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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세윤 May 11. 2020

14.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MCU)

코드2. 신화는 영웅의 자각으로부터 시작된다

마블에는 여러 개의 유니버스가 있다. 통상 코믹스에서 유니버스라고 하면 하나의 일관된 연대기를 따라가는 시공간을 뜻한다. 하지만 유일한 시공간은 아니다. 여러 개의 독립된 시공간이 있을 수 있고, 동일한 시공간 내에서도 전혀 다른 스토리가 펼쳐지는 평행우주가 존재할 수 있다. 개별 시공간이나 평행우주를 유니버스라 하고, 유니버스의 집합을 멀티버스라 부른다. 이때 유니버스란 좁게 보면 스토리나 설정상의 시공간이고, 넓게 보면 스토리텔링 기법, 촬영기법이나 특수효과, 연기자가 표현하는 정서적 느낌 같은 것도 포함된다. 이런 요소들이 다이내믹하게 어울리며 구성되는 다양한 유니버스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가 다른 영화 프랜차이즈와 차별화되는 진정한 힘이 된다. 

MCU의 시작은 아이언맨이다. 아이언맨은 전형적인 영화적 유니버스에서 시작한다. 실제 인물인 하워드 휴즈에 뿌리를 두고 있는 만큼 현실성이 있긴 하지만 백만장자에 천재고 외모까지 갖춘 허구의 인물이다. 다국적 군수기업의 CEO와 아프가니스탄 테러라는 설정이나 뉴욕처럼 보이는 도시에 위치한 스타크 인터스트리 헤드쿼터까지 핍진성은 짙지만 여전히 영화적 공간이다. 여기에 아이언맨 아머를 비롯한 최첨단 기술이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을 통해 영상으로 재현되며 전형적인 사이언스 픽션형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탄생한다. 

토르에 가면 MCU는 공간적으로 확장된다. 토르의 고향 아스가르드는 우주적 공간이자 신화적 공간이다. 영화 초반부에 등장하는 아스가르드의 모습은 고대신화와 사이언스 픽션을 접목시킨 새로운 유니버스를 보여준다. 특히 이 장면을 3D로 보면 웅장한 스케일의 고대 건축물을 다양한 앵글에서 입체적으로 볼 수 있는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제공한다. 토르가 요튠하임에서 라우페이와 대적하는 전투씬도 전형적인 군중 전투씬에 신화속 무기 묠니르와 서리거인족 괴수들이 등장하며 신선함을 더한다. 아이언맨에서 보여준 지구와는 전혀 다른 공간이 등장하는 것이다. 아스가르드와 지구는 차원이동 장치인 비프로스트로 연결된다. 이 연결로 마블 유니버스는 지구를 벗어나 우주의 영역으로 확장된다. 

이런 전개는 MCU 영화가 늘어날 수록 더 과감하고 화려해 진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선 한층 다양한 외계 생명체들이 등장하며 넓은 확장성을 가진 우주 공간을 그려낸다. 닥터 스트레인지는 마블 유니버스에 영적 공간을 더하며 시공을 초월한 새로운 스토리텔링을 가능케 한다. 영화적으로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셉션을 연상케 하는 다차원적 영상언어를 구현한다. 시각적, 공간적 장치를 통해 영적 공간을 세련되게 표현해낸다. 스파이더맨은 정반대 방향으로 MCU 공간을 확장한다. 환상적이고 비현실적인 공간이 아니라 현실감 있는 공간으로 말이다. MCU 시리즈로 리부트된 톰 홀랜드의 스파이더맨은 스탠리의 의도를 그대로 반영해 청소년들이 공감할 수 있는 현실적 캐릭터다. 수줍은 짝사랑을 하고 토니 스타크를 멘토로 의지하며 따르는 모습은 청소년기에 누구라도 한번쯤 겪어 봤을 경험이다. 그가 거미줄을 뿌리며 날아 다니는 공간도 너무도 익숙한 뉴욕시다. 토니 스타크가 하워드 휴즈라는 입지전적 인물에 뿌리를 뒀다면 피터 파커는 슈퍼히어로면서도 지극히 평범한 청소년 캐릭터에 뿌리를 둔다. 그만큼 MCU를 현실 공간에 더 가깝게 확장할 수 있는 캐릭터인 것이다.

통상 시리즈물 영화라 하면 같은 설정을 이용한 새로운 플롯을 전개하거나, 새로운 캐릭터나 설정을 통해 기존 플롯을 연장하는 방식이 대부분인데, MCU는 한층 더 고차원적인 지점에서 시리즈가 전개된다. 기본적으론 한 명의 슈퍼히어로가 등장하는 개별 시리즈가 있다. 각 시리즈는 독자적인 주제, 플롯 전개방식, 영상미나 사운드 등을 가지며 고유의 영화 언어로 표현된다. 하나의 시리즈가 하나의 유니버스고, 새로운 히어로가 등장할 때마다 새로운 유니버스가 탄생하는 셈이다. 다소 이질감이 느껴질 수 있는 개별 유니버스는 영화 끝에 삽입되는 티저 영상이나 중간에 등장하는 작은 에피소드의 형태로 의외의 지점에서 중첩점을 갖는다. 아이언맨의 티저 영상에 쉴드의 국장 닉퓨리가 등장해 어벤져스 프로그램을 소개하거나 아버지를 찾는 토르 앞에 닥터 스트레인지가 나타나 차원의 문을 열어 안내해주는 식이다. 이 중첩점들은 ‘인피니티 워’라는 슈퍼 플롯이 등장할 때 개별 유니버스의 붕괴를 초래하고 궁극적으로 하나의 멀티버스로 통합된다. 

여기서 통합은 단순히 여러 슈퍼히어로들이 하나의 영화에 등장하는 백과사전식 통합은 아니다. 슈퍼히어로들은 개별 유니버스에서 보여줬던 자신만의 색깔을 유지하면서도 ‘인피니티 워’라는 플롯 아래 유기적으로 조합된다. 그 중심에는 타노스라는 슈퍼빌런에 대항하며 각각의 히어로가 자신만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 있다. 토니는 나약한 인간의 몸이지만 타노스에 대항하며 어벤져스 리더로서의 위치를 찾아간다. 특히 엔드 게임에선 페퍼와 가정을 이룬 후 가장으로서의 책무와 어벤져스 리더로서의 책무 사이에서 고민하며 독단적이던 과거와 달리 한층 성숙한 모습을 보여준다. 토르는 동생 로키와 충신 헤임달의 희생을 딛고 아스가르드의 진정한 왕으로 거듭나며 백성을 지키기 위해 타노스에 대항한다. 헐크는 브루스 배너와 헐크라는 이중인격에서 프로페서 헐크로 진화하며 정체성을 찾아가고, 세상사에 관여하기보단 위장막 아래 숨어 지내던 와칸다는 본래 모습을 세상에 드러내며 지구를 지키기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 이 다양한 스토리라인이 엮이며 전개되는 ‘인피니티워’는 그야말로 방대한 우주의 탄생이다. 색도 다르고 재질도 다른 수많은 가닥의 실을 엮어 그려낸 멀티버스의 태피스트리다. 

사방팔방으로 펼쳐지는 스토리라인을 따라가다 보면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스토리텔링을 경험하게 된다. 스토리를 뛰어넘어 하나의 문화라고 할 만한 정체성의 탄생이다. 그 정체성은 스탠리를 시작으로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참여해 창조해낸 인간 고유의 집단 정신이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공통신화에 뿌리를 둔 집단적 상상이야 말로 ‘문화’라 부르는 행동 패턴을 유발하는 인간만의 독특한 능력이라 말한 바 있다. MCU야 말로 이런 집단 상상력의 현대적 예시라 할 수 있다. 영화란 본질적으로 복합매체고 다양한 예술인들의 협력이 필수다. 그런 영화 수십편을 엮어 수많은 캐릭터와 플롯이 유기적으로 중첩될 때 MCU라는 거대 우주가 탄생하는 것이다. 토니 스타크가 살고 있는 평범한 지구를 생각했는데 토르란 신적 존재가 묠니르로 지구의 하늘을 부수며 내려오고, 가디언즈는 부서진 하늘을 통해 무수히 많은 우주의 생명체를 데리고 나타난다. 심지어 닥터 스트레인지란 마법사는 차원의 벽을 허물며 시공간을 넘나들기까지 한다. 그런 와중에 슈퍼빌런 타노스가 나타나면 전 우주의 히어로들이 모여 그에 대항한다. 이런 복잡성과 다양성, 그리고 이를 꿰뚫고 현현하는 ‘인피니티 워’라는 슈퍼 플롯은 포스트 모던 시대의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하나의 거대한 문화적 경험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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