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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다는 장마가 또다시.

장마는 지나갔다는데 장마철 같은 비가 내린다.

by 박언서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엊그제 장마가 끝났다는데 또다시 장마란다. 도대체 장마의 정의가 무엇이란 말인가! 한 해에 장마가 끝나고 다시 오는 것인지 이렇게 오락가락하면 혼란만 가중시킬 뿐 정말 이해할 수 없다. 그렇잖아도 들깨 모종을 심어야 하는데 비가 오지 않아 차일피일하던 중에 비가 내려 반갑기는 한데 일손이 없다. 이렇게 비가 올 때 심으면 물을 줄 필요도 없고 생존율이 좋을 텐데 평일이라 어렵고 천상 주말에 심을 수밖에 없다.

농부는 하늘이 내려주는 대로 살아야 한다.

날씨는 예보할 수 있지만 원하는 대로 바꿀 수는 없다. 농부는 주간 예보를 참고할 뿐 마음대로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물론 비가 내리지 않으면 지하수를 사용하면 되고 비가 많이 내리면 시설하우스 농사를 지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하늘을 바라보고 짓는 노지 농사는 날씨에 따라 풍작과 흉작으로 나누어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이런 우스갯소리도 있다.

인디언 추장이 기우제를 지내면 비가 안 오는 경우가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비가 내릴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기 때문이란다.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는 비는 내리게 마련이다. 다만 농민이 농사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적기에 내리지 않아서 그럴 뿐 당장 비가 내리지 않는다고 해도 며칠 사이에 농사를 망치지는 않는다. 또한 농작물은 극심한 가뭄이나 장마에도 일정기간 동안은 견딜 수 있도록 생명력이 강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엊그제 심을걸 그랬다.

이렇게 차분하고 조용하게 비가 내릴 줄 알았다면 들깨를 미리 심었을 텐데 이미 지나간 일이다. 들깨는 너무 어린 모종을 심어 놓고 비가 세게 내리면 뿌리를 내리기 어렵다. 그래서 심고 난 뒤에 비가 적당하게 내리면 아주 좋다. 하지만 하늘이 농부의 마음을 알아서 맞춰주는 일은 거의 없다. 따라서 농부가 미리 날씨를 예측하며 파종이나 모종의 적기를 판단해서 할 일이다.

그나마 다행이다.

이렇게라도 주중에 비가 내리니 천만다행이다. 만약 며칠 더 비가 내리지 않았다면 양동이나 조리개를 이용해 물을 주어가며 심었어야 한다. 만약 비가 그친다고 해도 밭에 충분한 수분이 공급되었기 때문에 들깨는 그냥 심어도 뿌리를 내릴 확률이 높다.

지금 갈등이다.

사무실 일을 끝내고 이 비를 맞아가며 들깨를 심을까 아니면 비가 그치면 주말에 심을까? 만약 지금 비를 맞아가며 심는다면 옷이 축축해져 힘은 들겠지만 뿌리 활착률은 높일 수 있고 주말에 심는다면 다시 물을 주고 심어야 할 수도 있다. 근데 지금은 오전보다 비가 더 많이 내려 심을 수 없을 것 같아 하는 수 없이 주말까지 미루어야겠다.

이래서 농사는 하늘의 뜻에 따라야 하는 것이다.

그나저나 비가 적당히 내렸으면 하는데 안전 안내문자에 의하면 많은 비가 예상되다니 걱정이다. 들깨는 조금 늦게 심거나 못 심어도 괜찮지만 비로 인한 피해가 없길 바라는 마음이다. 모두 외근을 나가고 혼자 사무실을 지키며 바라본 밖의 풍경은 방울방울 빗방울이 운치가 있다. 오늘 저녁은 아내에게 김치부침개 부쳐달라고 해서 막걸리 한 잔 했으면 좋겠다. 지금은 나에게는 비를 거스를 수 있는 능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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