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 오래된 이야기의 시작점이다. 나일과 메소포타미아, 인더스와 황하에서 인류는 삶의 터전을 만들었고, 그들의 역사 속에서 강은 늘 함께 했다. 강은 사람들에게 삶이었고, 길이었으며, 때로는 세상을 나누는 경계가 되기도 했다.
새크라멘토(Sacramento) 역시 두 강, 새크라멘토 리버(Sacramento river)와 아메리칸 리버(American river)가 만나는 자리에서 태어났다. 샤스타(Shasta)와 레딩(Redding)의 북쪽 산지에서 시작된 새크라멘토 리버는 남쪽으로 흐르며 도시를 지나 바다로 이어진다. 초기 정착민들에게 이 강은 식수였고, 농업용수였으며, 물자를 실어 나르는 교역의 길이었다. 그러나 1850년대 중반, 폭우와 홍수로 강은 한때 도시를 집어삼키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도로와 건물의 지면을 높이고, 제방을 쌓아 강을 다스렸고, 물길을 다듬어 단단한 터전을 만들었다. 비옥한 충적토는 새크라멘토 밸리를 미국 최대의 농업 지대로 키웠고, 철도와 운송망이 이어지며 이곳은 북부 캘리포니아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1854년, 새크라멘토는 캘리포니아의 주도(capital city)가 되었다.
이에 비하면 아메리칸 리버는 시에라 산맥과 타호의 지류들이 모여 강이 되어 흐르는 비교적 짧은 강이다. 그러나 1848년, 이 강의 지류인 ‘셔터스 밀(Sutter's Mill)'에서 금이 발견되면서 캘리포니아 골드러시의 출발점이 된 역사의 물줄기가 되었다.
당시 금을 캐러 온 사람들은 샌프란시스코에서 배를 타고 새크라멘토 강을 거슬러 올라왔다. 하지만 큰 배가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지점이 있었고, 그곳이 바로 아메리칸 리버와 만나는 자리였다. 사람들은 할 수 없이 그곳에 머물며 물자를 풀어놓았고, 지금의 올드 새크라멘토(Old Sacramento)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렇게 강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머문 모습에 따라 자리마다 다른 얼굴을 갖게 되었다. 어떤 곳은 큰 도시가 되었고, 어떤 곳은 작지만 이야기를 품은 마을로 남았으며, 또 어떤 곳은 끝내 기록되지 못한 삶의 흔적으로만 남겨졌다.
콜루사(Colusa)는 화려한 역사는 없다. 이곳에서 강은 금을 싣지 않았다. 곡식을 실었고, 계절을 건넜다. 해마다 같은 물길, 같은 노동, 같은 풍경. 콜루사의 강은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강과 함께 놓여 있는 CA-160번을 따라 새크라멘토에서 남쪽으로 달리다 보면, 클라크스버그(Clarksburg)가 나온다. 1930년대엔 설탕 정제공장이 돌아가던 마을이었다. 지금은 흔적으로 남아있는 올드 슈가 밀(Old Sugar Mill)이 포도밭과 와이너리로 재탄생했다.
월넛그로브(Walnut Grove)는 원래 강을 따라 올라오거나 내려가는 사람들과 배가 쉬어 가는 정박지였다. 그러다가 강변의 농업이 커지자 농산물과 사람들의 발길이 오가는 포구가 되었고, 필요한 노동력이 커지며, 19세기말부터는 중국 이민자들이 이곳으로 들어와 농장 일꾼과 노동자로 일하기 시작했다. 수백 명의 중국인이 살며 식당, 양조장, 목욕탕, 잡화점 등, 한때 델타에서 가장 큰 차이나타운을 이루기도 했었다. 하지만 1915년과 1937년, 두 차례의 큰 불로 차이나타운의 건물 대부분이 불타 버렸고, 사람들은 각자의 길을 찾아 떠나 지금은 흔적조차 희미해져 버렸다. 이보단 작지만 집단을 이루어 살던 일본인 커뮤니티도 1942년의 강제 이주로 순식간에 지워져 버렸다. 이런 풍경은 아이슬턴(Isleton)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교통의 중심이 강에서 육지로 옮겨가자, 강과 함께 번창했던 통조림 공장들도 점차 문을 닫았고, 그곳에서 일하던 많은 중국인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아이슬턴(Isleton), 이 도시도 본래의 이유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샌프란시스코와 새크라멘토를 오가는 강의 주요 정박지이며 바다로 가기 전 마지막 강 풍경을 느낄 수 있는 곳, 리오 비스타(Rio Vista). 델타 지역 농산물의 집결지였고, 농산물을 싣고 사람을 실어 나르는 통로였다. 하지만 지금은 더 이상 물자를 실어 나르지 않는다. 대신 사람들은 바람이 센 이 도시에서 연을 띄우고, 매년 낚시 축제를 여는, 관광의 도시, 느린 풍경의 도시가 되었다. 세월 속에서 강은 더 이상 서두르지 않았고, 도시도 그 속도를 닮아갔다.
사람들은 강과 함께 시대를 달리하며 살았지만, 강은 여전히 한 줄기로 흐른다. 한때의 번성과 쇠락을 모두 지켜봤을 물길은 오늘도 그저 자신이 흘러가야 할 길로 서두르지 않고 묵묵히 흐른다.
강처럼, 나 역시 이 한 해를 그렇게 건너가고 싶다.
눈에 띄지 않게, 조바심 없이, 욕심 없이.
미주 현대뉴스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