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는 막걸리랑 친구다.
막걸리는 농촌 사람들이 먹는 술이다?
그렇다. 한때는 막걸리는 시골 양조장에서 많이 만들고 주로 농촌에서 농사를 지어가며 새참으로 먹는 술이기도 했다. 새참으로 먹는 음식 중에 막걸리가 가장 편하고 좋다. 특별한 안주가 필요하지 않고 요즘 같은 계절에는 마늘밭에서 풋마늘을 뽑아 흙을 털고 껍질만 벗겨 고추장을 찍어 안주를 하면 그만이다. 막걸리와 풋마늘은 궁합이 맞는 것 같다. 텁텁한 막걸리 한 사발이면 허기를 달래수도 있고 약간의 술기운도 있어 힘든 일을 하는데 그만한 새참이 없다.
예전에 농촌에서는 막걸리 심부름은 주로 아이들이 다녔다.
동네 구멍가게에서 막걸리를 팔았기 때문에 새참 때가 되면 주전자를 들고 가서 막걸리 한 주전자를 사오라고 심부름을 시키곤 했다. 막걸리 심부름을 간 아이는 먼 길을 걸어오며 어린 나이에도 그 맛이 궁금하여 한 목음씩 먹기도 했었다.
그런 막걸리는 추억이기도 하다.
한동안 소주와 맥주 시장의 급성장으로 지역의 양조장은 대부분 문을 닫았다. 다만 특색이 있는 막걸리 양조장만 몇 군데 명맥을 유지하는 정도였다. 막걸리가 정확하게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도시와 농촌을 구분하지 않고 인기가 높아졌다. 때문에 요즘에는 다양한 막걸리를 제조하고 판매하는 양조장이 생겨나고 가격이 비싼 막걸리도 생산하는 등 전통주로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농촌에서는 오래전부터 가양주(집에서 담그는 술) 많이 담가서 먹었다. 집집마다 부엌 한 귀퉁이에 술동이가 있을 만큼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제조 방식의 술이 있었다. 하지만 60년대에는 정부에서 술 제조에 관한 규제를 과도하게 통제를 하고 압박을 하는 바람에 농가에서 전해 내려오는 전통주의 맥이 이어지지 못했다. 정부는 농가에서 술 담그는 것을 불법으로 간주하고 수시로 감시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시골 농가의 다양하고 특별한 맛을 지닌 전통주의 맥이 끊긴 것이다. 그 시절에는 전통의 가치와 보존 논리 보다는 짧은 기간에 효과를 볼 수 있는 개발 논리를 앞세워 모든 낡은 것을 부수고 새로 짓는 것만이 능사인 시대였다.
농가의 술은 한 동네라도 집안 내력에 따라 담그는 방법이 다르다.
지역의 특산물을 이용해서 만드는 술도 있지만 집안의 가문으로 전해 내려오는 제조 방법이 있다. 또한 술을 담아 탁한 막걸리로 먹기도 했지만 맑은 동동주로 먹기도 했다. 막걸리 항아리에 대나무로 만든 용수를 박아 걸러서 뜨면 동동주가 되고 그냥 먹으면 막걸리가 되는 것이다. 막걸리의 명칭은 농주 또는 탁주라고 했다.
나는 그런 막걸리가 좋다.
물론 직접 담드는 막걸리는 아니지만 막걸리를 먹으면 술에 취하기 전에 배가 불러 술이 취하는 정도가 가볍기 때문에 자주 먹는다. 또한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막걸리의 종류가 다양해서 이것저것 골라먹는 재미도 있어 좋다. 그런데 막걸리 취향도 먹으면 먹을수록 변하는 것을 느낀다. 전에는 조금 단맛이 있는 막걸리를 자주 먹었는데 이제는 단맛이 없는 순수한 맛이 좋다. 이제 진정한 술꾼이 되었나 보다.
막걸리는 한 끼 식사대용으로도 가능하다.
가끔 저녁 입맛이 없을 때에는 김치 부침이나 두부김치를 안주삼아 막걸리를 먹으면 굳이 밥을 먹지 않아도 든든하다. 물론 적당량을 먹어야지 그 또한 과하면 식사가 아니라 술판이 되는 것이다.
요즘 막걸리 안주는 풋마늘에 국물멸치를 고추장에 찍어서 먹고 있다.
계절마다 안주는 달라도 집에서 가볍게 먹는 술은 막걸리가 그만이다.
물론 회식이나 모임에서는 소주나 맥주를 먹는다. 하지만 막걸리는 어릴 때 주전자 꼭지에 입을 대고 홀짝홀짝 빨아 먹던 추억이 있다. 특히 텃밭 일에 땀을 흘리고 나서 막걸리 한 사발 들이켜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나는 막걸리 애주가이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