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도서관

by 조헌주

빌게이츠는 "나를 키운 것은 동네의 작은 도서관이었다."라고 말한다.

동네의 작은 도서관이란 무엇인가. 큰 도서관이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라고 생각할 테지만, 보통 작은 도서관은 처음 책을 접하거나 다독가가 아닌 사람들에게 있어서 큰 도서관보다 효율적인 것이 사실이다. 순도가 높기 때문이다.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를 모르거나 좋은 책을 찾아내는 능력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말이다.

작은 도서관은 공간의 협소함이라는 단점 때문에 고전 중에 고전, 명작 중의 명작부터 들여놓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양질의 책을 접할 가능성이 더 높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더 장점인 것이다. 물론 나중에는 큰 도서관으로 가야 할 때가 온다. 나의 시작도 그러했다.


사람이 현생에서 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나의 대답은 "그렇다."이다.

사람은 다시 태어날 수 있다. 나도 다시 태어난 사람이다. 사람이 다시 태어나려면 특별한 경험에서의 계기보다는 독서에서의 깨달음과 통찰력에서 비롯될 가능성이 높다. 새로운 세상과 새로운 사람들을 끊임없이 만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서광인 빌게이츠는 하버드대를 중퇴하고 자신이 원하는 길을 갔고, 하버드 졸업장보다 독서 습관이 더 중요하다고 하지 않았는가. 독서를 많이 하는 사람들이 돈도 많이 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이 번 돈보다 더 중요시하는 가치가 있다. 인문학적 가치, 휴머니즘, 세상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다. 스티브잡스는 소크라테스와 점심 한 끼 할 수 있다면 애플의 모든 재산을 주어도 아깝지 않다고 했다. 기부 문화의 대부인 빌 게이츠는 지구 전체가 자신의 몸인양 전 재산을 기부해서 지구를 보살피고 있다.

주식투자가 워런버핏은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독서하면서 보내고, 그의 친구인 찰리멍거 또한 그의 가족들이 돌아다니는 도서관이라 부른다. 버핏은 절제된 생활을 하면서도 막대한 재산의 대부분을 빌게이츠 재단에 기부했다. 자신보다 빌게이츠가 더 잘할 것이란 생각에서라고 한다. 돈은 쫓아가면 달아나고,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할 때, 자신에게 온다. 개그맨 출신 작가인 고명환도 자신의 경험담에서, 그렇게 벌려고 노력했던 돈은 달아나버리고 고전을 통한 깨달음에서 남에게 주려고 하니까 돈이 내게로 오더라고 말한다. 마크 저커버그, 오프라 윈프리, 조디포스터, 조지 루카스, 토머스 에디슨, 버락 오바마, 세종대왕, 김대중 전 대통령, 넬슨 만델라, 정약용, 공자, 소크라테스...

나폴레옹, 링컨, 체 게바라는 전쟁 중에도 책을 읽었다. 현장에서 전쟁을 수행하는 체 게바라의 배낭 속에는 고전이 가득 들어있었다. 김대중과 넬슨 만델라는 데칼코마니 같은 인생을 살았다. 동포들을 위해 헌신하다 종신형을 받고 감옥에서 독서를 했고, 믿음과 정성으로 희망을 잃지 않았고, 결국엔 민족 지도자인 대통령이 되었으며, 평화를 위한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나는 이들이 세상에 다시 태어난 사람들이란 생각이 든다.

예전에 신문에서 중국집 배달부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70만 원 월급 중에서 매달 10만 원씩을 몇 명의 어린이들에게 후원해 왔다는 이야기와 함께. 어떤 계기가 있다고 생각했다. 적은 월급에서 지치지 않는 정성으로 그렇게 후원해 왔다는 것은 세상을 내 몸과 같이 생각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것이다.


다음은 중국 유학자 정호(정명도)의 글이다.


“의학서에서 수족이 마비되는 것을 불인(不仁)이라고 했다. 이것이 인이라는 이름을 가장 잘 특징적으로 드러낸 것 같다. 인자는 천지만물을 한 몸으로 여기니 자기 몸이 아닌 것이 하나도 없다. 천지만물을 자기 몸으로 인식할 수 있다면 어디엔들 이르지 못하겠는가? 천지만물과 하나가 아니라면 천지만물은 자신과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 된다. 그것은 마치 마비된 수족이 자신의 몸의 일부이면서 자신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여겨지는 것과 같다.”


주희·여조겸 공저, 이범한 역, 《근사록》,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5.


불인(不仁)은 어질지 못하다는 것인데, 남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랑이란 남과 나를 하나로 보고 내 몸과 같이 여기는 것이다. 보통은 손해 보는 장사라 생각하는데, 사실은 세상의 주인인 것이다. 장자가 말하는 '천하를 천하에 감춘다.'는 뜻이다. 세상이 다 내 것이므로 훔쳐갈 곳이 없는 것이다.


얼마 전에 브런치 남지만 작가의 글 '김우수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거기서 그 계기를 찾을 수 있었다.


"쉰네 해의 삶 동안, 그는 세상으로부터 넉넉함을 거의 받아보지 못했습니다.

따뜻한 부모의 품, 기댈 만한 친척, 풍족한 배움의 기회...

이 모든 것이 그에게는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그의 삶은 오직 '홀로'와 '부족함'이라는 단어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그의 직업은 중국집 배달원.

오토바이 위에 삶의 무게를 싣고 짜장면과 우동을 배달하며 받는 월급은 고작 70만 원이 전부였습니다.

하루의 고단함을 씻어낼 공간이라곤, 몸 하나 뉘면 꽉 차는 좁고 허름한 쪽방이 전부였습니다.

만약 한 사람의 인생을 계절에 비유한다면, 그의 삶은 주저 없이 '혹독한 겨울'이라 불릴 만했습니다.

그런 그가 2011년 9월 23일,

늘 다니던 그 길 위에서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평범한 배달원의 죽음이었건만, 그의 마지막 길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대통령 부부와 정계 거물, 그리고 수많은 이들이 그의 빈소를 찾아 머리 숙였으니 말입니다.

대체 이토록 쓸쓸했던 남자의 삶이 왜 온 국민의 관심을 끌었을까요?

이유는 단 하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가장 추운 계절 속에서도, 꾸준히 나눔의 씨앗을 뿌려왔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김우수는 사실 방황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미혼모의 아들로 고아원에서 자라 12세에 뛰쳐나왔고, 소년원을 몇 차례 다녀왔으며, 2005년에는 방화 미수

로 징역 1년 6개월을 살기도 했습니다.

그의 인생이 극적으로 바뀐 것은 감옥에서였습니다.

우연히 어린이재단 잡지 '사과나무'를 읽고, 인생을 제대로 다시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원래 하루 두 갑의 담배와 소주 두 병을 마시던 그는, 아이들을 돕겠다는 결심과 함께 술과 담배를 모두 끊었

습니다.

그는 2006년부터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매달 10만 원을 어린이재단을 통해 어려

운 아이들에게 보냈습니다.

형편이 어려워진 상황에서도, 그는 후원하던 5명의 아이들 중 3명에게는 지속적으로 나눔을 이어갔습니다.

그의 나눔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가입한 4천만 원짜리 사망 보험 수익자를 어려운 어린이를 돕는 데 써달라며 어린이재단으로 지

정했습니다.

자신의 삶에 남은 마지막 몫까지, 자신보다 더 외롭고 추운 아이들에게 온전히 다 남겨주고 떠난 것입니다."


출처 https://brunch.co.kr/@swnjm12/29



그는 어린이재단 잡지 '사과나무'를 읽고 '세상이 곧 나이다'라는 사랑의 가치를 깨달은 듯하다.

그렇다. 그는 다시 태어난 것이다.


함석헌은 말한다.


"갈대의 운명은 빳빳이 서는 것으로만 다 되지 않는다. 종당에 꺾이는 날이 오고야 만다. 갈대는 갈대기 때문에 꺾이고야 만다. 아무리 생각을 깊이 하고 현실을 초월했다 하더라도 사람인 담에는 죽는 날이 오고야 만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하나? 한 번 변화해야만 한다. 꺾인 갈대는 갈대로서는 실패인 듯하지만 그것은 모든 유(有)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그러므로 갈대의 값을 그 대나 잎에서 구하려 해도 소용없다. 도리어 꺾인 것을 이용하여 한 개 피리를 만듦으로 참말 갈대의 값을 잘 드러냈다 할 수 있다. 그것이 변화다. 그것은 난 대로 있는 것만으로는 아니 되는 일이다. 물질의 정신화다. 물질은 물질로 영원히 있을 것 아니요 정신화함에 의해서, 그 내용을 버리고 뜻을 드러냄에 의해서 참이 될 수 있다. 인생은 인생으로서는 결국 실패일 수밖에 없고, 그 실패를 통해 한번 근본적인 변화를 함에 의해서만 구원이 될 수 있다. 갈대가 피리가 되려면 토막으로 잘려야 하고 속에 깉는 것 없이 뚫려야 한다. 그래야만 그리로 하늘바람이 거침없이 나갈 수 있고 그러면 땅에 선 갈대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거룩한 하늘음악을 발할 수가 있다. 산 갈대로는 아무리 애를 써도 하늘소리를 낼 수가 없다. 비록 하늘바람이 내려와 흔들어도 그것은 어지러움의 소리요 미침의 부르짖음이지, 처량한 음악일 수가 없다. 하늘소리를 내려면 반드시 꺾여야 하고 뚫려야 한다. 죽은 후에야 된단 말이다.

인생도 그렇고 사상도 그렇다. 인생이 인생인 한은 아무리 애를 써도 그것은 인간의 소리, 인간의 생각이지 하늘 진리가 아니다. 인생으로서는 파산을 하는 때가 와야, 나를 완전히 버리는 때가 와야 비로소 참의 소리를 낼 수가 있다. 그때는 내가 하는 것 아니다. 참 자체가 하는 것이다. 사람은 생각하는 것이다. 생각하는 데 사람의 사람됨이 있다. 그러나 내가 있어 생각하는 한 아무래도 그것은 나요, 내 생각이다. 참이 아니다. 죽음을 못 면한다. 누구는 제법 참을 말하기나 하는 듯이 “내가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있다” 하지만 생각하는 것은 내가 아니다. 내가 있어서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이가 있어서 그 생각이 나를 만든 것이다. 눈이 있어 햇빛을 보는 것이 아니라 빛이 있으므로 눈이 생긴 것이다. 눈 말고 빛이 있는 것도 아니요 빛 말고 눈이 있는 것도 아니다. 모든 사상은 절대의 사상인 정신에서 나온다."


함석헌 저,《함석헌 저작집 세트》, 한길사, 2009.




이제는 나의 다시 태어난 이야기를 하기로 한다.

글 쓰는 사람들은 사생활도 공유? 해야만 하는 불편하고도 부끄러운 숙명을 짊어져야만 한다.

한마디로 낯짝이 두꺼워야...

그러하므로 나의 사생활도 공개한다.


오랫동안 직업이라고는 국어 강사 하나만 해왔고, 이것이 나의 직업이고 운명이라 생각했다.

그러다 결혼을 했고, 국어 강의를 하면서 국, 영, 수 단과 입시학원을 운영하다가 운영난으로 학원을 접고, 집에서 육아를 전담하게 되었다. 그 당시 동시다발적으로 학원운영에 여러 가지 악재가 겹쳐서 도저히 학원 운영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경우가 다 있나 싶을 정도로 하늘은 또 운명은 내게 가혹했다. 이 정도라면 하늘의 천명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과감히 학원을 접었을 때, 잠이 오지 않았다. 이러다가 굶어 죽는 것은 아닐까. 전업주부였던 와이프가 간호사로 다시 병원에 나가기 시작했고, 나는 전업주부가 되었다. 육아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아이가 셋이다. 밤에 일어나 분유를 먹일 때면 지루해서, 한 손은 분유통을 쥐고, 옆탁자에는 책을 놓고 한 장 한 장 넘겼다. 분유먹일 때만 한 장 한 장 읽었던 그 두꺼운 러셀의 서양철학사를 끝 페이지까지 다 넘긴 것은 비현실적인 일이다. 나름 흥미롭게 읽었는데 지금은 앞부분의 스파르타 부분 빼고는 아무것도 기억에 없다. 양쪽 화장실 바닥과 베란다에는 책이 항상 서너 권씩 쌓여있었는데, 그 당시에는 책 말고는 다른 관심이 없었다. 허기져 무엇을 먹듯이 그렇게 책을 읽었다. 그동안 하지 않았던 독서를 하게 된 계기로 인해 나의 독서 취향도 많이 변해 있었다. 처음에는 만화책에서 소설로, 소설에서 시로, 시에서 인문 철학으로 변해갔다. 도서관에 가면 문학 서가에만 붙어있던 나는 이제 철학 서가에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책을 몇 년 정도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그때 학원을 접게 만든 것은 하늘의 뜻이었음을. 강의가 내 밥벌이였을 때는 아이들이 싫었다. 목적이 밥벌이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무 보람도 없고 재미도 없는 일을 하면서 힘겹게 나는 살아왔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아이들이 보고 싶어 졌다.

이것은 내게는 혁명과도 같은 일이었다. 왜일까? 왜 나는 싫어하던 아이들을 다시 만나고 싶은 것일까?

이유는 '인문학과 함께하는 청소년의 행복 찾기'라는 나의 책 서문으로 대신한다.



청소년들에게


내 이야기를 잠깐 해보자. 책을 조금 읽다 보니 인간에 대해 연민과 결핍을 느꼈다. 특히 청소년들에 대한 연민이 컸다. 그래서 그들을 찾아다녔다. 독서를 통해 내가 느꼈던 그 감동과 그 용기를 아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었다. 경쟁과 불안 속에 창백하게 시들어 가고 있는 청춘의 꽃들. 내게는 그렇게 보였다. 하지만 그들을 만나면 언제나 밝고 순수했고, 놀랄 만한 사고의 유연성을 보였다.

내가 아이들과 함께 하고자 한 것은 인문학 강의였으나, 그나마 아이들과 접할 수 있는 기회는 파트타임 진로 진학 강의나 짧은 기간제 교사가 전부였다. 나는 하루살이의 정열을 가지고 아이들을 만나야 했다. 하지만 50분 중 20분 정도의 인문학 강의 시간도 내겐 큰 보람이고 행복이었다. 나는 정말 아이들을 만나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나는 단 하루, 혹은 단 한 시간의 짧은 인연으로 만나는 아이들에게 하는 인사가 있다. 공자의 말을 빌려서 인사를 한다.

공자는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라고 했다.

“나는 여러분을 만났으니 오늘 저녁에 죽어도 좋다. 목숨이 가벼워서가 아니라 여러분과의 만남이 간절했기 때문이다”라고 인사하면 아이들은 안다.

진심은 통하는 법이다.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고마워한다. 그런 아이가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난 어디든 간다. 나는 이런 아이들이 내 재산이다. 내 촛불을 나누고 그 촛불을 또 나누게 되기를 바란다. 세상이 밝아지기를 바란다. 아이들이 행복하기를 바란다.

가끔 나가서 아이들과 순수하게 교감하고 그 시간을 즐기고 있는 나를 보면, 나의 삶의 보람은 무엇인지 진정으로 아이들에게 필요한 교육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아이들 스스로 세상에 당당히 설 수 있는 용기와 지혜 절제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불안과 경쟁에 지친 아이들이 다양한 사고와 용기를 지닐 수 있도록 지도하는 데 인문학적 독서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인간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바탕이 된다면 불안하고 삭막한 사회를 즐겁게 살아갈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내 가난한 노래의 씨에 물을 대어 주었던 그 열정과 반짝이는 아름다운 눈망울들을 잊지 못한다. 아직 우리 아이들에게 내가 무엇인가를 전해 줄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기에 이 글을 쓴다.

나는 마흔이 넘어서야 내가 좋아하는 일과 보람을 찾았고, 나에게 일자리를 준 아이들에게 감사한다.





맹자가 말하였다. “순임금은 밭 가운데에서 등용되었고, 부열은 토목 공사하는 중에서 등용되었으며, 교격은 생선과 소금을 파는 장사꾼 가운데서 등용되었고, 관이오는 감옥을 지키는 관리에게 잡혀있는 중에 등용되었으며, 손숙오는 바닷가에서 등용되었고, 백리해는 저잣거리에서 등용되었다.

그러니 하늘이 그 사람에게 큰 임무를 내려주려 할 적에는 반드시 먼저 그의 마음과 뜻을 괴롭히고, 그의 육체를 고달프게 하며, 그의 몸을 굶주리게 하고, 그 자신을 궁핍하게 하며, 그의 하는 일이 그가 하려는 일과 어긋나게 한다. 그것은 그의 마음을 격동시키고 그의 성격을 참을성 있도록 해주어, 그가 할 수 없었던 일도 더 많이 할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해서이다. 사람들은 대개 잘못을 저지른 후에야 그것을 고치게 되며, 마음에 어려움을 느끼고 생각을 여러 가지로 한 뒤에야 분발하여, 그것이 안색에 드러나고 목소리에 섞여 나온 뒤에야 깨닫게 되는 것이다. 나라 안에는 법도를 지키는 신하와 일을 도와주는 신하가 없고, 나라 밖에는 적대하는 나라나 걱정거리가 없다면, 그 나라는 일반적으로 멸망한다. 그러니 걱정과 어려움을 겪음으로써 살게 되고, 편안하고 즐겁게 지냄으로써 죽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맹자)


김학주 역주, 《맹자》, 서울대학교출판부, 2013.


나는 감히 말할 수 있다. 하늘은 나에게 큰 임무를 주시려고 내 삶의 방향을 바꾸었다고.

그 임무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다. 똑같이 아이들을 가르쳤지만 학원에서는 왜 불행했고, 지금은 왜 행복한가. 돈은 학원에서 훨씬 많이 벌었다. 행복은 돈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맹자가 말한 군자삼락(君子三樂)중 교육에 관한 내용이 있다.


得天下英才 而敎育之 三樂也

천하의 영재를 얻어 가르치는 것, 이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다.


여기서 천하의 영재는 수능 만점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공부를 아무리 못해도 영재라 할 수 있다. 모두가 다 영재가 될 수도 있다. 능동적으로 진리를 간절히 원하고 탐구하려는 자세를 가진 사람, 세상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가진 사람, 진리를 알고 난 후에는 그에 대한 정성을 다하는 사람 등을 영재라 한다. 공자는 썩은 나무로는 조각을 할 수 없다고 하였다.

내가 생각할 때 천하의 영재를 얻어 가르치는 것만큼 행복한 것은 없다. 내가 가장 행복한 순간은 아이들과 함께 교실에 있을 때이다. 맹자가 얼마나 행복했던 사람인지를 알 것 같다. 반대로 이 즐거움을 모른다면 교육만큼 힘들고 괴로운 것도 없다. 오쇼라는 인도 철학자는 교사를 저주받은 직업이라고까지 했다. 반대 상황이라면 격하게 공감하는 말이다. 아이들은 돈벌이의 대상이 아니다.


함석헌 선생은 말한다.


상한 갈대도 꺾지 않고 꺼져가는 등잔불도 끄지 않는 마음, 그 마음이 곧 가르치는 마음이다. 그것이 곧 어버이요 스승이요 임금이요 하나님이다. 그 마음을 어디서 구하나? 젊은 가슴에서 구하는 수밖에 없다. 능히 죽이는 자가 아니고는 능히 살릴 수 없다. 젊은이는 능히 죽이는 이다. 혁명을 하는 것이 젊은이다. 낡은 것을 사정없이 베어버리는 것이 젊은이다. 그러므로 살리는 것도 젊은이다. 혁명을 하는 자가 교육을 할 수 있다. 혁명하자는 마음이 가르치잔 마음이다. 썩은 살 잘라버릴 용기와 성의를 가지지 못한 자는 자격이 없는 자요, 생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자다. 그야말로 죽은 자요, 또 죽이는 자다.

혁명은 곧 교육이다. 그러나 혁명은 잘못된 교육이요, 교육은 옳게 된 혁명이다. 혁명가는 살리려다가 죽이는 자나, 교육자는 죽여 살리는 자다. 마땅히 죽일 것을 참 죽이기 위해 살려, 그 죽을 죽음을 내가 죽어 너와 나를 하나로 참 살려내는 것이 교육자다.

살신성인(殺身成仁)이다. 살신 아니 하고는, 내 몸을 희생하지 않고는 인(仁)은 없다. 교육은 없다.


「청년교사에게 말한다」


함석헌 저,《함석헌 저작집 세트》(제3권 『새 나라 꿈틀거림』), 한길사,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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