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 승부역
어쩌면 살아온다는 것이
산다는 것이 희망이었고
이겨낼 수 있었던 그 시절의 젊음이었으리라...
5월 주말 추억여행을 다녀왔다. 남동생이 태어난 곳, 내가 3살 때 잠시 살았던 곳 아빠의 직장 발령지 승부역을 다녀왔다. 87년도 그 당시만 해도 철도 관사에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내가 3살 때 이사를 갔다고 하는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간이역이 되었지만 지금은 영주역에서 출발하는 협곡열차를 타면 승부역까지 갈 수 있게 되어있다. 잠시잠깐 머물러 가는 곳이라 사람은 많이 살지 않는다.
없어서도 안 되는 중요 교통요지이기도 했다. 강원도 동해를 오르락내리락하는 그곳은 영동선의 축이기도 했다. 철도관사가 있어 사람들이 상주하며 살았고 강에서 추억도 쌓고 학교도 있어 운동회도 같이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마을 사람들과 어울려 밥도 먹고 아이도 같이 키우고 했다고 하셨다. 세월 가면서 잊히는 게 많아졌다.
지금 살라고 하면 못 살 오지가 되어버렸지만 그 시절에는 그게 전부였으리라 생각이 든다. 참으로 많은 것이 변해 있는 기분이었다. 3살 때 계단에서 물을 기러 온다며 아장아장 내려가던 나의 모습을 엄마는 얘기하셨다. 아무 기억도 없지만 그 시절의 추억은 그대로다. 갈수록 사람이 안 보이고 살아가지 않는다는 게 또 어쩌면 없어지는 공간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추억은 추억 앞에 살아지지만 공간은 없어지는 곳이 돼버렸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이.. 그랬다 지금은 도시에만 몰려 사람들이 삭막하다는 기분이 느껴지기도 한다. 예전엔 곳곳의 마을에 사람들이 살고 숨 쉬고 생계를 이어가곤 했는데 이젠 문만 닫으면 너 나 할 것 없이 이웃의 존재를 모르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는 것 같다.
추억여행을 가면서 세 아이들과 추억을 남기려 애써보았다. 언젠간 다시 가지 않을 그곳.. 아빠의 첫 발령지는 평생일만하던 젊은 날의 추억의 시작일 것이다. 그 시절의 청년, 그 시절의 아기엄마들은 다 환갑이 되고 아이들은 성인이 되고 결혼을 했겠지만 첫 발령지에서 만난 사람과 인연은 오래도록 기억이 날 것이라 생각이 된다.
저녁을 해놓고 아빠를 기다리던 날들도 집에서 동생을 낳은 엄마도 아이를 받아주던 어른들도 어느새 세월이 지나 돌아가셨지만 내 자식을 받아주던 동네분들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생각을 해본다.
의료시절이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도움이 참으로 컸다. 내가 상상하지 못하는 것을 해내신 부모님의 추억은 돈으로도 살 수가 없다. 이름을 속속들이 기억하고 계시는 부모님은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도 못 갈 추억을 상기시키고 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살아보지 못했던 그 당시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사람들 사이에 인정이라는 것이 있었던 옛날의 추억인 것이다.
이제는 마을단위라기보다 동네 어느 아파트로 통일되는 이 삶이 어쩔 땐 삭막하기도 하다. 한집 걸러 얼굴을 확인할 수도 없는 더욱이 핵가족화되는 1인가구시대도 더 이상의 동네사람들을 구경하기 힘들다.
예전만큼은 아니라도 동네 속에서 아이들을 사람구경하며 키우고 싶어지기도 한다. 내 아이만 소중한 것이 아니라 모두 다 문을 열어놓고 키울 수 있는 그런 곳이 확장이 되었으면 좋겠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예전보다 풍요로워졌다곤 하지만 사람들 사이의 정은 점점 멀어져 가고 있다.
SNS 세상이 없던 시절의 추억은 언제 들춰봐도 향기로운 추억이 되고 있는 것 같다. 비록 살아가는 게 힘들었지만 부모님 세대에서는 그게 당연했으리라 생각이 된다.
우리 아이들이 생각하는 앞으로의 추억은 어떻게 만들어 주어야 할지.. 비교대상이 넘쳐나는 요즘 아이들이 좀 더 행복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