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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세윤 Apr 13. 2020

11. 자비스, 튜링, 전기양 1

코드2. 신화는 영웅의 자각으로부터 시작된다

1950년 영국의 수학자이자 암호해독가인 앨런 튜링은 ‘계산기계와 지성’이란 논문을 발표했다. 논문에서 튜링은 기계가 지성을 가진 인간처럼 사고하는지 판단할 수 있는 ‘튜링 테스트’를 제안했다. 튜링 테스트는 인간이 기계와 5분이상 대화한 후 상대가 기계인지 사람인지 구분할 수 없다면 상대를 사람으로 간주한다. 지성의 조건을 절대적으로 정의하지 않고 지적존재인 사람과 구분할 수 있느냐에 따라 상대적으로 정의한 것이다. 


일부는 튜링 테스트가 지성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회피한다 비판하지만, 관념론적 세계관에선 오히려 실용적인 접근방법이다. 우리가 인식하는 사물은 신체의 감각기관을 통해 전달된 전기신호를 해석한 결과물이다. ‘사물 그 자체’가 아니라 내 감각기관의 특성이나 인지 작용의 특성이 반영된 ‘관념’인 것이다. 따라서 대화상대에게 사고력이 있는지 절대적으로 판단할 방법은 없다. 상대가 기계건 사람이건 마찬가지다. 그게 우리 인지작용의 한계이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대화 상대가 기계냐 사람이냐는 유의미한 질문이 아니다. 우리가 답할 수 있는 질문은 우리 자신이 대화상대를 지적존재라 판단하느냐 뿐이다. 따라서 대다수의 사람이 대화 상대가 기계인지 사람인지 구분할 수 없다면 대화상대를 지적존재로 간주할 수 있는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근거가 된다. 

튜링은 논문을 발표하며 50년 뒤에는 기계가 30%의 확률로 튜링 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을거라 예측했다. 실제 2014년엔 영국 레딩대학에서 개발한 ‘유진 구스만’이란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33%의 확률로 튜링 테스트를 통과하기도 했다. 하지만 유진 구스만은 인공지능이라기 보단 제한적 대화만 가능한 챗봇에 가까운 프로그램이었다. 아직까지 완벽히 튜링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는 인공지능은 개발되지 않았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2016년엔 구글 딥마인드에서 개발한 알파고가 바둑으로 이세돌 9단을 꺽었고, 챗봇 프로그램은 나날이 발전해 콜센터 직원을 대신하고 있다. 이대로 라면 비대면 대화에서 만큼은 근시일 내에 인간과 로봇을 구분하기 힘들어 질 것이다. 저명한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2029년 튜링 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는 컴퓨터가 등장할 거라 예측하기도 했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튜링 테스트를 통과하더라도 문제가 완전히 풀리는 건 아니다. 여전히 기계에 지성이 있느냐는 본질적인 문제는 남아있다. 대화상대가 지적존재라는 우리 판단이 대화상대가 실제 지적존재냐는 질문에 대한 직접적인 답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관념론은 그 질문을 답할 수 없는 문제로 치부하며 회피하지만 유물론적 세계관에선 여전히 유효한 질문이다. 게다가 질문이 지성 뿐만 아니라 자의식과 생명까지 포함한다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예를 들어 토니 스타크가 만든 자비스라면 어렵지 않게 튜링 테스트를 통과할 것이다. 자비스는 토니의 집사이자 비서 역할을 하는 인공지능으로 인간과 구분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는 토니 뿐만 아니라 다른 어벤져스 멤버들과도 스스럼 없이 대화하고 자신을 개발한 토니 스타크 식의 냉소적 유머도 수준급으로 구사한다. 물리적 신체는 없지만 로봇암과 같은 각종 도구를 조정해 토니의 아머를 만들 수 있고, 아이언리젼을 조정하기도 한다. 울트론과 대적할 때는 이제 갓 태어난 울트론이 낯선 세상에 가지는 당혹감에 공감하는 한편 두려움을 느끼며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려는 본능을 드러내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자비스에게 자의식이 있느냐와 자비스가 생명체냐는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다.


그렇다면 자비스 스스로는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자비스는 스스로를 지적 생명체로 인식할까? 답에 대한 힌트는 튜링의 논문에 등장하는 또 다른 개념에서 찾을 수 있다. 바로 ‘튜링머신’이다. 

튜링머신은 일종의 계산기계로 무한히 늘어선 종이 칸 위에 특정 값을 입력, 출력, 삭제하면서 이동할 수 있는 입출력 제어장치와 현상태를 저장할 수 있는 저장장치로 이뤄져 있다. 아주 단순한 기계다. 하지만 아무리 복잡한 연산이라도 단위별로 세세히 쪼개 세분화하면 튜링기계만으로 계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123 X 99 라면, 입출력 종이 123칸에 마킹을 하고 이를 99회 반복 한 후 전체 마킹 된 칸을 세면 연산이 된다. 실제 기계가 수행한 작업은 종이에 마킹을 하고 한쪽으로 움직인 게 전부다. 

튜링은 이 단순한 기계로 어떤 복잡하고 어려운 작업이라도 수행할 수 있다는 가설을 세웠다. 요즘이야 컴퓨터로 스프레드시트 작업과 워드프로세서 작업을 동시에 하는 게 전혀 새로울 게 없지만 1950년대엔 특정 작업을 위해선 작업에 특화된 기계가 필요하다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었다. 튜링의 가설은 아무리 복잡한 연산이라도 아주 단순한 논리적 단위로 쪼갤 수 있고, 이를 기계화하여 ‘만능 논리 계신 기계’ (Universal Logical Computing Machine)를 설계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게 바로 오늘날 컴퓨터의 기본개념이자 인공지능 자비스의 시초인 셈이다.

튜링이 튜링머신에 대해 처음 생각하게 된 건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 때문이었다. 괴델은 아인슈타인과 같은 시기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한 오스트리아 출신의 수학자다. 괴델은 20세기 초 러셀, 힐베르트 등 당대의 수학자들이 공리에 기반한 수학의 무모순성과 완결성을 증명하려던 시점에 특정 체계안에선 ‘증명 불가능한 수학적 명제가 반드시 존재한다’라는 불완전성 정리를 발표했다. 절대적 진리를 찾으려 수십년간 이어진 수학자들의 노력을 단숨에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리는 충격적 결론이었다. 

튜링머신에도 괴델의 불완정성 정리와 같은 개념이 있는데 바로 ‘정지문제’다. 정지문제는 튜링머신이 계산할 때 계산이 완료되어 튜링머신이 멈출지 결정할 수 없는 문제가 존재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와 튜링의 정지문제는 모두 완벽한 논리적 체계라면 그 체계 안에서 체계의 완결성을 증명할 수 없다는 모순적 결론에 도달한다. 이는 자기참조에 따른 모순으로 이를테면 스스로 면도를 하지 않는 모든 사람을 면도해주는 이발사의 면도를 누가 할지와 비슷한 문제다. 이발사가 스스로 면도를 하지 않는 한 그는 스스로를 면도해야 하지만, 그가 면도를 하려는 순간 그는 스스로 면도하는 사람이 되어 면도할 필요가 없게 된다. 같은 논리로 생각해보면 모든 것을 알고 복잡한 문제도 잘게 쪼개 연산 할 수 있는 자비스라도 자기 자신에 대한 질문에 답하긴 어려울 수 있다. 정체성이나 자아와 같이 자기참조가 필요한 질문을 던지는 순간 존재의 ‘불완전성’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 어떤 존재라도 존재가 수반하는 ‘불완전성’이 있다는 건 허무한 결론일 수 있다.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결코 완벽에 이를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완전성은 영웅의 탄생을 위한 필수조건이기도 하다. 세상에 완벽한 영웅은 없다. 완벽하다면 그는 ‘신’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영웅이 될 순 없다. 영웅에게는 항상 불완전성에 따른 시련이 따르기 마련이고, 영웅은 그 시련을 극복하며 성장하고 결국 ‘영웅’이란 호칭을 얻게 된다. 영웅의 여정은 자신의 불완전성에 대한 자각과 정체성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아무런 반성없이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왔던 관념들이 무너지고, 이 허망한 세상에 뼈속까지 시린 고독함을 느끼며 홀로 남겨졌단 사실을 인식할 때, 그리고 그 속에서 눈을 뜨고 자기 자신을 직시하려 때 영웅의 여정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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