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냉이, 씀바귀, 유채, 미나리…. 왁자한 웃음소리와 함께 텔레비전 화면 가득 나물이 쏟아진다. 한국은 봄나물 철인가 보다. 나물바구니를 잡았던 화면은 어느새 나물을 뜯는 팔순 시어머니와 60대 며느리에 머문다. 아직은 녹색이 적어 휑한 들판의 두 사람이 얼핏 고단해 보이기도 하지만 봄나물 하나에 그 어느 꽃보다 환해지는 그네들의 모습은 행복하다. 기억 속의 나도 그랬다. 냉이는 과도로 뿌리까지 찔러 넣고, 살살 뿌리가 상하지 않게 끄집어 내는 게 요령이다. 쑥은 뿌리까지 뽑을 필요는 없지만 먹는 쑥을 찾아 잎을 따는 것이 중요하다. 칼도 필요 없이 손가락으로 톡톡 따주면 되는 돌나물은 물에 살살 씻어 새콤달콤 무쳐 먹으면 그 어떤 서양 샐러드보다 낫다.
한국 들녘의 봄이 노력한다고 온전히 이곳으로 옮겨지기야 할까마는 내 정원엔 어설픈 한국의 봄이 있다. 겨울을 이겨낸 부추는 벌써 두세 번 잘라 양파와 섞어 전을 만들어 먹기도 하고, 양념장 만들어 두부에 끼얹어 먹었다. 몇 해 전 친구에게 얻은 쑥 몇 뿌리는 한 움큼 뜯어내도 티도 나지 않을 만큼 이젠 화분에 수북하다. 작은 물구멍 하나만 남기고, 일 년 내내 화분 받침을 놓아 촉촉한 흙에서 기르는 미나리도 한창이다. 십 년도 전에 한 끼 반찬으로 샀던 것 중에서 실한 것으로 골라 뿌리를 내려 번식한 돌나물. 그래서 어느 봄나물보다 정이 깊다.
예전처럼 이 맘 때면 봄나물 찾아 들길을 걷는 분주함은 없지만 이즈음 나의 텃밭은 다른 모양으로 바쁘다. 온실을 정리하기 전에 매년 하는 일, 모종을 나누어야 하기 때문이다. 가장 많이 나눌 수 있는 깻잎을 시작으로 돌나물 모종도 몇 삽 파 준비해 둔다. 늘 풍성해 나누기 쉬웠던 미나리는 올해 그리 사정이 좋진 않지만 두 세 사람은 가능할 듯하다. 꽃대까지 잘라 열심히 수를 늘린 카랑코에와 이제 제법 많은 열매가 달리는 무화과도 번식에 성공했다. 바람에 흔들릴 땐 종소리가 들릴 것만 같은 후치아도 몇 화분 늘려 놓았고, 제라늄은 벌써 꽃망울이 맺혀 있다. 작년에 씨를 받아 놓았던 한련화와 백일홍도 튼실한 잎을 키우고 있다.
사람들에게 연락을 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모종의 목록을 정리하고, 가져가 잘 키울 수 있도록 좋은 모종을 골라 영양분 섞은 흙으로 새 화분에 담는다. 그리고 몇 날을 온실과 햇살에 번갈아 힘을 길러준다.
봄의 가운데서 난 그 봄을 나눌 준비를 끝냈다. 그리고 사람들과 나눈 나의 봄은 여름으로 가을로 점점 더 풍성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