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02
유일한 장기는 최면입니다
상대방을 극도로 생각하지만
사실 그 속은 비어있습니다
그 속을 사랑, 배려와 같은
나름의 좋은 단어들로 채우려 했지만
그러기엔 속이 너무 좁아
아귀가 맞지 않았습니다
이를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습니다
다들 어떻게 저리 잘 살아갈까
난 왜 변하지 못했을까
적응하지 못했을까
피를 토하는 자기혐오와
역겨움의 지옥에서 허우적거리던
저를 끌어올려준 것은
다름 아닌 생존이라는 본능이었습니다
살기 위해
최면을 걸기로 했습니다
나는 좋은 사람 착한 사람
나는 좋은 사람 착한 사람
여러분이 사는 세상은 어떠신가요?
제가 사는 세상에는
이상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늘 이기적이고 가면을 쓰지요
혹시 상대방을 배려하고 사랑하며 살 수 있는
그런 세상에 살고 계신가요?
그럼 당신이 뱉는 안부에서
제가 찾는 순수함의 농도를 구할 수 있나요?
어쩌면 제가 걸었던 최면은
세상의 이치를 이제야 알아버린
느린 겁쟁이의 소심한 참회는 아니었을까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하루도 최면을 걸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곳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살기 위해
최면을 걸기로 했습니다
나는 좋은 사람 착한 사람
나는 좋은 사람 착한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