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영장 다녀온 1호
우리 집 1호는 한 달 전부터 야영 간다는 소식에 매우 들떠 있었다. 코로나 이후로 첫 재계된 야영은 5학년이 맞이했다. 3년 만의 외박이라 그런지 아이는 설레면서도 많이 기다려지는 눈치였다. 나도 초중고를 거치면서 밖에서 자는 활동은 참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내 집과 다른 환경에서 시간에 먹고 자고 한다는 것이 힘들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는 설렘이 조금 더 넘쳐나는 눈치였다.
열악했던 당시의 시설은 다 없어지고 새로 리모델링된 건물이긴 하지만 그래도 세월만큼이나 기대되진 않는 야영장인 것 같았다. 나는 속으로 허전했다. 아니 12년 만에 2박 3일인데 한편으로 찡하기도 했다. 어느새 커서 스스로 짐을 꾸려 야영준비를 하는 아이가 대견하기도 했다. 캐리어에 짐을 바리바리 싸보내며 아이가 컸던 시간을 회상해보기도 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아이를 키웠고 나의 희생 속에 커 갔던 아이는 친구들과 보낼 생각에 설레고 있어 감사하기도 했다. 아프지 않고 잘 커줘서 고마웠고 아무 일이 없어야, 평범한 일상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아이를 통해 깨닫는 순간이었다. 모든 것이 감사한 날들이었다.
야영 가는 아침 시간에 아이뒷모습이라도 보려고 캐리어를 끌고 교문 앞까지 같이 가주었다. 2박 3일 동안이라도 아이의 모습을 덜 그리워해 볼까 생각하며.... 아이의 뒷모습을 눈에 담아 보고 싶었다. 아이는 씩씩하게 걸어갔다.
야영장에 가면 폰은 압수이기에 아이는 가는 도중에 나에게 슬픔반 기쁨반으로 카톡을 보내왔다.
으헝헝헝헝 엄마 잘 갔다 올게 라며 ㅎㅎㅎ 그래 잘 다녀오라며 눈물이 찡했다.
저녁이 되니 학교에서 돌아올 아이가 돌아오지 않아 괜히 서운한마음이 들었다 3명이 시끄럽게 떠들던 집안이 고요해지고.. 동생들도 누나가 보고 싶다고 징징거리기 시작했다.
다음날 아침잠이 많던 1호를 깨우던 소리는 없어지고 동생 둘 만 남은 체 학교 갈 채비를 했다. 이상하게도 나도 왠지.. 한 명이 없다고 아침이 이렇게 조용해지는 건가? 하는 생각이 살짝 스쳐갔다. "매일 일어나 일찍 일어나"외치던 나의 소리도 고요해지기 시작했다 아이가 없는 시간만큼 아침마다 내면의 소리를 지르지 않아서일까 스트레스를 조금 내려놓은 기분이었다.
아이는 일정을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나에게 카톡을 했다 귀신 봤다며 탄 냄새도 맡았다며.. 뭐 그럴 수도 있지라며 위로했지만 야영장이 워낙 산골에 있는 곳이라 그럴 수 있을 거라 생각은 했다. 아직 아이들은 어리고 바뀐 환경에서 모든 것이 예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건 사실일 것이다.
그래도 3끼 밥을 먹어서 조금은 물린다는 얘기를 했다. 학교서는 한 끼만 먹으니 그럴 수밖에. 집에서 가장 먹고 싶은 게 뭐냐고 했더니 라면이라고 했다. 아이들 입장에서 그럴 만두 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어른들도 3끼 밥만 먹으면 물리는 건 사실이니까.
아이가 도착한 날 밤 "그동안 게임 스마트 폰이 하고 싶지 않았냐고"하니 친구들하고 재밌게 지내니까 생각도 안 났다고 했다.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친구이긴 하지만, 매 순간 같이 지낼 수 없으니, 예전보다 많이 바뀌어진 환경에 친구보다는 각종 영상물과 게임들이 아이를 유혹하고 있어 그 말은 당연할 것이라 생각이 든다.
시간이 약이듯 아이는 조금 더 성숙해져 온 것 같다. 다음 주엔 현충일 앞에 휴일이 있어 4번을 쉬는데..... 장기전이 되었다. 아이는 다시 학교 가는 날 아침 6시에 일어날 수 있을지 심히 걱정이 된다. 나의 잔소리가 또 시작되겠지
" 어서 일어나" 학교 갈 시간이야"!! ㅋㅋㅋ
*6월 초에 쓴 글을 이제야 발행하네요.. 아이의 추억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