곡절 끝에 산 진짜 염소마저 허무하게 죽어 버린다. 루바가 죽고, 염소도 죽어 버린 후 데커드는 실의에 빠져 자살을 결심한다. 자신의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으리라 믿었던 희망의 실마리가 모두 허무히 사라졌기 때문이다. 

외진 황무지를 찾은 데커드는 신비로운 경험을 한다. 황무지를 홀로 방황하는 데커드 앞에 홀연히 ‘감정이입 장치’에서 보던 머서가 나타난 것이다. 그는 데커드 앞에서 끝없는 오르막 길을 걷고 있다. 헌데 걸음을 멈추고 보니 그는 머서가 아닌 자기 자신의 그림자다. 데커드는 머서를 본 게 아니라 스스로 머서가 되어 그의 고행을 직접 체험하고 있었다. 고행을 하며 머서가 느꼈을 ‘그 고통, 그 꾸밈없고 실제적인 형태로부터 절대적인 고립과 고통에 관한 최초의 인식’을 데커드 또한 온 몸으로 느낀다. 끝없는 오르막 길을 걷고 돌팔매를 맞으며 머서의 환영을 쫓던 데커드는 난생처음 ‘감정이입 장치’ 없이 홀로 살아있는 감정을 느낀다. 감정은 한 올 한 올 되살아나고 애정과 연민도 생겨난다. 인간과 안드로이드, 실제와 허상 사이의 경계는 상관없다. 중요한 건 스스로 느끼는 감정이다. 루바와 염소의 죽음으로 인한 허무함과 인간성에 대한 의구심에서 시작된 여정에서 데커드는 이제 첫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데커드의 경험은 영웅의 여정과 흡사하다. 여정의 출발점은 불완전성에 대한 자각과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다. 자신의 외면에 있는 안드로이드만 관찰하던 그가 자신이 안드로이드인지, 안드로이드와 인간의 경계는 무엇인지 의심하며 각성이 시작된다. 하지만 그 여정이 내면에만 머물진 않는다. 내면 세계라는 닫힌 체계 안에선 불완전성이 존재할 수 밖에 없다. 불완전성을 극복하기 위해선 내면과 경계한 외부세계를 함께 봐야 한다. 그건 끝없이 외부세계로 나아가며 경계를 확장해야 한다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루바는 데커드가 ‘퇴역’시킬 외부의 존재가 아니다. 그녀는 데커드가 공감하고 안고 가야할 융합의 대상이다. 머서도 마찬가지다. 머서는 가상세계에 존재하는 환영이 아니라 그가 융합해야 할 그의 일부다. 데커드는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불완전성을 극복하며 한층 성장한다. 성장이란 결국 외부세계와 내면세계의 간극을 인식하고 극복하려는 노력이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자신이 누구이고,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자기반성을 통해 현재의 자신과 미래의 자신 간의 간극, 내부세계와 외부세계 간의 간극을 인식하는 그 모순적인 지점이 바로 영웅의 여정이 시작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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