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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세윤 Apr 06. 2020

10. 슈퍼히어로와 마스크

코드2. 신화는 영웅의 자각으로부터 시작된다

마스크는 기원전 30,000에서 40,000전쯤 등장해 세계각지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사용됐다. 얼굴형상을 그대로 본뜬 가면부터 동물이나 자연현상을 의인화해 만든 가면과 신, 괴물, 요괴같은 상상 속 존재를 표현한 가면까지 다양한 종류가 있다. 최초의 마스크는 수렵생활을 하던 원시시대 때부터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냥꾼은 동물 마스크를 씀으로써 사냥감을 놀래키지 않고 쉽게 다가갈 수 있었고, 한편으론 사자나 곰 같은 맹수의 마스크를 쓰며 용기를 북돋기도 했다. 마스크는 실용적인 것보다 주술적이고 종교적인 의식을 위한 용도로 점차 발전했다. 단순하게는 살생한 동물의 영혼을 달래는 의식에 쓰였지만, 토속신앙과 맞물려 민족문화적 전통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서아프리카 말리에 있는 도곤족은 원죄와 선악의 대립을 중심으로 한 높은 의식수준의 창세신화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신화속 신들을 기리기 위해 60년을 주기로 제례를 여는데, 제례가 절정에 이르면 가면행렬이 시작된다. 가면은 도곤족 비밀결사집단에 속한 장인이 만든 것으로 목재와 금속을 사용한 다양한 기하학적 모형으로 신화속 상징을 표현한다. 행렬에 참여하는 이들은 춤을 추며 천지창조와 원죄 그리고 구원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가면을 쓰고 탈혼의 춤을 추며 현실을 초월한 신화속 존재와 교감하고 그들의 정기를 받아 우주적 존재로 새롭게 태어나는 의식을 펼치는 것이다. 

그리스, 로마시대에 이르면 마스크는 새로운 인격체를 빙의하는 도구로 자리잡는다. 바쿠스나 디오니소스 축제가 되면 사람들은 마스크를 쓰고 본인의 신분과 직책을 벗어나 광란의 축제를 펼쳤다. 극장에서는 극 상황에 맞는 가면을 쓴 배우가 등장하는가 하면, 로마 시민이라는 정통성을 증명하기 위해 투탕카멘의 황금 마스크처럼 죽은 선조의 얼굴을 본뜬 마스크를 만들기도 했다. 이탈리아 중부 에트루리아 지방에서는 배우가 쓰는 마스크와 선조의 얼굴을 본뜬 마스크 모두 또다른 인격체를 뜻하는 ‘페르소나’라는 단어로 불렸다. 현대심리학에서 ‘페르소나’는 집단 사회 안에서 본인의 의무와 권리에 따라 정의되는 역할로, 내면세계와 소통하는 주체로서의 ‘자아’와 구분해 사용된다. 한 집안의 ‘아버지’, 회사 내에서의 ‘영업부장’, 모임 안에서의 ‘총무’ 같은 역할이 일종의 마스크가 되어 ‘자아’의 페르소나로 드러나는 것이다. 

마스크의 상징성이나 함축적 의미 그리고 우리에게 미치는 심리적 영향은 결국 정체성의 문제로 귀결된다. 자신의 정체성을 감추기 위해서 마스크를 쓰고, 억압된 정체성을 표출하기위해 마스크를 쓰기도 하며, 마스크를 씀으로서 새로운 정체성을 얻기도 한다. 슈퍼히어로 스토리 중 유독 마스크가 많이 등장하는 건 배트맨이다. 배트맨의 마스크는 배트맨의 정체성과 직결된다. 배트맨은 하나의 심볼이 되고 싶어 한다. 단순히 악을 처단하는 것이 아니라, 악에 대항하는 하나의 상징이자 희망이 되고 싶어 한다. 고담시를 되살리기 위해선 고담시민 개개인이 악을 몰아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고담시가 자체적으로 안정적이고 질서를 갖춘 도시로 재생될 수 있다. 악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두려움이 되야 하지만 고담시민에게 영감을 주기 위해선 희망이 되야 한다. 어떻게 하면 두려움이면서 동시에 희망이 될 수 있을 까? 그는 이 딜레마를 ‘불살’이라는 행동으로 풀어낸다. 검은박쥐의 모습으로 범죄자 위로 군림하지만 ‘불살’의 원칙을 지키며 다크나이트로서의 상징성을 획득한다. 두려움이지만 희망이고, 선이지만 다크하고, 정의지만 절대적이진 않은 상징을 완성한 것이다.

배트맨의 상징은 빌런과의 대비로 더욱 두드러진다. 특히 조커와의 대비가 그렇다. 조커는 얼굴 자체가 마스크다. 찢어진 입 때문에 항상 웃을 수밖에 없는 광대 같은 얼굴이 마스크다. 조커 캐릭터의 원형은 빅토르 위고가 쓴 ‘웃는 남자’란 소설에 등장한다. 18세기 경 영국에 콤프라치코스라는 인신매매단이 있었다. 콤프라치코스는 어린아이들을 납치해 일종의 전신성형을 시술한 후 인간광대를 만들어 팔았다. 그들이 행한 성형이란 헝겊으로 발을 묶어 작은 발을 만들던 중국의 전족이나 황동고리를 차고 목을 늘리는 미얀마의 카얀족 전통처럼 신체를 개조하는 수준의 외과수술이었다. 그윈플레인은 어린시절 콤프라치코스에게 납치되 마스카 리덴스 (maska ridens) 즉 ‘웃는 가면’이란 수술을 받았다. 마스카 리덴스는 입을 귀밑까지 찢어 잇몸을 드러내고, 코를 으깨 얼굴에 영원한 웃음을 남기는 수술이었다. 그 후 그윈플레인은 곡예사가 되어 사람들을 웃기며 생계를 꾸려갔다. 전염성 높은 그의 웃음은 보는 사람을 모두 박장대소하게 만들었고, 그는 어렵지 않게 곡예사로서 명성을 이어갔다. 태생도 모른체 어린시절 납치되어 끔찍한 수술을 받아 흉악한 몰골이 됐지만 그 몰골 때문에 삶을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웃음은 그에게 어떤 의미일까?


그윈플레인은 웃으며 사람들을 웃겼다. 하지만 그는 웃지 않았다. 그의 얼굴이 웃었지, 그의 생각은 웃지 않았다. 우연, 혹은 기이하고 특별한 기술이, 그에게 만들어 준, 전대미문의 얼굴이 홀로 웃었다. 그윈플레인은 그 웃음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외양이 내면에 종속되어 있지 않았다. 그의 이마, 볼, 눈썹, 입 등에다 자신이 그러한 웃음을 새겨 넣지 않았으니, 그것들에게서 그가 웃음을 제거하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른 사람이 그의 얼굴에 웃음을 영원히 고착시켜 놓은 것이다. 그것은 자동적인 웃음이었다. 또한 고착된 것이니, 불가피한 웃음이었다.   <웃는 남자>


그윈플레인은 사실 막대한 재산과 작위를 물려받을 클랜찰리 경의 아들이었다. 클랜찰리가 사망하자 그의 부를 가로채려는 국왕이 콤프라치코스에게 그윈플레인의 납치를 명했고 그의 운명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하루 아침에 신분이 바뀌고, 얼굴에는 지울 수 없는 웃음이 새겨졌다. 신분의 뒤섞임과 표현의 뒤섞임. 그것은 왕조가 무너지고 시민혁명이 일어나며 혼돈으로 뒤덮힌 18세기 유럽사회 그 자체다. 

웃음이 얼굴에 각인됐다는 설정은 최근 개봉한 ‘조커’에서도 마찬가지다. 광대 아서 플랙은 병리적 웃음이란 희귀병을 앓고 있다. 어린 시절 뇌에 손상을 입은 아서는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웃음이 나온다. 그윈플레인의 웃음이 얼굴에 물리적으로 각인되어 있다면 아서의 웃음은 뇌에 심리적으로 각인된 셈이다. 병리적 웃음은 실제 존재하는 병이다. 명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환자들은 공통적으로 변연계에 있는 시상하부와 유두체 같은 조직에 손상이 있다. 변연계는 기억과 감정을 담당하는 기관으로 시상하부와 유두체는 호르몬 분비와 자율신경계를 조절한다. 인간이 긴장할 때 손에 땀이 나거나, 개가 반가울 때 꼬리를 흔들고 맹수가 위협을 느꼈을 때 으르렁거리는 것 모두 변연계를 통해 나타나는 반응이다. 변연계는 포유류의 대표적 기관이지만 포유류 중 웃을 수 있는 건 인간 뿐이다. 인간을 제외한 많은 동물이 슬픔이나 기쁨같은 감정표현은 할 수 있지만 웃을 순 없다. 그건 웃음이 변연계 뿐만 아니라 인간 고유의 특성인 이성을 담당하는 전두엽과도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웃음은 어떤 결과를 기대하고 있는 긴장된 상태에서 예상밖의 결과가 나와 긴장이 풀리면서 나타나는 감정의 표현이다. 예를 들어 한 밤중 깊은 숲속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손에 땀을 쥐며 잔뜩 긴장하고 있는데 다람쥐 한마리가 지나간다면 헛웃음이 나올 것이다.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리면 전두엽에서 이성적으로 상황판단을 하기 시작한다. 그 소리가 맹수일 수 있다는 잠재적 위협이 감지되면 변연계는 호르몬 분비를 통해 손에 땀을 나게 한다. 당장이라도 나무를 잡고 쉽게 도망가기 위해서다. 다람쥐가 보이면 전두엽은 위협이 허위 신호였다는 걸 인지한다. 그러면 변연계는 위협에 대응하는 호르몬 분비를 멈추고 동시에 웃음이 나오게 된다. 위협과 허위라는 두 모순적 반응이 신경계를 자극하며 웃음이라는 표현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병리적 웃음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제대로 판단할 수 없을 때 생긴다. 원인은 감정의 고장이다. 이성은 위협적이거나 슬픈 상황이라 판단하지만 변연계의 고장으로 이를 허위 신호로 인지하는 호르몬이 분비된다. 신체가 지속적으로 이성적 판단을 부정하는 신호를 보내면 자신의 이성적 판단이 맞는 건지 의심할 수 밖에 없다. 머릿속에서 판단하고 있는 이성이 잘못된건지 웃고있는 신체가 잘못된건지 판단할 수가 없다. 세상을 구성하는 기본적 인과관계가 무너지고 ‘작은 혼돈’이 시작된다. 


그윈플레인과 아서플렉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키워드는 ‘혼돈’이다. 이는 조커가 쓰고있는 ‘웃음’이란 마스크로 표현된다. 맞아도 웃음이 나오고 때려도 웃음이 나온다. 세상은 허위 신호로 가득한 모순이 된다. 폭력과 살인같은 모든 해악이 판도라의 상자에서 해방된 혼돈의 세상이다. 조커의 마스크는 이성과 정체성을 무너뜨리는 혼돈 그 자체다. 두려움을 통해 안정과 질서를 안착시키고자 하는 배트맨의 마스크와 모든 두려움을 거짓신호로 만들어 혼돈의 소용돌이를 일으키고자 하는 조커의 마스크. 조커의 말대로 이 두 마스크는 서로를 완성시키는 야누스의 얼굴이다. 

이 두 마스크는 배트맨과 조커의 정체성을 표현할 뿐만 아니라 이를 빚어내는 힘이기도 하다.우리도 삶을 살아가며 수많은 마스크를 쓴다. 어떤 마스크는 사회가 우리 얼굴에 각인해논 마스크고 어떤 마스크는 우리 스스로 만들어낸 마스크다. 마스크를 계속 바꿔 쓰다보면 어느덧 어느 마스크가 나의 진짜 마스크인지 혼란스럽게 된다.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진짜’ 마스크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가 바꿔 쓰는 마스크 하나하나가 내 정체성의 단면이고 일부다. 중요한 건 마스크의 상징을 이해하고, 그 상징 안에 내재된 본질을 파악하는 것이다. 그런 노력을 통해 자신을 이해하고 자신의 정체성에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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