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한 배려
오랜 세월이 지난 일이다.
아버지가 정기적으로 다니시는 내과의원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해 10월 갑자기 서울 큰 병원을 가신다며 혼자서 예약을 하고 가셨단다. 그때까지만 해도 별일 아니겠다 생각하고 흘려버리고 말았다. 아버지는 평소에 드시는 음식이나 생활습관 등 건강에 대해 신경을 많이 쓰시며 살아오셨기 때문에 항상 건강에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알았다. 또한 군대시절에 의무병으로 복무하여 간단한 처치는 스스로 해결하시는 분이셨다.
그런데 서울 큰 병원에서 보호자 상담이 필요하다는 연락이 왔다.
나는 사무실에 연가를 내고 어머니를 모시고 부랴부랴 서울 큰 병원으로 갔다. 병원에 도착하니 아버지는 평소와 다름없이 멀쩡한 모습이다. 우선 담당 의사 선생님을 만났다. 의사 선생님 말씀에 검사 결과 위암 말기 판정이 나왔다고 한다.
당황스러웠다.
얼마나 당황했던지 아무 생각이 나지 않고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조차 알 수 없었다. 아무리 증상이 없어도 그렇지 어떻게 말기가 되기까지 증상을 느끼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에 허무함이 밀려왔다. 일단 상담을 마치고 병원 복도에서 어떻게 치료를 해야 되는지 어머니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상의했다.
우리 가족은 부모님과 아들만 셋이다.
물론 삼 형제 모두 혼인을 했고 그중 내가 둘째로 부모님과 가까이에서 직장생활과 농사일을 도와가며 살았다. 형님은 멀리 부산에 살았고 동생은 나와 같은 지역에서 살았다. 나는 우선 이런 상황에서 당사자인 아버지의 뜻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위암 말기인데 수술을 할 것인지 아니면 어떻게 할 것인지 가족회의가 필요했다. 그래서 아버지 생각을 먼저 듣고 다음으로 70 평생 살을 맞대고 살아온 어머니 그리고 형님과 동생은 전화로 의견을 들어봤다.
결론은 수술을 하지 않겠다.
아버지는 수술은 싫고 이대로 집에 내려가 마음 편하게 살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아버지 말씀에 따르면 지금까지 내 몸에 한 번도 칼을 대지 않고 살았는데 이제 와서 살면 얼나마 더 산다고 몸에 칼을 대느냐는 것이다. 아버지의 뜻에 가족 모두 동의를 했다. 하는 수 없이 병원 담당 의사 선생님과 상담을 마치고 집으로 내려왔다. 우리 삼 형제는 며칠을 설득했지만 아버지는 완고하셨다. 그렇지만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한다 해도 자식 된 도리에서 생각하면 수술을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사상의학을 생각했다.
수술을 거부하시는 아버지의 뜻을 거역할 수 없어 동생이 사상의학으로 치료를 하는 병원을 수소문해서 서울에 있는 한의원 한 곳을 찾았다. 동생과 나는 아버지를 모시고 한의원을 찾아가 의사 선생님과 상담을 했다. 한의사 선생님은 아버지의 상태를 유심히 관찰하며 질문을 하고 사진도 찍는다. 사진은 얼굴 정면 좌우 신체 등 다각도로 사진을 찍었다.
처방을 받았다.
조그만 알약 몇 가지를 주며 2주일간 먹어보고 관찰을 하며 상태에 따라 다른 처방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2주간 약을 드시고 다시 한의원을 찾았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통증에 대해 질문을 한다. 아버지는 통증이 없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위암은 통증이 심한 병으로 알고 있는데 왜 통증이 없는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이다. 그러면서 또 사진을 찍고 지난번 찍은 사진과 비교를 하며 다른 처방으로 약을 주셨다.
그렇게 약 3개월이 지났다.
물론 한의원에 다니시며 서울 큰 병원도 협진하는 방법으로 진료를 받았다. 하지만 아버지나 가족 모두 선택의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제 어떻게 보내드려야 하는지 결정이 필요했다. 서울 큰 병원에서 더 이상 치료가 어렵다고 말에 어쩔 수 없이 내가 살고 있는 지역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심하면 며칠 입원했다 퇴원하는 방법 밖에 없었다.
그해 12월 아버지의 뜻에 따라 보내드렸다.
이런 상황에서는 가족으로서 갈등이 없을 수 없다. 수술은 해도 안 해도 후회는 마찬가지다. 다만 가족으로서 자식으로서 어쩔 수 없이 당사자인 아버지의 뜻을 받아 들려야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라도 설득해 수술을 해봤으면 더 사셨을까?
주변에서 많이 봤다.
위암 말기에 수술을 시도하다 너무 많이 전이되어 수술 상처가 아물지 못하고 운명하시는 경우를 많이 봤다. 이러한 경우 자식으로서 괜히 수술을 해서 상처가 아물지 못한 채 얼마나 많은 고통 속에 운명을 하셨을까 생각해 보면 비수술 선택이 현명한지도 모른다.
우리의 선택이 현명했다 생각하자.
당사자인 아버지의 뜻이 그러하니 그 선택의 결과에 한 치의 미련이 없어야 모두 편안하다. 평소에 이별에 대한 준비는 없었지만 갑자기 마주하는 상황일지라도 누구의 판단이 중요한지 한 번 더 생각한 결과 모두의 뜻이 그러하다면 그것이 바로 어떻게 보내드려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해답이 아닐까?
다시 말하면 제삼자인 보호자의 생각이 아니라 당사자의 마음이 담긴 뜻을 따라주는 것이 최고의 예우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