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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명혜 Jul 29. 2022

부겐빌리아 너 때문에

 조바심 때문이었을까? 시차 때문이었을까?  아침 5시도 되지 않았는데 눈이 떠졌다. 맞다. 어제 본 내 정원, 황폐해진 내 정원의 충격에 나도 모르게 눈이 떠진 것이다. 한 달여 만에 한국에서 돌아와 트렁크도 꺼내지 않고 그리움에 달려 나가 본 정원은…, 내 것이 아니었다. 물론 어느 정도 각오는 되어 있었다.  캘리포니아에서 한 달 넘는 시간을 그것도 여름에 집을 비웠다 돌아왔을 땐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다.

 거의 3년 만인 이번 한국 방문 준비는 유난히 분주했다. 오랜만의 긴 여행이기도 했지만 코비드로 인해 이전에 하지 않아도 될 서류 준비도 많았고, 검사도 있었다. 하지만 그리운 얼굴들을 만날 수 있음에 그깟 분주함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상쾌한 아침 바람에 날려 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정원 가꾸기가 큰 행복인 나에겐 출발 며칠을 앞둔 날까지 정원 준비로 종종 거리느라 그 계절 아젤리아의 화사함도 쟈스민의 향기를 느낄 여유조차 없었다.  

 긴 시간 집을 비울 때 정원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물 주기다. 다행히 자동 워터 시스템이 있으니 여름이라도 시간만 넉넉히 세팅만 해두면 될 터였다. 하지만 올 초부터 가뭄으로 난리인 캘리포니아 주민으론 아무리 정원을 사랑한다 해도 물은 아껴야 했다. 그래서 몇 날을 절약형 워터 시스템으로 바꾸고, 온몸을 적셔가며 물이 떨어지는 위치를 찾아 화분들을 놓고, 그것도 아까워 화분마다 받침을 두어 물을 절약해 보고자 했다. 그렇게 한참을 분주하다 떠났것만, 날 기다리고 있는 정원은 바싹 말라 있었다. 원인은 큰 바람이 불었던 어는 날 전기가 나갔었고, 때문에 워터 시스템이 리셋되어 얼마 동안 물이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급한 대로 호스를 풀어 닿으면 아삭 거리는 정원 곳곳에 물을 주었다. 하지만 마른 나뭇가지는 쉽게 부러졌고, 겨우내 온실에서 번식에 성공해 행복했던 카네이션, 라벤더, 로즈메리도 누렇게 말라 있었다. 슬펐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마음 다독여 가며 다시 물을 주고, 마른 화분들을 정리했다. 그렇게 몇 주를… 그랬더니 오늘, 마른 막대기였다고만 생각한 부겐빌리아 나뭇가지에 잎이 퍼지기 시작했다. 

그래! 부겐빌리아 너 때문에 난 다시 이 정원에 땀을 흘릴 준비가 되었어.




P.S:  이 글은 미주 한국일보 (여성의 창) 7월 27일에 기고한 글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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