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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명혜 Apr 01. 2022

봄을 나눕니다.

 참냉이, 씀바귀, 유채, 미나리…. 왁자한 웃음소리와 함께 텔레비전 화면 가득 나물이 쏟아진다. 한국은 봄나물 철인가 보다. 나물바구니를 잡았던 화면은 어느새 나물을 뜯는 팔순 시어머니와 60대 며느리에 머문다. 아직은 녹색이 적어 휑한 들판의 두 사람이 얼핏 고단해 보이기도 하지만 봄나물 하나에 그 어느 꽃보다 환해지는 그네들의 모습은 행복하다. 기억 속의 나도 그랬다. 냉이는 과도로 뿌리까지 찔러 넣고, 살살 뿌리가 상하지 않게 끄집어 내는 게 요령이다. 쑥은 뿌리까지 뽑을 필요는 없지만 먹는 쑥을 찾아 잎을 따는 것이 중요하다. 칼도 필요 없이 손가락으로  톡톡 따주면 되는 돌나물은 물에 살살 씻어 새콤달콤 무쳐 먹으면 그 어떤 서양 샐러드보다 낫다.


 한국 들녘의 봄이 노력한다고 온전히 이곳으로 옮겨지기야 할까마는 내 정원엔 어설픈 한국의 봄이 있다. 겨울을 이겨낸 부추는 벌써 두세 번 잘라 양파와 섞어 전을 만들어 먹기도 하고, 양념장 만들어 두부에 끼얹어 먹었다. 몇 해 전 친구에게 얻은 쑥 몇 뿌리는 한 움큼 뜯어내도 티도 나지 않을 만큼 이젠 화분에 수북하다. 작은 물구멍 하나만 남기고, 일 년 내내 화분 받침을 놓아 촉촉한 흙에서 기르는 미나리도 한창이다. 십 년도 전에 한 끼 반찬으로 샀던 것 중에서 실한 것으로 골라 뿌리를 내려 번식한 돌나물. 그래서 어느 봄나물보다 정이 깊다.  

 

 예전처럼 이 맘 때면 봄나물 찾아 들길을 걷는 분주함은 없지만 이즈음 나의 텃밭은 다른 모양으로 바쁘다. 온실을 정리하기 전에 매년 하는 일, 모종을 나누어야 하기 때문이다. 가장 많이 나눌 수 있는 깻잎을 시작으로 돌나물 모종도 몇 삽 파 준비해 둔다. 늘 풍성해 나누기 쉬웠던 미나리는 올해 그리 사정이 좋진 않지만 두 세 사람은 가능할 듯하다. 꽃대까지 잘라 열심히 수를 늘린 카랑코에와 이제 제법 많은 열매가 달리는 무화과도 번식에 성공했다. 바람에 흔들릴 땐 종소리가 들릴 것만 같은 후치아도 몇 화분 늘려 놓았고, 제라늄은 벌써 꽃망울이 맺혀 있다. 작년에 씨를 받아 놓았던 한련화와 백일홍도 튼실한 잎을 키우고 있다.


사람들에게 연락을 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모종의 목록을 정리하고, 가져가 잘 키울 수 있도록 좋은 모종을 골라 영양분 섞은 흙으로 새 화분에 담는다. 그리고 몇 날을 온실과 햇살에 번갈아 힘을 길러준다.


봄의 가운데서 난 그 봄을 나눌 준비를 끝냈다. 그리고 사람들과 나눈 나의 봄은 여름으로 가을로 점점 더 풍성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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