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수 가꾼 야채가 있어 식탁에 행복이 가득합니다.
오이, 고추, 가지, 상추, 부추 등 여름 채소가 제철이다.
퇴근길에 들러 밭을 한 바퀴 휙 돌아보고 다 자란 것이 있는지 살펴보고 종류별로 바구니에 담는다. 고추는 청양고추와 아삭이고추를 분리해서 담고 꽈리고추와 가지고추는 다른 고추와 섞어도 금방 구분할 수 있어 괜찮다. 청오이나 노각 오이는 하루 만에 훌쩍 자라는 바람에 적당할 때 따야지 너무 크면 아삭한 식감이 떨어져 별로다.
야채는 적당한 것이 맛있다.
오이는 덩굴식물이라서 지주대를 감고 올라가며 잎이 크고 색이 같기 때문에 잘 뒤적거려 봐야 찾을 수 있다. 커다란 잎에 오이가 가려져 있으면 매일 아침에 봐 놓고 저녁 퇴근길에 따려해도 보이지 않을 때가 있어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도 식감이 조금 떨어지지만 그런대로 맛있게 먹으면 그만이다.
지난번 밑반찬이 필요 없다는 글을 쓰고 난 후 우리 집 냉장고에 야채로 채워지고 있다.
엊그제는 퇴근하며 고추를 소독해야 할 때가 된 것 같아 미리 먹을 것을 따서 놓고 소독을 했다. 청양고추, 꽈리고추, 아삭이 고추, 가지고추, 오이, 토마토가 커다란 봉투로 두 개가 된다. 가지고추나 아삭이 고추는 매운맛이 없고 식감이 좋지만 청양고추는 너무 크지 않고 작은 풋고추로 먹으면 아주 맛있는 매운맛이 일품이다. 가지는 살짝 삶거나 쪄서 간장과 식초에 무쳐서 먹으면 예전에 어머니가 해주시던 맛이 난다.
청오이는 너무 많이 열어 매일 먹어도 남아서 냉장고로 들어간다.
이틀에 대 여섯 개씩 따다 보니 가까이에 사는 아들네도 주고 장모님도 드리고 처제를 줘도 남는다. 저녁 식탁에 아내랑 둘이서 청오이 두 개를 썰어 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아삭한 식감이 좋다. 그렇다고 오이만 먹을 수 없어 결국 냉장고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저녁 식탁이 푸르다.
야채를 씻고 가지를 찌고 꽈리고추와 멸치를 넣고 간장에 조림을 했다. 부추는 까나리 액젓에 고춧가루와 들기름 그리고 참깨를 살짝 뿌려서 설렁설렁 무쳤다. 가지 무침은 식초의 상큼한 맛이 어머니가 생각나게 한다. 나는 아내와 몇 해 전부터 서로 잘하는 요리를 각자 하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굳이 잘하지 못하는 요리를 해서 맛이 없다고 투덜거릴 일이 아니라 서로가 잘하는 것만 해서 같이 맛있게 먹으면 다투거나 투덜댈 일이 없다.
재료는 같아도 방법이 다르면 맛이 달라진다.
나는 라면이나 국수 그리고 무침 요리 중에 부추나 상추 무침을 잘하고 아내는 노각이나 가지, 나물 무침을 잘한다. 그리고 볶거나 찌개 요리를 잘하고 나는 가을에 무생채를 잘한다. 또한 국은 아욱국은 내가 끓이고 미역국은 아내가 잘 끓인다. 그래서 서로 잘할 수 있는 요리를 뚝딱뚝딱하다 보면 한 끼 해결하는 데는 어려울 것이 없다.
공통으로 잘하는 요리도 있다.
요리를 잘한다는 것은 맛이 있다는 말이다. 된장이나 김치찌개는 아무나 해도 맛있다. 다만 된장찌개를 끓일 때는 조금 차이가 있다. 나는 국인지 찌개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끓이고 아내는 된장을 많이 넣고 끓이기 때문에 확연한 차이가 난다. 결국 아내도 내가 끓인 것이 시원하고 맛있다고 하지만 일부러 본인이 하기 귀찮아서 하는 말인 것 같다. 아무튼 내가 텃밭에서 가꾼 식재료로 맛있는 한 끼를 행복하게 먹을 수 있어 좋다.
물론 된장이나 고추장은 못한다.
고추장은 장모님이 담근 것이고 된장은 친구가 보내줘서 먹는데 맛이 괜찮아서 잘 먹고 있다. 물론 마트에서 판매하는 야채가 종류도 많고 신선하다. 음식에 있어 무엇이 주재료고 부재료라 굳이 구분할 수 필요는 없지만 나의 정성과 땀의 결실이라는 의미만으로 충분하다.
텃밭에서 식탁까지 도착하는데 20분이면 충분하다.
그러니 신선할 수밖에 없지만 가끔은 달팽이나 벌레가 집까지 따오는 경우가 있어 아내가 기겁을 한다. 집에 가는 길에 아는 사람이라도 만나면 수확한 야채를 다만 몇 개라도 꺼내주며 어우렁더우렁 사는 재미가 바로 농촌에서만 느낄 수 있는 여유로운 삶이라 생각한다.
오늘 아침에도 한 바퀴 둘러보고 퇴근하며 딸 오이 서 너 개를 찾아 놓고 출근을 했다. 저녁은 노각 무침과 오이냉국으로 밥을 비벼서 시원하게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