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량한 겨울, 눈 속에서도 피어나는 강인한 꽃, 동백. 하지만 일부 품종의 화려한 꽃송이 때문에 조지아(Georgia)나 남캐롤라이나(South Carolina)에서는 동백을 ‘남부 정원의 겨울 장미(Southern Garden’s winter rose)’라 부르기도 한다.
동백은 아침 햇살과 오후의 그늘, 물 빠짐 좋은 흙만 있으면 특별한 보살핌 없이도 제 몫을 스스로 감당하는 꽃이다. 새크라멘토는 기후와 토양이 동백 번성에 완벽한 조건을 제공해 1920년대에는 '세계 동백꽃의 수도’로 불리기도 했다. 아직도 캘리포니아 주 의사당 공원에는 800종이 넘는 다양한 동백나무가 있고, 그중 180여 그루의 수령이 오래된 나무들이 심긴 ‘개척자 동백나무 숲(Pioneer Camellia Grove )’도 남아 있다.
동백에는 여러 얼굴이 있다. 한국 오동도의 동백은 대부분 홑겹 일본 동백(Camellia japonica)이다. 꽃잎은 대개 다섯에서 일곱 장, 두껍고 매끈하며 둥글게 벌어지되 과하지 않다. 중심의 노란 수술은 숨김없이 드러나 있어 꽃의 구조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이 종류의 동백은 대개는 자연 군락을 이루어 숲을 이룬다.
샤넬이 사랑한 하얀 동백도 있다. 그녀는 꽃향이 향수의 향을 방해하는 것을 꺼렸고, 피어 있는 동안 형태가 흐트러지지 않는 꽃을 찾았는데, 그것이 바로 그녀의 브랜드 이미지가 된 흰 동백이다. '유행은 변해도 스타일은 남는다. (Fashion fades, only style remains the same.)'는 그녀의 철학과 흰 동백은 그녀가 꿈꾼 여성처럼 조용하고 단단하며 스스로 완성된 존재가 아니었나 싶다.
내 마당의 동백은 페오니형 동백(Peony-form Camellia)이다. 같은 Camellia japonica 계열이지만 정원용으로 오랜 시간 개량된 겹꽃이다. 꽃잎은 수십 장이 겹겹이 포개져 중심과 가장자리의 구분이 거의 없고, 반질반질한 동백 잎을 확인하기 전까진 작약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다. 향기는 없지만, 그 풍성함만으로도 나는 이 꽃이 좋다. 또 캘리포니아의 지루한 겨울 장마 끝에 그늘진 정원을 화려하게 만들어 주니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피스타치오 같은 꽃망울이 어느 날부터인가 묵묵히 몸집을 키우고, 끝자락에 살짝 꽃색을 드러내지만 그 순간까지도 이 꽃이 얼마나 풍성해질지, 얼마나 깊은 얼굴로 피어날지 가늠하긴 어렵다. 그러다 문득, 장미보다 더 화려하고 고귀한 모습으로 완전히 피어난다. 정원에 두고 봐도 좋고 , 꺾어 화병에 꽂아 두어도 좋다.
동백꽃은 다른 꽃들처럼 시들지 않는다. 꽃잎 하나씩 떨어지며 시간을 끌지 않는다. 어느 날, 꽃송이째 툭하고 떨어진다. 피어 있을 때와 다름없는 얼굴로, 갑작스럽게 자리를 비운다. 준비할 틈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동백의 낙화는 늘 놀랍고, 슬프다.
지난달, 나에게도 그렇게 고운 동백꽃 한 송이가 가슴으로 툭 떨어졌다. 내가 태어나 자라고, 나이 들어 지금까지, 형제 없는 나에게 늘 큰오빠처럼 든든했던 나의 막내 외삼촌. 기쁠 때는 나보다 더 큰 웃음으로 같이 기뻐해 주셨고, 하찮은 고민에도 몇 시간이든 내 이야길 들어주던 분, 아플 땐 정성 다한 기도로 나에게 힘을 주셨던 막내 외삼촌. 일곱 살의 어느 날, 대학생이던 삼촌을 따라 나가 처음 맛본 돈까스의 기억, 명동성당에 처음 간 그날, 비틀스와 아바의 음악이 처음 내 삶으로 들어오던 순간들, 그 시작에는 늘 삼촌이 있었다. 재수를 결정하고 의기소침해 있던 나를 남산 케이블카를 태워 서울의 야경을 보여주시며 앞으로 펼쳐질 나의 인생이 얼마나 멋지고 넓은지 얘기해 주셨던 분도 삼촌이었다. 사회인이 되어 가끔씩 세상 일에 욕심내고 질투하는 나에게 나눔과 겸손의 소중함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몇 번이고 일러 주셨던 분도 삼촌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의술로 사람을 사랑하는 법이 어떤 것인지 말없이 살아내 보이던 분이었다.
함께할 시간이 길지 않았음을 알고는 있었다. 그랬는데도 삼촌의 부재는 동백의 낙화처럼 너무 갑작스러워서 더 서러웠다. 이미 떨어졌음에도 그 꽃송이가 너무도 탐스럽고 고와 내 가슴에서 차마 치울 수가 없었다. 몇 날을 울었다. 울 때마다 더 그리웠다.
겨울의 찬 공기 속에서도 한순간에 정점의 아름다움을 피우고, 그리고 어느 날, 예고도 없이 소리조차 남기지 않고 툭하고 떨어지는 동백. 한 번은 나무에서, 한 번은 땅 위에서, 그리고 마지막 한 번은 사람의 마음속에 피기에 모두 세 번 피는 꽃이라 불리는 동백.
그리운 삼촌을, 이제는 내 마음속에 영원히 피워 두려 한다.
미주 현대뉴스 기고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