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씨를 쓰는 일이 점점 줄어드는 세상이 아쉽다.
만년필이 생겼다.
예전 같으면 만년필을 자주 사용했지만 요즘에는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이 없다. 하긴 필기를 하는 사람도 줄어드는 세상이다 보니 펜의 사용 빈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노트북이나 태블릿 그리고 핸드폰에 직접 녹음하여 굳이 글로 쓰는 것이 불편한 세상이 되어 버렸다.
종이가 없는 세상이 될 수 있을까?
행정기관에서도 전자문서 형태의 공문이 유통되고 종이문서를 줄이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문서의 보관 방법도 저장매체를 이용해 보관하는 문서의 보존 방법이 추가되어 전자문서가 보편화되는 시대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종이 문서가 사라지게 되면 부수적으로 글씨를 쓰는 펜의 사용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꼭 필요한 경우가 있다.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기의 영향으로 중요한 문서 등에 도장으로 날인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서구 유럽 등에서는 도장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중요한 문서 등에 주로 서명(싸인)을 하고, 이런 경우에 고급 만년필을 사용하는 것을 뉴스나 영화 등에서 볼 수 있다.
고급 만년필은 가격이 비싸다.
하지만 아무리 가격이 비싼 만년필도 자주 사용하지 않으면 잉크가 말라버린다. 그래서 자주 사용해야 하지만 기업의 회장이나 CEO라면 모를까 일반적으로는 사실 자주 사용할 기회가 많이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몇 년 전부터 인감증명서를 대체할 본인서명사실확인서라는 것을 시행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정착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저렴한 만년필이지만 좋다.
내가 사용하는 만년필은 가격이 저렴한 것이다. 어느 기업을 방문했을 때 기념품으로 받은 만년필이다. 가벼우며 잉크도 리필해서 쓸 수 있는 만년필인데 글씨도 부드럽게 써지고 혹시 분실을 해도 부담이 없어 좋다. 그래서 그런지 몇 년을 사용하는데 아직까지 한 번 도 어디에 놓고 온 적이 없다.
만년필을 식구들 모두 하나씩 사주었다.
어느 날 문득 생각이 들었다. 이런 만년필은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어디에 서명을 할 기회라도 생기면 폼나게 쓸 수 있을 것 같아 아내와 아이들에게 사줬다. 그런데 만년필을 사용할 기회나 글씨를 쓸 기회가 없어서 그런지 사용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하긴 만년필 보다 볼펜이 편하고 잘 써지는데 굳이 불편한 만년필을 사용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나도 한 동안 방치했었다.
퇴직을 하고 글씨를 쓸 기회가 없었다. 그렇게 몇 개월을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책상 구석에서 만년필을 발견했다. 뚜껑을 열어서 글씨를 써보니 잉크가 말라 써지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미지근한 물에 만년필 펜촉 부분을 1시간 정도 담가 놓고 새 잉크를 끼워서 써보니 아주 잘 써진다.
왠지 기분이 좋다.
손에 익어 글씨도 잘 써지지만 서명을 할 기회가 있으면 주머니에서 만년필을 꺼내 쓰는 모습은 품격이 달라 보인다. 이런 품격은 나를 포함한 상대방이나 서명하는 문서에 가치를 느끼게 할 수 있다. 작은 펜 한 자루로 글씨 몇 자를 쓰지만 그 자리의 격을 높일 수 있고 상대방이 품격을 느낄 수 있다면 비록 저렴한 만년필이라도 나는 좋다.
오늘도 만년필 뚜껑을 열었다.
혹시 잉크가 말랐는지 내 이름 석자를 써 본다. 이제 오래 쓰다 보니 뚜껑이 헐거워졌다.