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할머니는 대학병원에서 퇴원을 했고, 우린 할머니를 모시고 이젠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올해 91세의 할머니는 최근 들어 갑작스러운 응급실 행 이후, 온몸의 기능이 닳아버릴 대로 닳아버려서 전적으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더욱이 시쳇말로 '기억력 짱!'이셨던, 치매라는 단어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던 할머니가 세월 앞에서 속수무책이다. 그간 15년 이상을 모시며 친정 엄마의 갖은 희생들이 있었고, 현재까지도 일을 하시는 육십도 훌쩍 넘은 내 부모님이 앞으로도 희생을 짊어지기엔 한계가 왔다. 더는 안될 것 같아 연세 드신 부모님을 대신해 일사천리로 장기요양등급을 신청하고, 요양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요양원 입소 전 날, 나의 폰을 열어 구글포토로 할머니가 찍힌 사진들을 하나씩 들여다보았다. 사진을 보고 있으니 그간 할머니와 이런저런 추억도 많이 만들었다. 내가 결혼한 후에도 조합은 희한하지만 나의 시어머니와 나의 할머니를 함께 모시고 남편과 종종 여행도 다녔다. 남편과 나는 아직 즐길 날이 많지만 시대를 잘못 타고난 두 분은 그렇지 못하다는 생각의 합이 잘 맞아서, 조금이라도 가볼 만한 곳들을 경험해 드리려고 노력했다. "할머니! 오래오래 사세요."라는 멘트와 함께. 나의 남편이 할머니에게 동백꽃을 꺾어 귀 옆에 꽃아 주는 사진, 제주도 바다 유람선 위에서 할머니가 한껏 웃는 모습으로 찍은 사진에서 잠시 멈추었다.
'할머니는 웃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할머니의 젊은 시절, 인생의 로망은 무엇이었을까?'
할머니의 웃는 사진을 보다가 또다시 한껏 눈물을 떨궈야 했다.
할머니를 모시고 요양원으로 향하던 길.
할머니의 장수를 기원하며 여행지에서 사진 찍어드리던 그 감정과는 달리 '차라리 이럴 바에야...'라는 나의 내면 저 밑바닥의 감정이 송곳처럼 불쑥 올라오면서 나 스스로를 마구 괴롭혀야 했다. 마냥 할머니의 안녕을 바랄 수만도 없다며 송곳 같은 감정이 순간 불쑥 올라와버린 나를 나 스스로를 합리화하기도 했다.
이유는 단 하나. 내부모가 연로해져 간다. 내겐 할머니도 중요하지만 그간 너무나도 평생을 고생하며 살았던 (과거형의 문장을 쓰기엔 현재도 그러한) 부모님은 사실 더 중요한 순위이기에... 복잡한 감정이 마구잡이로 올라오며 나 스스로를 채찍하고 다독이고 괴롭 하며 정신적으로 힘겹게 부모님과 할머니의 입소를 마쳤다. 한참을 이런저런 잡념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운전 중에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빠. 할머니 병원에서 퇴원하셨어."
"아... 그래?"
"근데... 오빠, 이젠 할머니 집으로 못 돌아가.
오빠 신경 쓰일까 봐 말 안 했었는데 최근에 나 계속 요양원을 좀 알아봤었어. 할머니 요양원 모셔다 드리고 엄마, 아빠까지 가신 후에 지금 전화하는 거야."
남편은 나의 그 짧은 몇 마디에 벌써 나의 감정을 다 읽어버렸다.
"(나의 이름을 부르며) 우리 OO이 정말 힘들었겠네."
"오빠, 할머니가 아빠도 나도 못 알아보거든? 근데... 간간히 엄마만 알아봐. 엄마가 내가 누구냐고 물으니 'OO이 엄마지.' 그래."
차의 스피커폰으로 그에게 내용을 전하면서 바로 터질듯한 감정을 애써 누르고 또 눌렀으나, 내가 터지기 전에 이미 터져버린 남편으로 인해 결국은 같이 흐느끼는 통화가 되어버렸다. 그날은 참으로 무겁고도 힘들었다. 집 주차장에 막 도착했을 무렵 요양원 직원으로부터 메세지가 왔다. 할머니가 식사하시는 모습이라며 병상 침대 테이블에서 직원의 도움을 받아 식사를 하시는 모습의 사진이었다. 직원분의 도움으로 식사하는 모습에 안도하면서도, '식사(食事)'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내겐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도란도란 모여 음식을 먹는 모습이 떠올라 사진을 보다가 불현듯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온종일 할머니 퇴원과 요양원 입소로 마음이 무겁고 입맛도 없어 배도 곯았다. 그럼에도 가족들과 먹을 저녁식사 준비를 하고, 한껏 김을 내어 보글보글한 찌개를 끓이는 것으로 나의 우울한 감정을 지그시 눌렀다. 하나둘씩 모여 식탁에 둘러앉았다. 온 가족이 모여 도란도란 모여 주거니 받거니 하는 대화를 하며 먹는 별거 아닌 식사자리. 이 순간, 이 자체가 새삼스럽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식탁 앞에서 아이들이 투닥투닥하는 소리까지도 다르게 들리던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