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근무
아침이 차갑다.
퇴직하고 2개월 만에 출근하는 주말, 햇볕은 맑고 따사로운데 10시가 넘은 지금 기온은 아직도 영하 2℃다. 조용한 사무실에서 음악을 듣던 중 커피 생각에 연하게 한 잔 타서 들고 창가 의자에 앉았다. 창밖을 바라보니 참새 몇 마리가 푸드덕 날아다닌다. 한참을 바라보아도 오가는 사람이 없는 현장은 쓸쓸한 느낌이다. 아무 생각 없이 멍 때리다 커피를 입에 대니 뜨거움에 놀라 정신이 번쩍 든다.
나는 혼자서 놀라기도 하지만 창밖은 여전히 한가롭다.
가끔씩 현장에 일을 나간 차량들끼리 대화하는 무전기 소리가 혼자가 아님을 확인시켜 준다. 그러는 사이 커피가 적당하게 식어 먹기에 좋다. 누구는 쉬고 있을 이 시간에도 다른 누구는 현장이나 사무실에서 각자 맡은 일에 열심이다. 세상이 아무리 시끄러워도 내가 일하는 곳은 평온한 주말이 유지되고 있다. 아마 오후가 되면 현장에 나갔던 차량들이 복귀하여 시끌벅적하겠지만 그전까지는 오롯이 나 혼자만의 시간이다.
어찌 보면 쓸쓸할 수도 있지만 나는 여유롭고 평온하다.
나에게 아무 간섭 없이 글을 쓸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주어진 것이다. 오늘 그리고 지금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과 사물을 바라보며 느끼는 감정을 오롯이 담을 수 있어 좋다. 이제 커피도 다 식어버려 남아 있는 한 모금을 털어 넣는다. 커피가 뜨거울 때는 향에 취해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지만 식은 커피는 맛을 느낄 수 있어 좋다.
다시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다 밖으로 나가 보았다.
아침보다 덜하지만 바람은 아직까지 차갑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아 눈이 부시도록 화창하지만 차가운 바람에 얼굴이 시리다. 멀리 보이는 산에는 추운 겨울을 무난히 견딘 초록의 소나무와 회색의 갈나무들이 봄을 채 촉한 것 같다. 가파른 고개를 넘어온 하얀색 자동차는 무엇이 그리 바쁜지 씽씽 달려 금세 눈에서 사라져 버린다. 사무실 앞 물이 고인 논에는 살얼음이 그대로다. 논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어르신 두 분이 가볍게 산책하는 것을 보니 운동하시는 모양이다. 바람은 차갑지만 이런 풍경을 보고 있노라니 마음까지 시원해지는 느낌이다.
아마 이런 풍경을 도시에서는 볼 수 없을 것이다.
회색 빌딩숲과 검정 아스팔트로 뒤덮인 도시에서는 말이다. 아니, 빌딩숲 그리고 도로를 달리는 수많은 자동차와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바라볼 여유조차 있을지 모르겠다. 물론 도시의 바쁜 움직임이 농촌과 시골을 여유롭게 만들어주는 원동력이다. 굳이 도시와 농촌 그리고 누가 무엇을 얼마만큼이라는 책임을 나눈 것은 아니다. 그리고 주말이기에 쉬는 사람도 있고 일하는 사람도 있다. 모두 본인에게 주어진 시간을 알차고 보람 있게 활용하면 그만 아닐까?
벌써 11시가 훌쩍 넘어 점심시간이 가까워졌다.
문득 “나 하나 꽃 피어”라는 시가 생각난다.
나 하나 꽃 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느냐 말하지 말아라.
- 중략 -
내가 물들고 너도 물들면 결국 온 산이 활활 타오르는 것 아니겠느냐.
이렇듯 토요일에 쉬는 사람도 있고, 출근하는 사람이 있어 세상이 돌아가는 것 아니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