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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여름 반찬

짭조름한 반찬이 맛있다?

by 박언서

옛날 음식은 왜 그리 짤까?

어려서부터 먹던 습관 때문에 아직도 그 입맛을 바꾸기가 어렵다. 옛날 시골에는 층층시하 함께 밥을 먹던 시절이 있었다. 밥상을 다르지만 한 방에서 할아버지나 할머니의 헛기침 소리를 시작으로 밥상머리 교육을 받아가며 도란도란 밥을 먹었다. 물론 할아버지의 밥상은 항상 아버지와 두 분이 드시고 반찬 또한 어머니와 우리가 먹는 것과 조금 달랐다.

어른들 반찬이 따로 있었다.

어머니는 어른들의 반찬을 늘 따로 만드셨다. 작은 냄비에 생선을 짭조름하게 조리는 반찬이다. 홍어인지 가오리인지 잘 모르지만 뜨물을 넣고 조리는데 국물은 뽀얀 하고 맛은 짭짤하다. 언젠가는 그 맛이 궁금해 어른들이 다 드시고 밖에 나간 사이 슬쩍 밥상으로 가 한 숟갈 먹어 보면 너무 짜다.

엊그제는 빨간 고추로 반찬을 만들었다.

아버지가 여름철에 주로 드시던 반찬인데 그 입맛을 잃지 못해 여름이면 항상 만들어 먹는다. 빨갛게 익은 고추를 씻어 반으로 갈라 씨와 하얀 부분은 빼고 적당한 크기로 잘라 새우젓과 고춧가루 다진 마늘을 넣고 마지막에 깨소금을 뿌리면 끝이다. 그러면 고추에서 약간의 수분이 나와 촉촉해지고 고추는 아삭하고 짭짤해서 여름 반찬으로 좋다.

특별하게 맛있는 것은 아니다.

고추와 새우젓 무침은 특별하게 맛있는 것은 아니지만 젓갈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간편하게 만들어 먹기에 적당한 반찬이다. 여기에 들어가는 새우젓은 잘 익은 육젓으로 무치면 더 맛이 있다. 아버지는 입맛이 없을 때 밥을 물에 말아 고추 새우젓 무침과 드시곤 했다. 특히 무더위가 극성을 부리면 입맛이 떨어지고, 더위에 반찬이 상하기 쉬운 계절이기 때문에 이것저것 많이 만들어 놓을 수 없었던 시절이다.

여름 반찬은 한정되어 있다.

요즘은 냉장고가 종류별로 여러대씩 있지만 60년대에는 열무김치를 담그면 통을 줄로 묶어 우물에 넣어서 보관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니 다른 반찬도 간이 싱거우면 상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젓갈을 사용하고 짭조름하게 만들었다. 또한 농촌에서 한 여름 흔한 반찬거리는 오이나 가지, 고추, 애호박이 전부다. 바로바로 무쳐서 먹거나 볶아서 먹을 수 있는 반찬은 새우젓이나 들기름이 주된 양념이다.

비가 오는 날에는 애호박 부침이 좋다.

애호박을 얇게 썰어 들기름에 부치고 양념간장을 만들어 찍어 먹으면 일품이다. 양념간장에는 꼭 식초를 조금 넣어야 상큼하고 더 맛이 있다. 그리고 애호박은 새우젓으로 간을 하고 들기름에 볶아 먹으면 맛있다. 가지는 밥을 뜸 들 이때 살짝 쪄서 간장으로 간을 하고 역시 식초를 넣고 새콤하게 무쳐 놓으면 밥도둑이 따로 없다. 물론 노각 무침은 기본 반찬이다.

싱겁게 먹어야 한다는데,

성인병을 예방하려면 싱겁게 먹어야 한다는데 음식은 간이 맛을 좌우하기 때문에 솔직히 싱거우면 맛이 없다. 그러다 보니 적당한 간이 있어야 하는데 음식의 간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강하게 변화되어 간다. 또한 하루아침에 싱겁게 먹기는 어려워서 서서히 줄여야 하지만 그마저도 쉬운 일은 아니다. 아버지의 여름반찬이 짭짤한 이유는 여름철에 땀이 많이 나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너무 짜지 않은 음식이 몸에 좋다지만 우리 음식의 기본 재료인 간장이나 된장, 고추장 등은 모두 짜게 담근다.

그래서 부전자전이라는 것인가?

짭짤한 입맛으로 60여 년을 살았으니 쉽게 바뀌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맛을 유지할 수 있는 정도에서 간을 조금씩 줄여가야 한다. 집에서는 싱겁게 먹으려 하지만 식당 등에서 짭짤한 반찬을 먹을 때 문득 부모님 생각이 난다. 한 끼는 그렇다 해도 노후 건강 관리를 위해 음식을 싱겁게 먹는 습관을 길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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