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딸에게 글을 쓰는 마음은

딸들의 안녕을 바라는 아빠의 마음

by 양파로운

<매일 아침 딸에게 글을 쓰는 마음은>


“애들한테 오늘 늦는다고 말을 못해줬네. 어쩌지.” 바삐 나서려던 남편이 현관문을 열다 말고 혼잣말을 하더니 이내 들어와 급히 포스트잇을 찾는다. “아무래도 남겨 놓고 가야 할 것 같아. 애들 일어나면 꼭 좀 전해줘.” 갑자기 일정이 생겨버렸다고, 대신 내일은 더 재미있게 놀자는 말을 남긴 그는, 출근해서까지 애들에게 전했는지를 내게 재차 확인했다. 아이가 일찍 올 아빠를 기다리다 실망하게 되는 게 그에겐 꽤 마음 쓰이는 일이었다. 애들에게 마음 쓰이는 일은 되도록 만들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그 다웠다.


먼저 일어난 첫째는 아빠가 남겨 놓은 글이 있다는 자체를 낯설어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너무 좋은 기분일 때 짓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는 표정을 하다가, 곧 연필을 쥐고 꾹꾹 눌러 써내려간다. ‘아빠 늦게와도 괜찮아요. 사랑해요. 건강해요. -라희 올림-’. 라희가 답장으로 반응을 해 줄 거란 생각을 전혀 못하였던 우리는, 아이가 답장을 쓰게 된 마음이 몹시 궁금했다. 무엇이 이 아이로 하여금 자신의 마음을 내보이게 만들었을까. 어떤 부분이 건들어진 것일까. 마음을 글로 주고받는 시기를 그려왔는데, 이 아이의 어떤 부분이 톡 건들어지니 그 시기가 왔다. 글이 더욱 보드랍게 느껴졌다. 느껴버리면 하지 않을 방도가 없지. 그는, 다음 날부터 아이들이 일어나면 볼 작은 메모를 남기기 시작했다.


얼마 가지 않아 그만 할 줄 알았다. 일이 분이 아쉬운 분주한 출근 시간에 책상에 앉아 진득하니 편지를, 그것도 매일 쓴다는 게 가당찮은 일인가. 노트까지 구비해 열심인 그를 지나치며 이렇게 매일 쓰면 돌이킬 수 없어진다며 괜한 엄포나 놓았다. 그가 의무로 여겨 지칠까 걱정됐기 때문이다.


이런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그는 정말 매일 썼다. 바쁜 마음에 휘갈기는 게 아니라, 또박또박 온 마음을 다한 글씨를 내놓았다. 라희는 일어나면 서재 방으로 가 아빠의 글이 적힌 노트부터 챙겼고, 거실 소파에 누워 찬찬히 읽어 내려갔다. 읽고 나면, 유채에게 소리 내어 읽어주고 둘은 아빠 편지 내용에 대해 갑론을박하며 깔깔깔 웃는 게 어느새 아침 루틴이 되어버렸다. 라희가 일어나 아침 먹고 옷 입고 유치원 갈 준비를 마치면 십오분 가량 정도 남는데, 그 시간엔 여지없이 아빠에게, 가끔은 나에게까지, 답장을 쓴다. 대체로 답장은 우리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는, 다녀와서 뭐하고 놀자는, 사랑한다는, 상투적인 내용이지만, 여섯 살이 건네는 이 말은 상투적이라기엔 읽을 때마다 새로이 들린다. 나도 그 누군가들에게 숱하게 내뱉었을 ‘건강하세요’가 이리 콕 박힐 일인가. 별 의식도 없이 심심하면 뱉는 뭐하고 놀까가 이리 설렐 일인가. 여섯 살의 편지엔, 그런 힘이 있었다. 뻔하다 여긴게 뻔하지 않은.


큰 애의 기질도 있겠지만은 이걸 끌어내 준 건 남편임이 틀림없다. 그를 한마디로 단정짓기 어렵지만, 그는 참 나무랄 것이 없다. 정확하고 단호하지만 세심하게 헤아리는 아량 또한 갖추었다. 아이들에게 인사하지 못하고 나오는 출근길이 마음에 걸려,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와 함께 건네는 아침 인사 편지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너무도 정확하게 보여준다.


아이들의 일상을 섬세히 들여다 보아야 알 수 있는 ‘성장’의 모습과 아이들에게 주고 싶은 삶의 가치 등을 정성을 다해 알려 주는 그의 글. 몸과 마음과 시간을 들여 애쓰는 그의 마음이 느껴져 틈만 나면 꺼내 읽어보게 된다.


여섯 살 네 살이, 그가 쓴 말들을 온전히 이해할 수야 없지만, ‘아빠와 있는 시간이 즐거워요’, ‘오늘도 즐거운 시간 보내고 이따봐요’, ‘아빠가 있어서 행복해요’ 등 그가 언젠가 썼던 말들을 자연스레 그에게 되돌려주는 걸 보면, 라희 유채는 그의 말이 자연히 체화되었다. 머리로의 이해를 바라고 쓴 글이 아니었지만, 궁극에 온몸으로의 이해를 도왔다.


매일 아침 딸들에게 글을 쓰는 그는, 나의 안녕을 참으로 바라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이 언제고 우리를 살게 만든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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