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비나펠스요쿨로 향한 건 해가 완전히 떠오른 뒤였다. 인터넷 사진으로 봤을 때 이곳의 빙하는 가장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여행 전부터 일순위로 꼽아둔 장소였지만, 어제 오후엔 스카프타펠에 밀렸고 오늘 아침엔 로마그누푸르에 밀렸다. 미안한 마음에 발걸음을 서둘렀다.
주차장에서 5분쯤 걸으니 빙하지대가 시야에 들어왔다. 일렬로 우뚝 솟은 얼음기둥은 사진 속에서 본 것처럼 위엄 있어 보였다. 스카프타펠 전망대에서 내려다봤던 전경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가까이서 마주한 빙하들은 저마다 다른 결을 지닌 채 대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갈라져 있었고, 솟아오른 얼음덩이들은 거대한 전투라도 벌인 양 서로를 밀고 당기며 뒤틀려 있었다.
어느새 해는 구름 뒤로 몸을 숨겼고, 극적인 빛의 연출은 없었지만 넓게 펼쳐진 빙하지대는 그 자체로 충분히 인상적이었다. 눈앞에 우뚝 솟은 얼음은 신비로움 그 자체였다. 양지에 떠 있는 빙하는 매끈한 표면 위로 에메랄드빛의 푸른 기운을 뿜어냈고, 반면 그늘진 빙하는 거칠고 무거운 질감에 화산재가 섞여 있어 대리석 원석이나 광물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자갈이 바스락거렸고, 얼음골 사이로는 선선한 바람이 흘러 나왔다. 그렇게 한 바퀴 둘러보다 동쪽 끄트머리에서 해가 조용히 고개를 내밀었다.
문득 빙하 아래가 궁금해졌다. 바다 위에 떠 있는 빙산처럼 육중한 몸체를 수면 아래 감추고 있을까, 아니면 해저 깊은 곳까지 뿌리내려 지표면과 하나로 이어져 있을까.
땅 밑 어딘가에서 지구의 심장박동이 전해지는 듯했다. 잊혀진 신화 속 빙룡이 깊은 잠에서 깨어나 얼음 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푸른 숨결을 내쉴 것만 같았다.
조금 더 주위를 둘러볼까 했는데, 갑자기 단체 관광객들이 밀려들었다. 순간 빙하지대는 순식간에 소음으로 가득 찼다. 빙하를 끌어안고 위에 올라가 사진을 찍는 사람들, 억지로 따라온 듯 무표정하게 담배를 피우는 아저씨, 카메라와 삼각대를 들고 조심스레 구도를 잡는 사진사들.
소란해진 주변 분위기 때문일까, 풍경과 나 사이의 교감이 끊긴 듯한 기분이 들었다. 방금 전까지 다채롭고 신비로웠던 색감과 질감은 자취를 감췄고, 그 자리에 남은 건 소음과 인파로 채워진 평범한 관광지의 모습이었다.
나는 조용히 발걸음을 돌렸다. 오랜 시간 동안 압력을 견디며, 침묵과 울림 그리고 꿈틀거리는 생명으로 빚어진 이 풍경을 기억의 주름 사이로 조심스레 접어 넣었다. 마치 얼음 속에 저장된 시간처럼 말이다.
이동경로
스비나펠스요쿨: Svínafellsjökull Parking
뷰포인트
주차장에서 전망대까지는 1km가 조금 안된다. 10분 정도 걸으면 갈 수 있다. 전망대에서 자갈길을 따라가면 빙하 바로 앞까지 갈 수 있다.
전망대에 가기 전 작은 연못을 따라 산책로가 있다. 연못 앞에서 산책로를 보면 빙하 반영을 멋지게 담아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