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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조그만 암자에서 스님과 추억을 회상하며

오랜만에 수덕사 선수암 그리고 대웅전 마당을 걸으며

by 박언서

오랜만에 수덕사를 다녀왔다.

대천에 사는 초등학교 동창이 점심 먹으러 온다고 연락이 왔다. 이 친구와는 초등학교 동창이기도 하지만 생일이 같은 날이고 가까이 대천으로 시집을 가서 다른 동창들보다 친분이 남다르다. 그래서 종종 만나서 밥도 먹고 차도 마시는 그런 친구인데 지난 연말에 예산 친구랑 둘이 대천으로 가서 점심 먹고 차도 한 잔 하고 와 이번에는 예산으로 오게 된 것이다.

며칠 전에 온다는 연락을 받았는데 뭐 먹지?

그래도 오랜만에 고향이며 친정 동네 예산에 오는데 무엇을 대접해야 하는지 이것저것 고민을 많이 했다. 요즘 핫한 예산시장을 구경하며 밥을 먹어야 하나? 아니면 삽교에서 곱창을 먹어야 하나? 예당저수지 근처에서 살았으니 어죽에 새우튀김은 어떨까? 광시에 가서 소고기를 사줄까?

먹을 것은 많지만 쉽게 결정을 못했다.

그렇게 고민하다 결국 만나기로 한 당일에 수덕사 산채정식을 먹기로 했다. 그래도 수덕사 산채정식은 맛이 전국에 소문이 자자할 정도로 유명하고 산책하기도 적당할 것 같아 친구와 상의해서 정했다. 대천 친구가 차를 가지고 오면 예산까지 오기보다는 홍성을 거쳐서 덕산으로 오는 게 편할 것 같아 약속 장소를 충의사 주차장으로 하고 나는 친구랑 둘이 조금 일찍 충의사로 갔다.

바람이 쌀쌀하다.

며칠간 기온이 내려가고 바람이 불어 쌀쌀한 날씨가 계속되었다. 다행히 오늘은 햇볕이 좋고 바람은 어제 보다 세지 않다. 나는 친구랑 10:55분경에 주차장에 도착하고 대천 친구는 11:00경에 도착해 셋이 만났다. 우리 일행은 차 한 대로 움직이기로 하고 친구가 타고 온 차는 주차장에 세워 놓았다.

수덕사로 향했다.

수덕사에 몇 년 만에 가는지 모르겠다. 우리 속담에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하듯이 가까이 있다는 핑계로 늘 그러려니 하고 다른 곳만 찾아다녔다. 또한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은 항상 보다 보니 변화에 무뎌지고 다른 지역에 좋은 것이 많을 것이라는 허상에 빠져 살았다. 물론 나만 그러는 것은 아니겠지만 항상 보고 접하는 것에 대한 무관심과 무뎌진 일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좌우지간 겨울 수덕사는 쌀쌀했다.

찬 바람에 콧등이 시리고 이마가 싸늘하다. 몇 발짝을 걸었는데 고개가 저절로 옆으로 돌아간다. 하필 모자랑 장갑을 차에 놓고 와서 추위를 막을 방법도 없었다. 너무 추우니까 친구가 그냥 돌아가서 밥이자 먹자고 한다. 나는 그래도 오랜만에 여기까지 왔는데 참고 가야 한다고 독려를 하며 올라갔다. 바람이 차갑긴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오랜만에 느껴보는 상쾌하고 시원한 바람이다.

차갑지만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올라갔다.

우리 일행은 우선 선수암에 가기로 했다. 선수암은 수덕사에 속한 말사로서 비구 스님들이 계시는 절이다. 아주 오래전에 업무적으로 왔다가 주짓수 님하고 알게 되어 가끔 수덕사에 올 때 들리면 스님이 작설차를 주셔서 먹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내가 선수암을 이야기하던 중 대천에 사는 친구도 선수암 스님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대천에 사는 친구가 어떻게 수덕사 선수암을 알고 있을까 궁금했다. 알아보니 몇 해 전에 와서 일을 보고 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선수암에 도착했다.

대웅전 앞마당은 바람도 없고 따뜻한 햇살만 가득하다. 나는 스님이 계시는 문을 두드렸다. 잠깐의 기다림이 지나 스님이 나오셨다. 주지스님이 아니지만 안면이 있는 스님이었다. 그러나 스님이 나를 몰라보며 누구시냐고 되물으신다. 너무 오랜만이다 보니 그렇수밖에 없다. 그래서 옛날 기억에 있는 다른 분을 말하니까 그제서 알아보시고 반가워했다. 대천 친구도 이름을 말하니까 금방 알아보시고 반갑게 맞으며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신다.

따뜻한 식혜와 한과를 내주신다.

스님과 넷이 앉아 정담을 나누던 중 나는 예전에 스님 한 분을 운문사까지 모셔다 드린 적이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스님은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흐릿하셨다. 아마 승가대학에 공부하러 가시는데 교통편이 좋지 못해서 내가 모셔다 드린 기억이 있다. 그때 사과도 몇 상자 가지고 가야 하는데 택배도 없던 시절이라 내 차로 스님을 모시고 갔었다고 말씀드렸더니 그제야 기억을 더듬어가며 고맙다고 하신다.

나는 현재 무교다

예전에는 어머님이 교회를 다니셨기 때문에 나는 종교를 선택할 권한이 자동적으로 박탈되지 않았을까? 아주 어려서 교회에 몇 번 다닌 기억이 있다. 하지만 스님들과 인연은 종종 있었다. 과거 공직에 있을 때 업무적인 인연이 오래되어 사적인 인연으로 발전하며 소중하게 생각하며 지냈다. 덕분에 지금까지 스님 몇 분을 알고 지낸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나는 절에 가면 마음이 차분해지는 느낌이기도 하고 스님이 내어주는 작설차 몇 잔을 마시다 보면 아무 생각 없이 좋다. 그리고 차분하게 대화를 할 수 있는 분위기 또한 좋다.

스님과 이런 이야기를 나눴다.

세상의 신은 오롯이 한 분인데 각자의 종교에 따라서 모시는 방법에 차이일 뿐 그 진정성이나 세상을 구원하는 길 또한 하나일 것이다. 따라서 내가 믿는 종교가 최고이며 올바르다는 고정관념을 벗어나야 하며 다른 종교를 무시하거나 탓하고 핏박하는 일이 없이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대화를 나누고 스님과 헤어졌다.

스님께서 따뜻한 봄에 만나자며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우리 일행은 수덕사 대웅전으로 향했다. 대웅전으로 가는 언덕길을 올라가며 옛날 추억을 떠올려 본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수학여행으로 수덕사에 와서 대웅전 마당 3층 석탑을 배경으로 단체 사진도 찍었고 친구랑 둘이서 찍은 사진도 앨범에 있다. 그 시절에는 교통편이 좋지 않아 버스를 대절해서 수학여행을 왔고 버스를 대절하는 비용 또한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졸업여행이었다.

수덕사 대웅전을 내려오다 해탈교를 건너 이응로 화백의 그림이 있는 선미술관을 들렸다. 습작부터 유학시절 그린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전시실을 둘러보고 점심 먹을 시간이 조금 지나 걸음을 재촉했다. 입구를 내려오면 식당이나 기념품을 파는 가게가 즐비하다. 우리 일행은 춥기도 하지만 우선 배를 채우기 위해 식당을 정해 들어갔다.

따뜻한 차를 내어준다.

무엇을 먹을까 메뉴판을 살펴봤다. 수덕사는 산채 정식이 유명하기 때문에 나물밥상을 주문하고 추가로 더덕구이와 굴비, 동동주 반 되를 주문했다. 여러 가지 나물과 된장찌개는 기본으로 나오고 서비스로 도토리묵을 한 접시 준다. 이어서 추가 주문한 더덕구이와 굴비, 동동주가 나왔다. 더덕구이가 따뜻하게 구워져 향이 진하고 맛있다. 굴비는 간이 짭짤하고 맛있어 막걸리 안주로 그만이다.

그렇게 맛을 은미하며 천천히 점심을 먹었다.

동동주는 나 혼자 먹었다. 친구 두 명은 운전을 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동동주 반 되는 내 차지였다. 나는 늘 그런 생각을 했다. 전국 어느 사찰을 다녀봐도 수덕사만큼 음식을 맛있게 잘하는 곳이 없다. 지금까지 많은 사찰을 다녀보고 밥을 먹어봤지만 정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또한 수덕사 식당가 어느 식당 할 것 없이 맛의 평준화가 정착되었다.

반찬그릇이 다 비었다.

오랜만에 밥 같은 밥 한 끼를 먹었다.

밥을 먹어가며 보니 인별그램이나 페북에 홍보를 해야 주차권 1매를 준단다. 그래서 음식별로 사진을 찍어 올렸다. 금방 반응이 온다. 그래서 주차권 1매를 받았다. 밥도 배부르게 먹었으니 후식 타임이다. 요즘은 대형 카페가 많고 다양해서 좋다.

덕산향교 아래에 있는 카페를 갔다.

후식으로 빵을 몇 개와 따뜻한 커피를 세 잔을 주문했다. 자리는 2층 경치 좋은 곳 편안한 의자로 잡았다. 창밖으로 보이는 시골 동네 풍경이 한적하고 여유롭다. 굴뚝에 연기가 솔솔 올라오는 집도 있고 멀리 보이는 향교의 커다란 대문 아래 마당 주차장이 한가롭다. 이런저런 옛날 추억을 이야기하며 시간이 흘러 서운함을 뒤로하고 친구와 만남을 마무리했다.

다시 충의사 주차장이다.

대천 친구가 우리 차에서 내리더니 잠시 기다리라며 자기 차에서 대천김을 두 박스 내어주며 하나씩 가져가란다. 이렇게 고마울 데가 있을까? 오랜 친구와 짧은 만남이었지만 잠시나마 추억을 떠올리며 좋은 시간이 된 것 같다.

가끔 아주 가끔이라도 오가며 여유로운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스님도 친구도 오래도록 기억될 수 있는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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