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추 처서 가을
입추가 지났다.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어 더위가 조금 누그러진 느낌이다. 설이나 추석은 음력으로 따지지만 24 절기는 양력인데도 이상하리 만큼 잘 맞는다. 예전에는 복날이 되면 고기로 국을 끓여 먹는 복달임이라는 풍습도 있었지만 이제 그런 풍습도 사라져 가고 있는 현실이다. 물론 요즘에도 복날에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삼계탕이나 보양탕 전문 식당은 발 디딜 틈도 없이 북적대지만 복달임이란 풍습을 알고 먹는 사람들은 과연 몇이나 될까 궁금하다.
24 절기 중 여름의 절기는 처서가 끝이다.
입추 다음으로 처서인데 14번째 절기이며 처서가 지나면 모기의 입이 삐뚤어진다는 속담도 있다. 또한 농촌에서는 가을철 수확기까지는 일이 조금 한가해지는 때이기도 하다. 앞으로 남은 절기는 이로서 대한까지 10개가 남았다. 그런데 소한과 대한은 2025년 1월에 있지만 그래도 한 계절이 끝나지 않아 일반적으로 24 절기는 입춘을 시작으로 대한을 끝으로 친다.
24 절기는 1개월에 2개씩 있다.
9월에는 백로와 추분이다. 백로는 한자어로 흰 이슬이란 뜻이 있다. 그래서 백로가 지나면 밤기온이 내려감에 따라 대기 중에 머물러 있던 수증기가 내려와 아침 이슬을 맺혀 완연한 가을이 되는 것이다. 또한 예전에는 백로에 비가 내리면 풍년의 징조로 여기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백로를 기점으로 사람이나 동물 모두가 바빠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온갖 곡식들의 잎이 녹색에서 황금색으로 변하여 수확을 준비하고 철새들은 따뜻한 나라로 이동을 준비하고 다람쥐는 월동에 필요한 먹이를 저장하는 시기다. 다음으로 추분은 가을 날씨가 평등해진다는 뜻으로 낮과 밤의 길이가 거의 같아진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일반적으로 보면 추분을 전후로 우리 고유의 명절 추석이 있고 맛있는 과일이 익어가는 등 풍요로운 계절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로 여겨지기도 했다.
여름이 가을을 이기지 못한다고 한다.
더위도 추위도 100일을 넘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더위가 아무리 기승을 부려도 입추나 처서 앞에서는 꼼짝도 못 하고 물러나야 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며 절기다. 여기서 말하는 100일은 숫자상으로 분명 일리가 있다. 우리는 보편적으로 망종이 지나면 여름이 시작된다고 여긴다. 그런 망종은 6월 초순경에 해당하는데 6월 초순경부터 100일을 계산해 보면 9월 초순에서 중순경이 된다. 이때가 바로 백로와 추분이다. 그렇다면 이미 100일 이전에 더위는 한 풀 꺾이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런 무더위에는 100일도 어렵다.
일상생활에서 100이라는 숫자는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아이가 태어나도 100일을 기념하고 어렸을 때에는 100이 넘으면 많다는 의미로 생각했다. 어찌 되었든 입추가 지나고 처서가 다가오니 기분으로 느끼기에 선선해진 것인지 진짜 선선해진 것인지 모르겠다. 다만 선선한 바람과 가을을 느끼는 데 있어 마음이면 어떻고 몸이면 어떻겠는가? 그저 금년 한 해 남은 숫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음에 세월의 무상함만 가득해진다.
이런 때 어울리는 사자성어가 세월유수 인생무상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