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세계> 감상문 최종
드라마 <부부의 세계> 14화, 아빠의 손이 준영이의 뺨을 거칠게 갈기는 순간 나는 숨을 멈췄다. 화면 속 준영이가 짓던 그 멍청하고도 서글픈 표정. 어안이 벙벙해진 채 초점을 잃은 그 눈빛을 나는 안다. 그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통증이 아니라, 나를 지켜줄 최후의 우주가 무너져 내릴 때 인간이 짓는 표정이다.
사람들은 준영이의 도벽을 보며 손가락질했다. 사춘기 소년의 엇나간 반항이라 치부했다. 하지만 나는 안다. 준영이는 물건이 탐나서 훔친 것이 아니다. 부모의 이혼과 증오라는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아이는 철저히 소외된다. 세상에서 가장 나를 사랑해야 할 두 사람이 서로를 부수느라 나를 잊어버렸을 때, 아이는 우주 미아가 된 듯한 서늘한 감각을 느낀다. 준영이는 그 뻥 뚫린 마음의 구멍을 남의 물건으로라도 채워, 자신이 아직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싶었던 처절한 비명이었다.
나 역시 그 소외감의 공기를 마시며 자랐다. 하지만 나는 준영이처럼 밖으로 어긋나는 길을 택하지 못했다. 준영이가 세상을 향해 "나를 보라"고 물건을 훔치며 사고를 쳤다면, 나는 반대로 "나는 여기 없는 듯 완벽할 테니 나를 걱정하지 마라"며 스스로를 옥죄었다. 준영이에게 도벽이 있었다면, 내게는 지독한 완벽주의와 강박증이 있었다.
어린 나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내가 100점짜리 아이가 되어야만, 내가 한 치의 실수도 없이 완벽해야만 이 위태로운 가정의 평화가 겨우 유지될 것이라고. 준영이가 도둑질로 자신의 존재감을 증명했다면, 나는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나는 아무런 짐이 되지 않는 완벽한 아이예요"라고 외치며 살아온 셈이다. 표현 방식은 정반대였지만, 그 기저에 깔린 공포는 같았다. '나를 사랑해줘야 할 어른들이 나를 놓아버렸다'는 그 끔찍한 소외감 말이다.
성인이 된 지금도 내 안의 '100점짜리 책임감'은 불쑥불쑥 나를 찾아와 숨통을 조인다. 마케팅 부서에서 업무 분장표 하나를 채울 때조차 나는 "내가 완벽하게 해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부채감에 시달린다. 실수하면 버려질 것 같고, 1등이 아니면 내 자리가 없어질 것 같은 그 오래된 소외감의 잔상이 여전히 나를 달리게 만든다.
지선우가 겪은 지옥 같은 시간들 속에서 준영이가 가출을 선택한 건, 어쩌면 부모라는 거대한 집착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독립 선언이었을지도 모른다. 나 역시 이제는 지선우의 마지막 모습처럼, 내 인생을 꽉 움켜쥐던 손의 힘을 조금씩 빼는 법을 배우고 있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을 인정하고, 100점이 아니어도 나는 여전히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과정. 그것은 드라마 속 열린 결말만큼이나 모호하고 어려운 숙제다.
드라마는 끝났지만, 마지막 현장 스틸컷 속에서 해맑게 웃고 있는 배우들의 얼굴이 자꾸 눈에 밟힌다. 드라마 안에서는 한 번도 허락되지 않았던 그 평범한 웃음. 그 웃음이 비단 화면 속 평행세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길 바란다.
밖으로 터져 나와 도둑질을 했던 준영이든, 안으로 곪아 완벽주의가 된 나든, 우리는 모두 그 시절의 소외감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권리가 있다. 이제는 집착을 버리고 흐르는 대로 두어도 괜찮다고, 그 시절의 아픔은 결코 우리의 잘못이 아니었다고 나 자신에게 말을 건넨다. 움켜쥐지 않아도, 100점이 아니어도 우리는 충분히 존재할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