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사이 물바다가 되었다.
밤사이 비가 엄청나게 내렸다.
이렇게 많이 내리는 비는 몇 년 만에 겪어보는 장마 아닌 장맛비다. 새벽부터 농사가 걱정되어 05:10경 집을 나섰는데 도로 곳곳이 흑탕물로 아수라장이다. 반사경이 토사에 밀려 쓰러지고 도로가 어디까지인지 모를 정도로 물바다가 되었다. 얼나마 오는지 자동차 와이퍼를 최고 속도로 놓아도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산 쪽으로 길이 있는 경사면은 어김없이 도로로 개울이 생길 정도로 물이 넘친다.
다행히 농사는 이상이 없다.
논은 물이 넘치고 있지만 피해는 없어 논둑을 터 놓고 밭은 물길을 내어서 배수를 시키고 있다. 그렇잖아도 어제저녁에 양수기를 철수시켜 논둑으로 끄집어내었는데 비가 더 내리면 침수될 것 같아 아예 높은 곳으로 옮겨 놓으니 안심이 된다. 앞으로 얼마나 더 내릴지 모르겠지만 바람을 동반해서 내리게 되면 고추나 참깨 등 키가 크게 자라는 작물은 피해가 예상되어 걱정이다.
우비를 입었지만 옷이 다 졌었다.
우비에 장화를 신고 모자까지 썼지만 비바람에 버티지 못하고 물이 스며들어 옷이 축축하다. 우비는 방수가 되지만 공기가 잘 통하지 않아 눅눅하고 땀이 찬다. 그래도 비를 직접 맞으면 체온이 내려가기 때문에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우비를 꼭 입어야 한다.
비를 그칠 줄 모르고 줄기차게 내리고 있다.
한바탕 비설거지를 하고 나니 으슬으슬하다. 재난 안전문자는 계속 울려대지만 문자를 확인할 여유도 없을 뿐만 아니라 주머니에서 전화기 꺼낼 엄두가 나지 않는다. 또한 도로를 가로지르는 조그만 교량들은 물을 이기지 못하고 범람하고 있다.
일기예보를 확인하니 뇌우가 하루 종일이다.
이렇게 며칠만 내리면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닐 텐데 토요일까지 비예보가 있어 걱정이다. 지금이 07:56인데 안전 안내문자와 실시간 재난 상황 문자가 어젯밤부터 끊이지 않고 울려대는 바람에 잠도 설쳤다. 동네 조카가 농사짓는 밭에는 커다란 나무가 쓰러져 있고 이동식 간이 화장실은 물이 범람해 기울어져 있다. 안타까운 마음에 사진은 찍어 보내주고 전화를 했더니 사무실에서 피해신고 접수 때문에 올 수가 없다고 한다.
공무원은 나 보다 주민이 우선이다.
밤사이 많은 비가 예상된다는 예보가 있어 재난대책 비상근무가 발령되면 어쩔 수 없이 근무에 임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는 혼자서 농사를 짓는 공무원은 내 논이 범람하고 둑이 무너져도 근무지를 떠날 수 없다. 물론 상황에 따라 조금의 융통성은 있겠지만 우선순위는 주민이 먼저인 것이다.
그 사이 거선 빗줄기는 조금 약해졌다.
그래도 천둥 번개는 여전히 요란하고 비는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현장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을 사무실에 대기시킨다 해도 심난할 것 같아 자택 대기를 결정했다. 현장 직원들은 보냈지만 나는 사무실에서 일기예보를 주시해 가며 만일에 사태를 대비해 대기 중이다. 금강홍수통제소에서 홍수 정보 심각으로 하천 범람이 우려된다는 문자가 수도 없이 오고 있다.
큰 피해가 없어야 할 텐데 걱정이다.
밤사이 피해가 얼마나 발생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날이 밝았으니 차근차근 수습하며 대비해야 한다. 재난은 개인의 피해와 복구에 따른 후유증이 심각하지만 국가적 손실 또한 엄청나다. 예상치 못한 재난이라도 서로 마음을 함께하면 일상으로 회복하는데 어려움을 덜 수 있다. 아무튼 큰 피해 없이 무사히 잘 지나가길 바라는 마음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