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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세윤 May 18. 2020

15. 아이언맨과 아머

코드3. 영웅의 여정은 끝없는 정진이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시작을 알린 건 2008년 개봉한 아이언맨이었다. 사명을 마블스튜디오로 바꾸고 본격적으로 자체 영화를 제작하겠다고 나선 후 첫 작품이었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구상하고 진두지휘한 케빈 파이기가 첫 영화를 아이언맨으로 선택한데는 몇 가지 배경이 있었다. 가장 컸던 건 현실적인 이유였다. 마블 코믹스에서 아이언맨보다 높은 인지도와 인기를 지닌 스파이더맨이나 판타스틱포 같은 캐릭터는 이미 다른 스튜디오에 판권이 대여되어 영화를 제작할 수 없었다. 다행히 어벤져스를 구성하는 주요 캐릭터 판권은 마블에 회수된 상황이라 평소 어벤져스 팬이던 케빈 파이기는 어벤져스를 중심으로 시리즈를 구상할 수 있었다. 당시 인지도가 높았던 헐크 판권도 마블 소유긴 했지만 헐크는 2003년 앙리가 영화로 만들어 실패했기 때문에 첫 영화로 제작하기엔 신선도가 떨어졌다. 자연스레 대안은 한번도 영화화 되지 않았고, 향후 전개될 어벤져스 스토리에서 핵심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로 좁혀졌다. 

파이기의 선택은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였다. 토니 스타크는 기존 슈퍼히어로와는 달랐다. 그는 슈퍼히어로지만 인간이고, 자신이 인간이란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우상화하려는 그 어떤 시도도 부정한다. 토니는 그 부정을 묘하게 매력적인 냉소로 드러낸다. 어벤져스를 ‘슈퍼 시크릿 보이밴드’라고 하거나 토르에게 셰익스피어식 고어체로 ‘자네 모친은 자네가 망토를 입고 다니는 건 아시는겐가?’라고 묻는 식이다. 그의 냉소는 단순한 빈정거림이나 비아냥거림은 아니다. 그 안엔 슈퍼히어로라는 타이틀에 대한 부담과 슈퍼히어로도 여느 누구와 같은 평범한 존재라는 겸손 섞인 통찰이 담겨있다. 

이런 통찰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건 토니가 아이언맨 슈트를 입고 어떻게 화장실에 가는지 보여 줄 때다. 연설을 하던 중 청중이 화장실에 어떻게 가냐고 묻는다. 토니는 누구나 수영장에서 한번쯤 사용했을 방법을 사용한다며 슈트를 착용한 체 눈을 지긋이 감고는 몸을 부르르 떤다. 누구라도 웃고 공감할 수 있는 장면이다. 슈퍼히어로라 하여 특출나거나 본질적으로 다른 존재가 아니란 걸 온 몸으로 표현한 셈이다. 바꿔 말하자면 그 누구나 슈퍼히어로가 될 수 있다는 얘기도 된다. 아이언맨 슈트만 입으면 누구나 슈퍼파워를 가질 수 있으니 맞는 말이긴 하다. 

물론 토니가 평범하기만한 사람은 아니다. 백만장자에 천재적 두뇌를 지녔고 매력적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가 슈퍼히어로가 된 건 전적으로 그의 노력에 의해서다. 그는 슈퍼맨이나 토르처럼 타고난 슈퍼파워를 지니지 않는다. 우연히 감마선에 노출되거나 돌연변이 현상이 생긴 것도 아니다. 토니는 철저히 후천적 노력으로 자신의 슈퍼파워를 이뤄낸다. 그리고 자신의 성과에 당당하다. 정체를 감추려는 배트맨과 달리, 아이언맨은 스스럼없이 마스크를 벗는다. (그는 정체를 감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얼굴을 보호하고 증강현실 기능을 쓰기 위해서 마스크를 사용한다.) 청중에게 자신을 드러내길 꺼리지 않고 자신의 공적을 감추려 하지도 않는다. 그렇게 해서 화려하지만 특권의식은 없으며, 냉소적이고 휴머가 있는 매력적인 슈퍼히어로 캐릭터가 탄생한 것이다. 

‘평범한’ 토니를 슈퍼히어로로 만드는 건 그의 아머다. MCU가 전개되며 토니의 아머는 다양한 방식으로 진화한다. 최초의 아머는 토니가 아프가니스탄 테러범의 소굴에서 탈출하기 위해 만든 프로토타입이다. 무기창고에 즐비한 부품을 활용해 만든 강철 슈트로 투박하고 엉성하지만 아크 리액터를 동력원으로 하는 엑소스켈레턴 아머라는 모티브는 가지고 있다. 그 후 인공지능 자비스가 연결된 증강현실 마스크와 아크 리액터의 동력을 무기로 활용하는 리펄서 건이 추가되며 기본 골격을 갖춘다. 초기 아머는 자동차 조립 공장에서나 볼 수 있는 로봇암으로 장착하는 기계식 아머다. 후기 아머는 여전히 기계식이긴 하지만 브리프 케이스에 들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컴팩트 해지고, 장착도 자동화된다. 초기에는 제한된 공간에 있는 조립 툴을 사용해서만 장착 가능한 아머가 점점 언제 어디에서라도 착용할 수 있게 진화한 것이다. 

인피니티워에 등장하는 최종단계의 아머는 한단계 더 진화한다. 나노파티클을 활용한 이 아머는 아크 리액터 안에 저장되어 언제든 장착할 수 있다. 항상 지니고 다니며 언제나 장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실상 토니 신체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나노 아머는 코믹스에 등장하는 익스트리미스 아머와 블리딩엣지 아머 컨셉에 기반을 둔다. 익스트리미스 기술은 캡틴 아메리카와 같은 슈퍼솔져를 만드는 나노머신 기반의 혈청으로 인간 신체의 신경계를 전자 컴퓨터화 한다. 이 기술을 활용하면 아머를 액화시켜 탄소나노튜브 형태로 뼈속에 저장할 수 있다. 착용할 때는 자기장 조작으로 땀구멍을 통해 신체 밖으로 빼내 자동으로 장착할 수 있다. 

모터와 자동제어장치로 구동되는 기존의 기계식 아머와 달리 나노머신은 피부와 근육에 바로 입혀져 힘을 증강시키기 때문에 토니 스스로가 슈퍼파워를 얻는 것 같은 효과를 준다. 게다가 신경계를 전자기기화 해서 토니 자체가 일종의 컴퓨터가 된다. 자비스 없이도 전산망에 접속해 필요한 정보를 얻거나 인공위성을 조정해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다. 나노 파티클을 변형시키며 쉴드나 배터링램과 같은 백병전용 근접무기부터 리펄서 캐논이나 클러스터 캐논과 같은 에너지 기반 무기를 만들 수 있다. 엔드게임에서는 초월적 무기인 인피티니 건틀렛을 대신해 인피니티 잼을 수용하고 그 힘을 제어할 수 있는 나노 건틀렛을 구현하기도 한다.


최초 프로토타입부터 나노 건틀렛에 이르기까지 토니의 아머는 외부에 존재하는 독립된 도구에서 토니의 신체와 점점 일원화된 토니 자신의 일부로 진화한다. 어벤져스에 있는 다른 히어로들에 비하면 토니는 평범한 인간에 불과하다. 그런 그가 슈퍼히어로가 되고 어벤져스 내에서 리더 역할을 할 수 있는 건 그를 아이언맨으로 만들어 주는 아머 때문이다. 토니에게 있어서 아머는 슈퍼히어로라는 정체성을 표상하는 하나의 도구 인 것이다. 그래서 그는 슈퍼히어로라는 ‘직업’에 대해 냉소적일 수 있는지도 모른다. 언제든지 벗어 던질 수 있는 도구일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머가 진화하며 아머는 점점 토니 안으로 파고 들어온다. 육체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아이언맨과 어벤져스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토니는 이기적이고 자신 밖에 모르는 잘생긴 스타 CEO에서 윤리의식을 갖춘 히어로로 성장해간다. 그 과정에는 자신이 히어로임을 끊임없이 자각시켜주는 아머가 있다. 그리하여 최후엔 인피니티 젬을 아머에 끼우고 가족과 동료를 뒤로 한 체 자신을 희생한다. 처음엔 생존을 위해 만든 도구에 불과했던 아이언 아머를 각고의 노력으로 진화시키고, 그 과정에서 아머가 표상하는 영웅의 역량과 조건을 내재화하며 영웅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은 것이다. 평범한 인간에 불과한 토니가 도구를 통해 자신의 힘을 증강시키며 영웅으로 거듭나는 과정이야 말로 현대인이 추구할 수 있는 영웅의 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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