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이 무뎌진 자리에

그리움이 무뎌진 자리에 새로 돋은

by 양파로운

정말 오랜만에, 형식적이지 않은, ‘진짜' 오전 수업만 하는 날이었다. 원래 친구들과의 모임 약속이 잡혀있었는데, 그게 취소되고 나니, 오히려 쉴 기회가 왔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했다. 아이들이 있을 때에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두 세시간 남짓, 오롯이 혼자일 시간은, 평소 하기 어려운 일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했다. 그렇게 차근차근 따져보다결정한 오늘의 내 목표는, 반드시 '거실'에서 대(大)자로 누워, 텔레비전 틀어놓고 멍하니 있기. 아이들과 함께라면, 거실에서, 그것도 내가 원하는 프로그램을 틀어놓고 누워있기가 웬 말인가. 아무런 생각 없이 있는다는 건 더더욱 불가능한 일. 필사적으로 누워, 텔레비전을 켰다.


어떤 프로그램을 봐볼까? 예전에 이런 시간이 주어지면 '육아'라는 나의 상황이 관련 프로그램을 고르도록 이끌었는데, 쉬고 있을 때조차 무언가 아이들의 불편하고 힘든 감정을 마주하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에, 조금 더 보기 편한 인터뷰 프로그램을 택했다.


많고 많은 편 중에 왜 심현섭 편을 택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 어릴 적, 개그콘서트를 주름잡던 그가, 아직도 혼자인 이유가 궁금해서? 97년 대선 때 DJ 대신 이회창을 지지한 그가 어린 마음에 괜히 미웠는데, 그 후 인기가 덜해진 그가 어린 나이에도 괜히 불쌍했는데 그 기억이 은연 중에 남아있어서? 정확히 어떠한 이유 때문인 줄은 모르겠지만, 나도 모르게 심현섭이 나오는 회차를 눌렀다.


심현섭은 중1때 아버지를 잃었다. 심현섭의 행복도 그 때 멈췄다고 한다. 아버지를 잃은 이후의 세월은 어렴풋이 기억 나는 게 전부이지만, 중1 이전의 기억은, 디테일한 부분까지, 아버지와의 일상 하나하나가 상세히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의 이야기를 듣는데, 내가 겹쳤다. 나도 그와 같은 인생을 살아오지 않았던가. 누군가에게 언제가 가장 행복했냐는 질문을 받으면, 주저없이 늘 '유년시절'이라는 답을 뱉었었던 나. 내게 '현재'와 '미래'는 어떠한 의미도 주지 못했고,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 내가 그리워하는 그 시절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서라도 갈 의향이 있었다. 그 시절엔 그가 있을 것이므로.


그가 없는 '현재'를 나는 왜 그리도 시려했을까. 생각해보면, 그와의 시간이 적당치 못했기 때문이다. 적당히 즐겁고, 적당히 행복했으면 됐는데, 그를 포함한 우리 넷이 함께 보내는 시간은 늘 그 적당함을 넘어섰다. 과하게 즐거웠고, 과하게 행복했다. 그랬기에, 과해서 웃음이 넘치던 그 때를 떠올리면, 많은 것이 건조해져버린 ‘지금’을 받아들이는 게 더 어려워졌다. 그래서 더욱, 나를 과거에서 빼오려 하지 않았다. 넷의 시간 그대로 남겨두고 싶었다.

그러나, 그와 함께한 세월보다 어느 새, 그와 함께 보내지 않은 세월이 더 많아지면서, 그를 그리워하는 시간도 눈에 띄게 줄었고, 아리고 시렸던 감정도 옅어졌다.

사실, 괜찮아졌다가도 그가 있는 곳만 가면 다시금 눈물이 났었는데, 언젠가부터 그 눈물도 안났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더더욱 그를 떠올리며 그리워하는 시간이 줄었다. 할머니가 그의 이야기를 하며 눈물 지을 때면, 그 눈물이 나로 하여금 그를 떠올리게 했는데, 할머니가 그를 그리워하면, 그 애닳은 가슴이 절절하게 느껴져 나도 그를 감히, 할머니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리워했었는데, 어느 새 정말 기억 '저편'에 남긴 사람이 되어버렸다. 이 시간이 오기까지, 내가 감당했던 슬픔은, 결코 작지 않았음을.


남편을 만나, 지금의 가정을 이루면서부터는, 미안하지만, 그를 거의 잊었다. 늘 '과거'를 그리워했던 '나'인데, 언젠가부터 '과거' 생각이 나질 않는다. 그 시절도 행복했지만, '지금'의 안정된, 평온한 삶도 행복하다. 내가 그리워하던 '과거'에서 내가 느꼈던 그 행복을, 이제 우리 아이들이 느낄 수 있게, 그렇게 살고 있는 지금의 이 삶도 비할 수 없이 행복하다. 내 부모로부터 따뜻하고 즐거운 시간을 선물 받을 때에도 기뻤지만, 내가 아이들에게 그러한 시간을 선물해 줄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게 참으로 값진 일이라는 걸 시간이 갈수록 더욱 느낀다.


부모가 내게 준 사랑을 먹고 내가 컸다면, 내 아이들이 나를, 엄마라는 이유만으로 사랑해주는 그 마음이지금의 나를 키운다. ’과거'에만 매여있던 내게, '오늘', '현재'가 충분히 즐겁고 아름답다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전해 주는, 내가 만든 가족. 이들이 무뎌진 내 그리움 위에 새로 돋았다.


결혼을 통해 가정을 이루고 싶지만 많은 게 두렵다는 심현섭이, 그 두려움을 깨고 가정을 이루고 나면, 사무치는 그리움의 자락에서 조금은 비켜 설 텐데. 그 그리움을 깨고 나오면, '과거'가 아니어도, 온전히 기억하고 싶은 순간순간이 내 인생을 또 에워싸게 된다는 것을 깨달을텐데. 그리움과 슬픔의 시간을 온 몸으로 겪고 나니, 내게 이러한 시간이 자연스레 온 것처럼, 나와 아무 상관없는 그이지만, 그에게도 이러한 시간이 자연스레 찾아 오면 좋겠다.


오랜만에 찾아 온 여유에, 누군가의 불편한 감정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 선택한 결과값은 대실패였지만, 하기 힘들었을 얘기를 솔직하게 나눠 준 그 덕분에 잊고 지내던 내 유년의 얼굴과 만났다. 그리워서 서늘했으나, 그리운 이가 있어 더 깊이 살 수 있었던 그 시절.

마치 그리웠던 누군가가 있었기라도 했냐는 듯, 간절하게 만나고 싶었던 그 모든 마음을 잊고 지내고 있는 내게, 지금의 나를 에운 모든 것을 단단히 지켜내는 힘이, 지금을 소중히 아끼며 살아갈 수 있는 힘이, 그를 그리워했던 시간에서 왔음을, 그랬으므로 그 시간은 서늘함이 전부가 아니었음을 알려주기 위해, 오늘, 뜻밖의 여유로 찾아왔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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