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등이 보이는 샌들이 싫다고 했어

친정 엄마의 두 번째 흉터..

by 햇빛누리

[사람이

사람의 아름다움을

알게 될 때까지

나는 짖고 또 짖을 것이다.


사람들은 개처럼 저 혼자의 몸으로 세상과 맞부딪치면서, 앞다리와 뒷다리와 벌름거리는

콧구멍의 힘만으로 살아가지 못한다.

그것이 사람들의 아름다움이고

사람들의 불쌍함이고

모든 슬픔의 뿌리라는 것을]

김훈의 소설 개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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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엄마를 잃을뻔한 큰 사고가 있었다

착하고 순하던 개도 모성애 앞에서는 물불을 안 가리고 사람을 덤빈다는 사실은 그때 알았다. 엄마는 임신 8개월 만삭의 임산부였다. 옛날에 개는 집마당을 지키고 강아지 새끼를 팔아 집안살림에 돈을 보태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때만 해도 시골할머니댁에 큰 개가 그렇게 사납게 변할 줄 몰랐다. 5살쯤이었을까. 밤에 쉬가 마려웠고 엄마를 깨울 수밖에 없었다. 방에 작은 변기도 없던 시절이었다.



화장실 가는 길목은 큰 개 그러니깐 누렇고 키 큰 도사견이 있었다. 나보다 덩치 큰 개라서 두렵고 무서웠다. 엄마는 강아지 밥그릇이 뒤집어 엎어진 것을 보고 바로 해주다가 예민했던 개에게 물리고 말았다. 낮엔 분명 밥도 챙겨주고 그렇게 선심을 썼었는데. 개도 임신을 하고 있었는지 새끼를 낳은 상태인지 기억은 안 나지만 엄마는 임신한 상태로 개의 공격을 받았고 , 다행히 배 쪽과 목부분을 물지 않아서 생명은 잃지 않았다. 하지만. 팔과 다리를 공격을 했다고 했다. 사람의 중요 부분인 급소를 공격했다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분명 낮에는 착했던 것 같은데. 밤에 야생의 모습이 드러나 무서웠다. 엄마는 지나가는 이웃에게 사건현장이 발견되었고 즉시 응급처치를 하고 병원에 가셨다. 사고는 한순간이었고 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나도 트라우마 일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전신마취를 할 수가 없어 부분적으로 알코올마취를 하고 살을 꿰매었다고 하셨다. 뱃속의 아이를 지키기 위한 방법이었다. 주위사람들이 아이는 또 가질 수 있으니 포기하라고 했지만 태동검사에서 건강한 심장소리를 보여주었다. 이듬해 남동생은 건강하게 태어났고 그 개는 어떻게 되었는지 모른다. 분명 어디 보내진 건 사실이다. 개의 이중성을 보았고 만약 이웃에서 빨리 발견하지 못했다면 과다출혈로 어떻게 됐을지 상상조차 안된다..


요즘도 개물림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는데 그걸보면 엄마는 그때 그사건을 떠올리신다.

내 삶의 가장 든든한 뿌리이자 엄마가 큰 사고를 이겨내셨다는 게 대단하시다. 내가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난 무섭고 두려웠을 것이다. 친정도 멀었고 부모에게 애기도 못하고 속으로 앓았을 텐데.. 그 모성애가 무엇인지 엄마는 굳건히 이겨내셨다. 난 못할 것 같다. 지금도 팔을 보면 개가 물었던 자국이 그대로 있다. 슬프다 아니 맘이 찢어진다. 내가 볼일 보러 가지 않았으면 이런 참변은 없었을 텐데.. 라며 철없는 소리를 한다.




그리고 두 번째 흉터.. 동생 돌사진에는 엄마가 없다. 잔치라고 집에서 음식을 많이 했다. 옛날엔 냄비가 오래되고 손잡이가 덜렁덜렁했나 보다. 손님이 온다고 튀김솥을 드는 순간 손잡이가 돌아가면서 뜨거운 기름이 엄마 발에 부어지고 말았다. 엄마는 또 병원에 갈 수밖에 없었다 아빠에게 업혀 병원에 갔고 발등을 한 2~3도 정도 데이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다행히 발가락은 떨어져 있어서 다행이었다. 화상치료는 더 아프다. 익은 상처를 벗겨내고 새살이 날 때까지 소독하고 치료를 해야 했다. 엄마는 병원에서 돌을 지낼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아프고 쓰라렸을지 지금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지금도 오른쪽엔 발이 노랗고 약간 불그스름하다. 내가 느껴보지 못한 고통은 엄마는 어떻게 견뎠을지 모르겠다. 친정엄마도 멀리 있었는데 아픔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나는 마음을 헤아릴 수가 없다. 지금도 난 엄마의 발등을 보지 못한다. 엄마는 안 보이는 곳에 다쳤다고 위안받으셨지만 그 이후로 발이 보이는 샌들은 잘 못 신으신다. 발이 숨겨진 샌들을 신어야 마음이 편하다는 엄마. 그 발등을 보면 눈물이 나고 마음이 아프다..





내가 이렇게 건강한 정신과 육체를 갖고 있었는 것도 다 엄마 덕분이다. 엄마의 모성애로 이렇게 자랄 수 있었던 것이다. 정신적으로 힘들어했고, 자식을 생각하지 않았다면 엄마는 이렇게 우리 곁에 있었을까라는 무서운 생각까지 하게 된다. 어린 나는 할머니와 잠시 있었는 것 같기도 하다. 기억이 잘나지 않다. 가끔은 흉터를 볼 때면 예쁘게 수술시켜주고 싶다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쉽지는 않은 것 같다.


결혼이란 무엇이었고 알 수 없는 사고들이 내 몸을 할퀴어갈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감히 그 세계는 상상을 못 하겠다. 어려운 시어머니와 시댁식구들 사이 결혼생활은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요즘말하는 삼재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엄마는 그래도 그 와중에도 가족들을 생각하며 우리를 멋지게 키워내셨다.


부모는 정말 아무나 하는 직업이 아닌 것 같다. 희생이 아니었으면 그게 가능했을까 싶다.

엄마라는 자리는 참으로 힘들다. 그래도 개물림 사고 이후엔 트라우마 없이 강아지를 집에서 키우기도 했다. 큰 개가 아니었기 때문일까 엄마는 그래도 강아지는 여전히 좋아하셨다. 하지만 튀김 하실 땐 여전히 무서워하신다. 큰 사고는 또 하나의 트라우마를 낳게 되었다. 엄마의 사랑은 여전하다. 사랑고백을 해본다 엄마 사랑해요 항상 고마워요 앞으로 건강하게 내 옆에 있어 주세요.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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