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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정 Oct 31. 2024

윤정과 예진과 희선 (3)

소설연재

그냥 쉰 청년. 희선은 뉴스 제목을 빤히 바라봤다. 자신을 지목하는 말이란 걸 알고 있었다. 희선에게도 구구절절 핑계 거리는 많았다. 하지만 어쨌거나 사회가 청년에게 마땅히 기대하는 바를 실천하면서 살지는 못하고 있다.


한국대에 입학할 때만해도 그게 인생의 최고점이 될 줄은 몰랐다. 희선이 멈춰있는 동안에도 세상은 빠르게 돌아갔다. 어느덧 수료 3년 차로 접어들었고, 아직까지 직업이 없는 백수이다. 수료 기한은 최대 3년까지 가능합니다. 한국대 포털 사이트의 문구가 머리속을 떠다니며 희선을 괴롭혔다. 벌써 3년차. 희선은 올해까지만 수료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첫번 째 신청때만 해도 3년이란 숫자를 우습게봤다. 1년이면 충분할 거라고 착각했다. 그러나 희선은 벼랑 끝까지 와버렸다. 내년에는 반드시 졸업을 해야하고, 그렇다면 기숙사도 퇴실해야 했다.


아마 정신과에 간다면 우울증 진단을 받을 것을 희선은 확신한다.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질병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을 스스로 진단하게된 것은 토익 시험을 치러가야 하는 어느 토요일이었다. 그날, 희선은 시험을 보러 가지 않았다. 늦잠을 잔 건 아니었다. 낮밤이 바뀐 채로 생활했던 것은 맞지만 그날은 알람 소리를 듣자마자 눈을 떴다. 그러나 도저히, 정말 도저히 침대에서 몸을 일으킬 힘이 나지 않았다. 어떤 거대한 바위가 몸을 짓누르는 것 같았다.               


그때 희선이 했던 생각은 '토익 시험 못치면 어떡하지'가 아니라 '그냥 이대로 세상이 끝났으면 좋겠다'였다. 겨우 토익 시험 보러 갈 힘도 없는데, 이 무시무시한 세상에서의 생존은 엄두도 나지 않았다. 나는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이 자조 섞인 한탄을 읊조리다보면 그 끝은 언제나 자기 자신에 대한 원망에 닿는다.


고시 1년 차, 소수점 차이로 필기에서 떨어졌을 때, 희선은 고시라는 것도 해볼만하다고 생각했다. 역시 사람은 잘하는 것을 해야 한다며 낙방 속에서 우쭐한 표정을 짓기도 했었다. 소수점 탈락이 희선에게 선사한 찰나의 자만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두 번째, 세번 째 시험에서 희선은 1년차 성적보다 더 낮은 성적을 받고 말았다. 절대적인 학습양 만큼이나 강약조절도 중요한 법인데, 희선은 남들보다 늦게 고시 공부를 시작했다는 조급함과 압박감을 이기지 못했다. 희선은 언제나 전속력으로 달렸고, 그럼에도 부족함을 느꼈다. 그래서 더 빨리 방전됐을 것이다. 언제부턴가 희선은 공부하는 척 시늉만 하고도 공부를 열심히 했다는 착각에 빠지는 스스로를 발견하곤 했다. 희선은 깨달았다. 그녀가 공부를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더이상 못하게 되었다는 것을. 어딘가 망가져버렸다는 것을.


고시를 그만두기로 결심했을 , 당장 희선의 손에는 아무런 성과도 없었지만 그럼에도 괜찮았다. 취업이라는 대안이 있었으니까. 그때는 절망보다는 희망이  컸던  같다. 삐그덕대기 시작한 것은 고시 공부에 썼던 기간만큼 시간이 흘렀지만 취업에서도 아무런 성과를 보지 못하면서다. 아마도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희선이 취업준비생이 아닌, 그냥  청년의 부류로 옮겨 갔던 것은.


요즘 희선 같은 청년이 많은지 사회적으로도 문제가 되는 듯 하다. 우려하는 바는 안다. 인생에서 가장 생산성이 높을 시기에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은 아까운 게 분명하니까. 그게 일이든, 인간관계든, 두뇌 회전이든. 이 시기에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의 기회비용은 크다. 누군가는 배가 불러서 그렇다고 손가락질 한다.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어떻게 보면 당장 굶어 죽지는 않으니까 서서히 망가지는 나를 내가 관망하는 것일 수도 있다.


희선은 안다. 그녀는 지금 무기력에 잠식되었다는 것을. 그리고 누적되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관성이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는 것을.  마디 뱉는 것도 힘에 부치는 희선을.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 기숙사로 돌아가는 희선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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