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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반찬이 필요 없다.

집에서 밥을 먹는 일이 점점 줄어든다.

by 박언서

집에서 저녁 먹는 횟수가 줄었다.

아침은 간편식으로 먹고 점심은 사무실에서 직원들과 식당에서 먹고 저녁은 집에서 먹지만 외부에서 먹는 경우가 많다. 또한 아내는 저녁도 간편식으로 먹으려 하기 때문에 식탁에 둘이 앉아있지만 아내는 밥에 관심이 없고 나는 밥을 먹는다. 그러다 보니 굳이 이것저것 밑반찬을 만들어 놔야 냉장고에서 대기하다 폐기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뚝딱뚝딱 잘한다.

나는 아들 삼 형제 중 둘째로 자라서 어려서부터 잔심부름이나 이런 것들은 독차지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머님이 김치 담그실 때 마늘도 까고 믹서에 양념도 갈고 하는 일을 내가 도와드렸다. 그래서 그런지 음식을 만드는 일에 대한 거부감이나 이런 게 전혀 없고 결혼을 하고 처갓집에 김장 담글 때도 직접 농사지은 배추를 절이고 씻고 속 넣는 일을 지금까지 장모님을 도와드리며 함께 하고 있다. 오히려 장모님은 아내 보다 나를 찾는다.

냄비가 점점 작아진다.

아침과 저녁을 집에서 먹을 때는 밑반찬도 있어야 하고 찌개도 큰 냄비에 끓여야 했다. 그런데 나이을 먹을수록 비만이나 건강을 이유로 식단을 조절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에 굳이 음식을 많이 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러니 저녁 준비는 작은 뚝배기에 된장이나 김치찌개를 끓이면 되고 반찬은 김장김치와 오이나 상추 등 바로바로 무쳐서 먹을 수 있는 것이면 충분하다.

장모님이 밑반찬을 해서 보낸다.

가까이에 장모님이 계셔서 종종 밑반찬을 만들어서 보내주신다. 멸치 볶음이나 머위대도 무침, 장아찌, 나물 등 작은 용기에 담아 주면 아내가 가져온다. 그런데 이마저도 냉장고만 차지할 뿐 먹을 기회가 별로 없다. 또한 작은 아이 내외가 가까이 살아서 아내가 밑반찬을 만들어 준다고 해도 역시 정중하게 거절한다.

시대가 변하고 있다.

밥이 주식인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다. 꼭 밥을 먹어야 포만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밥이 아니어도 먹을 것이 다양하기 때문에 굳이 밥을 먹으려 하지 않는다. 젊은 사람들은 간편해서 좋고 어른들은 건강을 챙겨야 하니 탄수화물인 밥을 줄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땀 흘려 농사를 지어도 쌀 소비량은 점점 감소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된 것이다.

곳간에서 인심이 난다?

이제 곳간이 아니라 지갑에서 인심이 나는 세상이다. 밥이 주식일 때에는 맞는 말이었지만 이미 옛날이 되어버렸다. 식단의 서구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양보다는 질을 선택하게 되고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간편하게 먹어야 시간이 절약된다. 결국 곳간보다는 지갑을 자주 열어 베풀어야 인심이 나는 세상인 것이다.

요즘이 야채의 계절이다.

지금이 제철 야채가 한 창 나올 시기다. 오이, 가지, 고추, 상추, 토마토 등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것들이다. 굳이 반찬으로 만들지 않아도 무치거나 그냥 먹어도 되는 야채 종류가 다양한 계절이기 때문에 건강도 챙기고 시간도 절약할 수 있다. 물론 고기도 먹어가며 균형 잡힌 식단이 필요하겠지만 집에서 근사하게 차려놓고 먹을 기회는 없어졌다.

그런데도 냉장고는 빈 공간이 없다.

매일 냉장고를 열어 보면 빈 공간이 별로 없고 작은 용기들이 가득하다. 무엇이 들어 있는지 열어 보면 아까워서 버리지 못하고 다시 제자리에 넣게 된다. 우리 속담에 비워야 채울 수 있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비우면 무엇이라도 넣게 마련이다. 다시 말하면 비어 있으면 무엇이라도 넣을 것이 생긴다는 것이다. 아마 각 가정에 냉장고가 한 대로 시작해서 두 세대로 늘어났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냉장고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까?

물론 우리 집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맛있는 반찬도 먹지 않으면 버릴 수밖에 없다. 아깝다는 생각에 무작정 보관하다 보면 결국 음식쓰레기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에는 다양한 반찬을 소량으로 판매하는 반찬 가게를 찾는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다.

아무튼 우리 집 냉장고에는 먹을만한 반찬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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